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어학원 졸업하던 날

꿈 같던 3주

by 리틀 골드문트

숙소에 도착해 씻고 나서 노트북을 켜 보니 어학원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이번 주 금요일에 졸업 예정이라 온라인 시험을 봐야 한다는 안내였다. 겨우 3주 다녔을 뿐이라 '졸업'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졸업의 사전적 정의가 정의를 생각하면 나도 엄연히 졸업생이었다.


온라인 시험은 60분 동안 진행되며, 독해, 문법, 작문으로 구성된 총 66문항의 문제를 풀어야 했다. 형식적인 절차일까 싶었지만, 시험 문제 상당수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과 연결되어 있어 단기 학생인 나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졸업하는 날 아침이었다. 나는 어학원 갈 준비를 하면서 어떤 옷을 입을지 잠깐 고민했다. 졸업식은 수업이 끝난 후 모두 함께 모여 사진을 찍고 축하하는 자리이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착장인 검정 니트에 회색 뷔스티에, 그리고 회색 청바지를 입었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친 뒤 맨해튼행 버스에 올랐다. 좌석에 앉자, 창밖으로 허드슨강 너머로 보이는 맨해튼의 마천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지난날 나의 졸업식들을 떠올렸다.


유치원 졸업식 때는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이별이 너무 슬퍼 엉엉 울었고,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내가 전날 서툴게 자른 앞머리가 쥐 파먹은 듯 어색해 엄마의 잔소리를 듣느라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았다. 중학교 졸업식 때는 합격한 고등학교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컸고,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대학 진학 실패로 마음이 무거웠다. 대학 편입에 성공하며 맞이한 졸업식은 핑크빛 희망으로 가득했지만, 편입한 대학교를 졸업할 때는 아직 취직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날이 막막했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어학원을 졸업했다. 그사이 나는 세 번의 이직을 했고 네 개의 회사에 다녔다. 직장 생활을 하며 학교 다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크고 작은 일들을 겪었지만, 퇴사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복잡했던 직장 생활에 비해 너무나 단순했다. '후련함'이었다. 그런 끝맺음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이번 졸업은 그간 잊고 있던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유치원 졸업식 때 느꼈던 아쉬움과 슬픔이었다. 나는 너무나 아쉬웠다.


그렇게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일주일을 다녔든, 삼 주를 다녔든, 몇 달을 다녔든 이곳에서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특별했기에, 졸업은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함께 졸업하는 반 친구들도 아침부터 "벌써 졸업이라니 아쉽다"라며 섭섭함을 내비쳤다. 멕시코에서 온,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친구는 졸업을 기념하듯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고 왔다.


수업이 끝난 후, 우리는 오늘 졸업 대상자 명단을 확인하고 함께 라운지로 향했다.


타임스퀘어가 내려다보이는 라운지에 발 디딜 틈 없이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두 모이고 나니 졸업식이 시작됐다. 각 반마다 담임 선생님과 졸업하는 학생들이 호명됐다.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학원의 공식 카메라와 각자의 핸드폰을 번갈아 들며 여러 번 사진을 남겼다.


같은 반이 아니더라도 복도나 라운지에서 마주칠 때면 눈인사를 나누거나, 여자 화장실의 긴 줄에서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았기에 대부분의 얼굴이 익숙했다. 단순히 스쳐 지나간 인연일지라도, 이제 더 이상 마주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움을 남겼다.


타임스퀘어를 배경으로 졸업!


졸업식을 하는 라운지 한 켠의 테이블에는 어학원의 상징 색인 주황색 졸업 가운과 학사모가 마련돼 있었다. 입을까 말까 잠깐 고민하다 이 또한 추억이 될 것 같아 가운을 걸치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을 본 조나단 선생님이 멀리서 껄껄 웃었다.


조나단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아직 일주일이 더 남았다고 하니 잘됐다며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다. 이후, 나는 일본인 친구 미키와 며칠 뒤 저녁을 함께했다. 내가 "나 없는 수업이 꽤 지루하시겠어요."라고 농담을 건네자, 조나단은 "당연하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회사에서는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한 달이 지나 성과 보고가 코앞이었고, 또 일하다 보면 분기 보고가 다가왔으며, 그렇게 네 번을 반복하면 한 해가 끝나 있었다. 화장실도 급하게 다녀올 정도로 바쁜 나날이었고, 팀 목표를 초과 달성하며 좋은 성과를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보면 허전함이 남았고 동료들과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던 내가 고작 3주를 다녔을 뿐인데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정이 들었고,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3주는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마치 3달을 보낸 것 같이 충만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존재였지만 함께 뉴욕이라는 도시에 적응해 나갔다. 영어로 자신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시야를 넓혀갔다. 수업이 끝나면 지하철을 타고 낯선 동네로 모험을 떠났고, 새로운 뉴욕의 모습을 발견하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즐겼다.



졸업한 날 밤, 반 친구들과 함께 뉴욕의 어느 유명한 루프탑에서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뉴욕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그리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후 어떤 삶을 살아갈지로 이어졌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뒤로 'The City Of Dreams NYC'라는 네온사인이 뉴욕의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그래,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지.


숙소로 돌아와 이메일을 확인하니, 어학원에서 수료 증명서가 도착해 있었다. 단 3주간의 과정을 증명하는 이 깜찍한 증명서를 보면서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뉴욕 어학원'이라는 경험을 나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어 행복했다. 살면서 이보다 더 뜻깊은 선물은 아마 다시없을 것이다. 짧지만 소중한 시간,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