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뉴욕의 문화 세 가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감탄하는 문화 중 하나는 안전한 치안 문화다.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작업하다 잠시 자리를 비워도 도난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에 소지품을 두고 내려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각 나라에는 그곳만의 고유한 문화들이 존재한다. 나 또한 뉴욕에 머무르며, 겉보기에 사소하지만 참 인상 깊었던 좋은 문화가 있었다.
1. Doggy Bag 문화
미국의 도기백 문화는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강아지 먹이용 음식'인데, 처음에 이 단어는 실제로 남은 음식을 강아지에게 주겠다고 포장하는 것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옛날엔 남은 음식을 싸가는 게 조금 창피하게 여겨져 강아지 주려고 가져간다고 핑계를 대면서 자연스럽게 불리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뉴욕 식당에서 파는 음식 1인분의 양은 체감상 1.5인분~2인분에 가까워 한 번에 다 먹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뉴욕은 외식비가 세계에서 손꼽히게 비싼 도시 아닌가. 한국에서 하루 한두 끼만 먹던 내 위장 크기로는, 미국의 1인분을 소화하려면 하루 종일 걸릴 정도였다.
나는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기에 남은 음식을 싸가는 걸 좋아하지만, 한국에서는 어쩐지 눈치가 보였다. 어느 정도되는 양이 남은 게 아니라면 구질구질해 보인다는 인식이 있고, 식당 사장님께 민폐를 끼치는 것 같기도 해서 매번 싸갈지 말지 망설였다.
그래서 나는 "사장님 죄송하지만…." 이라는 미안함을 덧붙이며 수고로움에 대한 양해를 구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내가 지불한 음식인데 왜 눈치를 봐야 하지? 어차피 남긴 음식은 버려질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뉴욕에서는 남은 음식이 많든 적든 당연하다는 듯 포장해 가는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특히 고물가 뉴욕에서 장기 체류 중인 여행자 입장에선 지출을 줄일 수 있기에 더욱 반가웠다.
물론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양을 조금 줄이고 그만큼 가격도 낮추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남은 음식을 포장하기 위해 일회용 용기를 소비하는 것은 환경에도 바람직하지 않으니 말이다.
2. Grab and Go 문화
그랩 앤 고 문화는 바쁜 일상에서 빠르게 집어 들고 이동하며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된 음식 문화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편식 문화가 점점 자리 잡고 있지만, 미국은 종류도 다양하고 선택의 폭도 훨씬 넓었다.
나는 뉴욕의 마트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ready to eat' 형태의 과일과 야채를 자주 사 먹었다. 투명한 사각 플라스틱 박스에 바로 먹을 수 있는 세척과 손질이 완료된 과일과 야채가 담겨 있어, 별다른 손질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뉴욕의 가을은 정말 건조했다. 공기는 메말랐고 음식은 기름졌다. 건강하게 여행하고 싶었던 나는 의식적으로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과일과 채소를 챙겨 먹었다. 손질된 제품은 일반 과일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어학원 수업 쉬는 시간이나 이동 중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유용했다.
한 팩에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가 혼합되어 있고, 팩의 크기도 다양해서 마트에서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채소 팩에 당근이 많이 들어간 것이었다. 미국 마트에서는 당근은 채 썬 형태, 깍둑썬 형태, 미니 당근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당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3. Small Talk 문화
뉴욕에 가기 전, 내게 뉴욕은 인싸들이 모인 거대한 파티장 같은 곳이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나를 보며 "어머! 그 옷 어디서 샀어요?"하고 말을 걸 것 같은 도시랄까. 물론 현실은 다소 달랐지만, 뉴요커들이 친근하고 수다스러운 건 분명했다.
마트에서 줄을 서 있는데 앞에 있던 남자가 웃으며 말을 걸거나, 서점이나 상점에서는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몇 마디씩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워싱턴 D.C. 투어를 할 때였다. 친구 니키와 셀카를 찍으려던 찰나 낯선 남성이 다가와 "내가 찍어줄까?" 하더니, 사진을 찍고 나서 "어디서 왔어?", "워싱턴 D.C. 는 처음이니?", "너희는 친구니?", "여기는 왜 온 거야?"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투어 팀과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계속되는 질문 공격에 나는 어쩔 줄 모르며 애매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니키가 "미안한데 우리 지금 가봐야 해"라며 단호하게 말을 잘랐고 그는 "그래, 잘가~" 하고 쿨하게 우리를 보내주었다.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처음에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몰 토크를 자연스럽게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박물관에서 모자를 쓴 할머니께 "모자가 정말 예뻐요!" 하고 칭찬을 건네고,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날씨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뉴욕의 분위기에 스며들고 있었다.
스몰 토크는 그저 가벼운 잡담이 아니었다. 오늘의 공기를 몽글몽글하게 해주는 이완제 같다고 할까. 다시 볼 일 없을 사람과의 짧은 대화가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렸다.
어쩌면 그런 짧은 대화들이 쌓여서, 그 어느 도시보다 차갑고 복잡한 뉴욕을 따뜻한 도시로 기억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도 스몰 토크가 자연스레 오가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나 역시 그 안에서 누군가에게 일상의 작은 온기를 전해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