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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Feb 04. 2019

일일시호일- 매일 매일 좋은 날

#2019 시네마 클럽

오모리 타츠시 감독, 키키 키린, 쿠로키 하루 주연.  영화 일일시호일



추위를 뚫고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보고 싶었던 영화 일일시호일을 보기 위해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건 사실 별것 아닌 이유였다. 

정신없이 스토리를 따라가며 머리를 써야 하는 영화 말고 

편안히 화면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는 시간이 머리를 비우는 휴식이었으면 했다. 


그런 의미에선 오늘 본 영화 '일일시호일'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화는 스무 살의 노리코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학에 입학해 자신이 평생 해나가고 싶은 일을 찾아보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던 노리코. 

우연한 기회로, 딱히 흥미는 없었지만 사촌 미치코와 함께 다도를 배우게 된다. 


주인공 노리코는 다도 선생님인 다케타 선생에게 다도를 배우기 시작하지만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찻잔을 들 때의 손 모양, 물을 따르는 방법, 물통을 들고 걷는 걸음걸이 등 

사소한 동작 하나도 하나하나 익혀야 했다. 

 

다도를 익히기 위해서 "왜 이렇게 해야 하죠?"라고 질문하던 노리코에게 

스승인 다케다는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손이 익숙해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대로 노리코는 점차 질문 대신 천천히 손에 동작 하나하나를 익히고 집중하며 

다도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무언가 처음 배울 때 내 몸과 마음에 받아들여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을 이 영화는 차분히 따라간다. 


그렇게 몇 개월, 해가 갈수록 익숙해지고 다도에 재미를 느껴가는 노리코의 모습이 나오고 

취업할 때, 사랑을 잃었을 때, 가족의 죽음과 같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다도가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좋아하는 것, 인생을 통틀어 한 가지를 계속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하구나 싶었다.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다른 어떤 것보다 힘이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내가 계속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나도 갖고 싶다. 







<영화 속 인상 깊었던 대사들> 


"이렇게 매일매일 반복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무거운 건 가볍게, 가벼운 건 무겁게 들어요"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듣는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바라본다.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몸이 갈라질 듯한 추위를 맛본다.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긴다. 다도란 그런 ‘삶의 방식’인 것이다.


“만일 몇 번이나 같은 정주와 손님이 모여 다사를 연다고 해도, 오늘과 똑같은 모임이 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일생에 한 번 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는 거예요.”

 



영화를 보고 나면 이렇게 인상적이었던 대사나 장면을 곱씹어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와 관련된 뒷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더 궁금해지면서 

감독의 인터뷰나 영화평론을 찾아보게 된다. 


마침 씨네21에 '일일시호일'의 오모리 다쓰시 감독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읽어보니 내가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부분이 해소되었다. 



-  <일일시호일> 오모리 다쓰시 감독 인터뷰 - 찬찬히 들여다보기, 삶도 영화도- 출처: 씨네 21 기사


-카메라가 다도실 안의 한 부분, 정원을 배경으로 하는 자리에 거의 고정되어 있다. 어떤 컨셉으로 촬영을 계획했나.

=다도를 배웠다. (웃음) 이 영화를 찍으려면 다도는 필수였다. 다도의 작법을 모르면 카메라를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특별히 연출법을 구상했다기보다 무의식적으로 했다. 노리코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려고 했다. 노리코가 노력하는 스타일이고 좀 여유가 있는 캐릭터인데, 그게 다도의 리듬과 잘 맞더라. 만약 영화의 주인공이 매사 결정을 잘해서 노리코의 부러움을 사는 사촌 미치고(다베 미카코)였다면 전혀 다른 리듬이 됐을 거다.



정원의 나뭇잎, 그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가 세포의 움직임을 묘사한다. 상징하는 바가 컸다.

=그건 원래 원작에 없는 장면인데 순간 영감처럼 떠올라 넣기로 했다. 촬영 때, 프로듀서들이 아마 이 장면이 나오면 분명 감독님의 의도를 질문할 거라고 했는데 의도를 알아주셔서 다행이다. (웃음) 다도실 안에는 인공적인 게 없다. 나무, 땅, 식물들로 둘러싸여 있고 다기들도 나무나 돌 같은 천연재료로 만든 것들이다. 그런 자연의 상태에서 주인공의 성장과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다도실과 정원이 하나의 작은 우주이고, 세포가 작은 것에서 성장하고, 그사이 또 누구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다도 예법에 대해 ‘왜’냐고 묻는 노리코를 향해, 다케다 선생은 “차는 형식이 먼저다”라는 말을 들려준다. 다도의 방법이 아니라 인생의 방법론 중 하나로도 들린다.

=나도 배우들이 형식적으로 연기하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형식을 따지지 말고 감정대로 하라고 하는데, 형식이 더 중요한 것들도 있는 것 같다. 일본에는 다도뿐만 아니라 가부키라든지 그런 부류의 것들이 많다. 이 작품을 하면서 그런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영화의 시작 부분에 그 장면을 넣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그런 인생의 방법론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다케다 선생은 24년간, 20대 초반의 노리코가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취업, 결혼, 이별 등 그녀의 인생에 일어난 일들을 묵묵히 지켜봐준다. 배우 기키 기린의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와 그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캐릭터였다.

=그분은 아셨을 거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앞으로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을. 각본을 보고, 자신의 삶과 어느정도 싱크로되었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기키 기린은 부드러움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엄격함도 가지고 있는 배우다. 기키 기린이 원래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담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배우들에게 접근하듯이 하지 않고, 그분이 하시는 대로 열어뒀다. 현장에 오면 영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으셨고, “밥은 먹었니?” “과자 좀 먹으렴” 하며 스탭들을 챙겨주셨다. 돌아가신 후 연기상을 수상하셨는데 대리 수상하러 온 따님이 “어머니는 딱히 연기를 하신 게 아니라 생활의 연장이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가더라




영화 '일일시호일'의 매력을 정리해 본다. 


1. 영화 속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머리 속이 깨끗해진다

2. 차와 함께 먹는 '다과'를 눈으로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3. 일본의 정원, 소박한 가족의 모습이 주는 평온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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