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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소재
나의 서른
글, 사진 / 뽕
서른이 되었다.
만으로는 아직 28세라고 우기고 싶은
서른이 되었다.
새해 첫 날, 어떤 남자를 만나 함께 식사를 했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다시 펼쳤다.
1월 중순께 다이어리는
'의미없는 날들'에 대한 회의를 기록하고 있다.
나와 가장 마음이 잘 맞는 J가 엄마가 되었다.
입춘, 봄 기운을 물씬 느끼며
예쁜 동생 S와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고마운 친구 E의 임신,
초음파 사진을 보며 '생명의 신비'를 느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었다.
너무 좋았다.
20대때 의무감에 꾸역꾸역 읽었던 책을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읽었다.
봄앓이를 했다.
봄이 왔지만 마음이 지독하게 추웠고
미련스럽게 옛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서른 번째 생일은 엄마와 함께 보냈다.
'낳아주셔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대신
엄마께 식사를 대접했고
네일샵에 가서 손톱을 빨갛게 칠했다.
생일이 마침 부활절이기도 해서 저녁엔 성당에 갔다.
벚꽃이 흐드러지고 햇빛이 따사롭던 날
진주에 내려갔다.
든든한 남선배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진주의 낮과 밤을 걸었다.
잘 먹고 많이 웃은 덕분에 혓바늘이 쏙 들어갔다.
낯선 사람과 함께 카페 '안녕 낯선사람'에 갔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내 이야기도 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라고 적고 있으나
그 뿐이었다.
메르스 창궐.
온 국민이 공포로 덜덜 떨었다.
입사 1주년.
저물어 가는 청춘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참깨들에게 위로 받으며
하루하루를 견뎠고,
쑥이 여름휴가를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7월의 첫 날, 금쪽 같은 여름 휴가를 하루 뺐다.
오랜 친구 J와 함께 '프리다칼로' 전시회에 갔다.
워낙 좋아하는 화가라서
그녀의 그림을 실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기만 했다.
참깨 채팅방은 이때부터
여름 휴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고된 일상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떠났다! 여름휴가.
광복절이자 토요일에.
전 날이 임시공휴일이었던 관계로
차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 또한 훗날엔 추억이 되리니.
낙산사에서 내려 와
낙산해변에서 서른을 벗고
아이처럼 놀았다.
9월 6일.
쑥에게 '포크'를 소재로 한 글을 보내는 것으로
서른 살 여자 셋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으며 흘려 보낸 날들이 많았는데
쑥 덕분에 다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브런치 사용법을 몰라
'작가의 서랍' 속 글을 삭제해버리기도 하고,
얼떨결에 '작가 신청'을 눌러서
연재가 시작되었다.
나의 서른,
텅텅 빈 다이어리를 보면서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글 한 줄 남길 여유도 없이 산 것을 후회하다가
아직도 서른이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10월, 11월, 12월.
남은 세 달은
빠짐없이 기록하여
시간이 지난 후에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하자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더 이상
내게 찾아 온 서른을 피해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서른과 포옹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반갑다, 서른."
"고맙다, 서른."
.
.
.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은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모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