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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번째 소재
글, 사진 / 뽕
5년 전 나는 고등학교 친구 J와 A와 함께 내일로 티켓을 끊어서 전라도를 여행했다. 내일로 티켓은 일주일동안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기차표이다. 만 26세 이하만이 이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이들기 전에 다녀오자고, 우리 중 누군가가 제안했고, 여름 휴가를 맞춰서 여행길에 올랐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지던 남원, 객실이 깔끔했지만 투숙객이 없어서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던 숙소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광한루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던 젊은 남자주인들의 호의를 고맙게 여기면서도 경계하고 있었다.
"여기 좀 무섭지 않아? 잠이 안 온다. "
A가 겁에 질려 말했고, 문이 잘 잠겼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숙소는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해 있었고, 산이 가까이에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던 남자 주인들이 마음 먹고, 우리를 해치려 한다면 위험 상황에 빠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퍼뜩 지나갔다. 우리 셋은 남자들이 문을 부수고 쳐들어올 것만 같은 공포감에 시달렸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이 밝아왔을 때에야 그것이 쓸데없는 상상이며,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 주인들은 비가 많이 오니, 남원역까지 차로 데려다 주겠다면서 친절을 베풀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 교환을 한 뒤에 차에 올랐다.
"근데 어디에서 오셨어요?"
"파주요."
"파주! 저 거기서 군생활했는데."
'파주'라는 지역으로 우리는 순식간에 공통분모를 갖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었다.
"여행 재밌게 잘 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매너가 있었다. 우리는 선량한 사람들을 괜히 의심했다면서 깔깔거렸다. 다시 기차를 타고,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비가 개었다. 고향이 구례인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순천에 왔는데 어디를 가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고, 엄마는 선암사와 순천만을 추천해주셨다. 아름다운 풍경소리를 들으며 마음 속 불필요한 두려움을 덜어냈고, 울창한 나무가 솟아 있는 흙길을 걸으면서 땀을 식혔다.
순천만은 시간 관계상 가보지 못하고, 순천 대학교에 잠시 들러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도서관에도 가 보았다. 이미 학사모를 벗고,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대학 캠퍼스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생기발랄한 분위가 마음에 들었다. 여수행 기차 시간에 맞춰 그곳을 빠져 나왔고, 다시 달리는 기차 안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여수에 도착했다. 우리가 여수에 갔을 때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발표되기 전이었고, 여수엑스포가 개최되기 전이었다. 여수는 그야말로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여수역에 도착하자 짠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었고,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여수에서는 민박집을 예약했는데, 벽과 바닥을 자유로이 기어다니는 벌레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곳에서 묵으면 자는 동안 발이 여러 개 달린 벌레들이 내 몸을 타고 오를 것 같았다. 택시에 올라서 그 얘기를 하자 기사님은 바닷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벌레라고 했다. 그 벌레 이름이 '갯강구'라고 알려주셨다.
여수는 음식도 맛이 있었고, 택시 기사님들이 친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탔던 택시의 기사님이 2년 뒤에 여수 엑스포가 열리니, 그 때 다시 놀러 오라고 하셨다.
잠을 설친 탓이었던가. A는 아침을 먹으며 서울로 올라가 보겠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지친 A를 먼저 보내고, J와 나는 다음 여행지로 떠났다.
히치하이크(hitchhike)를 해서 도착한 보성 녹차밭은 폭우가 쏟아졌다. J와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채소 싣고 가는 트럭을 얻어타고 그곳에 도착했다. 남원에서 낯선 사람을 그토록 경계하던 우리였는데 무슨 용기가 솟았는지 잽싸게 트럭에 올랐다. 인심좋은 보성의 채소 상인 아저씨는 보성 녹차밭 입구에서 차를 세워주었다. 보성을 생각하면 대차게 내리던 비와 채소 냄새와 트럭이 생각난다. 녹차밭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남기려고 했는데, 비를 피하는 것이 시급했다. 우리는 비가 멎기를 기다렸다. 그곳에서는 낡은 숙소에서 머물렀는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온 J가 이제야 좀 쉬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기왕 보성까지 온 김에 땅끝마을까지 찍고 가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결국 J는 보성을 마지막으로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엄마의 권유로 외할머니댁인 구례에 갔는데, 외삼촌이 경운기를 몰고 나를 데리러 오셨던 기억이 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음에도 무척 반가워해주셨고, 닭을 잡아서 백숙을 끓여주셨다. 다음날은 외삼촌, 외숙모, 외할머니와 함께 하동 화계장터와 최참판댁을 구경했다. 엄마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머물면서 깊은 온정을 느꼈다.
남원에서 시작하여 순천, 여수, 보성 구례까지 여행하는데 일주일 남짓이 걸렸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기억에 남는 인연을 만난다. 내 옆자리에 탔던 그녀는 간호사로 오랫동안 일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버지가 간암말기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거든요. 간호사라면서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다니, 너무 죄스러워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매 순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매일 먹는 밥도 우리의 피와 살이 되어준다고 생각하고 먹으면 다르게 느껴져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내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때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불평하면서 사는데,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달리는 기차를 생각하면 일주일 동안이나 달리는 기차 안에 있었던 2010년 여름이 떠오른다. 그 여름을 떠올리다보면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 가는 기분이 들고, 마지막 퍼즐까지 맞추었을 때는 숙연해지면서 나에게 묻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뜨겁게 살고 있습니까?
현재는 나에게 이 질문이 절실한 시점이다. 질문과 답은 모두 내 안에 있다.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은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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