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나의 로망, 뉴욕재즈

Bird Land

by 리틀 골드문트

내가 재즈에 입문하게 된 건 중학생 시절, 캐나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가수인 '다이애나 크롤'을 알게 되면서였다. 그녀가 리메이크한 'The look of love'라는 노래를 듣고 단숨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감미로운 재즈 리듬 속에서 때로는 건조하게 툭툭 내뱉기도 하고 때로는 간절하게 호소하는 중저음 목소리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가끔 노래가 좋아서 가수의 얼굴을 찾아봤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이애나 크롤은 얼굴마저 멋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깊은 눈매에 S자로 그린 샤프한 눈썹과 무심한 듯 헝클어진 금발, 그리고 시크한 검은색 의상을 입은 그녀는 그 자체로 어른미와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녀를 동경했다.


시간이 흘러 직장인이 되고 보니, 출근길 지옥철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음악은 상큼한 아이돌 음악이나 오늘 하루 살아낼 전투력을 상승시켜 주는 강렬한 힙합이 되었지만, 누군가가 내게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내 마음속 첫 번째는 여전히 재즈이다.


재즈는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자유를 닮았다. 방랑자 같은 히피 감성을 품었다가도 클래식한 세련미를 뽐낸다. 한없이 늘어지는 우울을 노래하다가도, 정신없이 내달리는 스윙댄스를 펼쳐 보인다. 내가 재즈에 대해서 아는 건 많지 않지만, 분명한 건 재즈는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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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44번가 재즈바 Bird Land

이름만 들어도 어딘지 모르게 흥겨운 기운이 느껴졌던 이곳은, 전설적인 알토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의 별칭인 'bird'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재즈바다. 맨해튼 한복판, 재즈의 성지와도 같은 곳으로 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섯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저녁.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발을 내딛자 마치 해리포터의 비밀의 방처럼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철저히 암막으로 둘러싸인 지하 공간은 조금 전까지 내가 뉴욕 거리를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잊게 했다. 짙은 파란 조명이 지하 공간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맨 앞 무대에는 붉은 보랏빛의 조명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대 앞에는 두 명씩 앉을 수 있는 작은 원형 테이블이 다섯 줄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앞쪽 좌석들은 이미 예약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뮤지컬 <시카고>가 떠오르는 검은 턱시도를 입은 웨이트리스가 우리를 세 번째 줄로 안내했다. 테이블 위에는 작은 노란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메뉴를 펼쳐든 나와 일행은 맥주와 버펄로 윙, 그리고 과일 & 치즈 플레이터를 주문했다.


공연이 시작하자 단정한 정장을 차려입은 다섯 명의 연주자가 무대 위로 올랐다. 새하얀 머리칼,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얼굴 주름, 그리고 깍듯하면서도 여유로운 몸짓. 그들의 태도만으로도 재즈와 함께해 온 긴 시간과 수많은 공연의 흔적이 묻어났다.


'The High Society New Orleans Jazz Band'라고 불리는 이 밴드는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 모습 또한 재즈처럼 즉흥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한 멤버가 자기소개를 하며 연주를 시작하면, 옆에 있던 동료가 박수치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고, 연주자를 향해 깊은 존경을 표한다는 것이었다. 재즈 공연이 단순히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교감만이 아니라, 연주자들 간의 유대와 존중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재즈 선율은 깊고도 풍부하고 아름다웠다. 어떤 곡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연주자들은 절묘하게 분위기를 전환했다. 마치 "여긴 뉴욕이야! 너무 심각해질 필요가 없다고!" 라고 말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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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Smile'을 부를 때는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노래하는 내내 지어 보인 미소와 손짓에서 연주자들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공연의 마지막 곡은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였다. 밴드의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연주자가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노래를 시작했다. 그는 세상이 널 못살게 굴어도, 사는 게 그리 녹록지 않아도,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화답하듯, 공연을 보는 우리는 모두 함께 마지막 구절을 불렀다.

"What a wonderful world!"


공연이 끝난 뒤, 연주에 집중하느라 미처 반도 먹지 못한 음식을 마저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 뒤편에는 밴드의 할아버지 연주자 한 분이 앉아 계셨다. 나는 다가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정말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맙다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밤이 깊어 있었다. 수많은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맨해튼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밤이 되면 이 도시는 더 화려해지고, 더 시끄러워진다. 거리는 관광객과 상인들의 소리가 요란하게 뒤엉켰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불쾌한 냄새가 풍겼고 쓰레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걸으며 쌀쌀해진 공기에 옷을 여몄다. 이렇게 요란한 세상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