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 더는 싫었다

by 리틀 골드문트

더 이상,

퇴근 후 돌아온 텅 빈 집에서

홀로 저녁을 먹으며

여행 유튜버의 영상을 보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위안하고 싶지 않았다.



20년을 기다린 뉴욕

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여행 에세이와 영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뉴욕의 풍경을 꽤 입체적으로 상상해 왔다. 다채롭게 쌓아 올린 뉴욕 풍경의 한 단면에는 여행 에세이 <네 멋대로 행복하라>에서 읽었던 어느 뉴욕 출신 뮤지션의 리드미컬한 자유가 있었고, 다른 단면에는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보았던 비 오는 가을 센트럴파크의 잔잔한 낭만이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윌리엄스버그'라는 동네의 뒷골목 하얀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의 풍경까지, 나의 뉴욕은 수백 개의 장면으로 이어진 커다란 모자이크와도 같았다.


그래서 지금 이곳, 맨해튼 44번가에 위치한 어학원 기숙사에 도착해 짐을 풀고 이제 막 거리로 나설 때, 나는 문 앞에 잠깐 멈춰 섰다. 어디로 떠나든, 비행기에 내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여행 온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비로소 두 발을 거리에 내디딜 때, 나의 온몸이 새로운 시공간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막상 기다렸던 순간을 코 앞에 마주하자 거침없이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보다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지그시 누르고,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 순간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윽고 숙소 문을 열고 맨해튼 거리의 아스팔트 위로 발을 내디뎠다. 커다란 빌딩들 사이로 드리운 어둑한 골목을 나오자, 한낮의 햇살이 쏟아지는 큰 도로가 나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오른쪽을 택해 걸어 나갔다. 뉴욕에서만큼은, 황금연휴를 몇 주 앞두고 급히 결정해 떠났던 다른 여행지에서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 관광객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서 뉴욕을 거닐었던 그 순간들까지도 뉴욕에서의 시간이라 여기며, 마치 20년간 익숙해진 도시를 다시 찾은 뉴요커처럼 걷고 싶었다. 20년을 참았으니 그 정도의 자존심은 부리고 싶었다. 남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뉴요커라지만, 혹시라도 사람 관찰하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를 눈여겨봤다면 꽤 웃겼을 것이다. 도도한 뉴요커인 척 걷고 있었지만, 실은 곁눈질로 맨해튼의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을 테니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는 맨해튼 거리의 모든 윤곽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나는 걷고 또 걸으며 뉴욕이 뿜어내는 선명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만끽했다. 이 도시의 활기는 여행자들의 설렘과 호기심, 그리고 뉴요커의 열정이 뒤섞이며 만들어낸 거대한 기운이었다.

길을 걷다 갑자기 멈춰 서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나 여행자예요'라고 광고하지 않아도, 나는 한눈에 여행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나야말로 뉴욕의 오랜 팬이었기 때문이었다. 뉴욕을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과 티 없는 밝은 웃음, 경쾌하게 움직이는 고갯짓만으로도 충분했다. 누군가는 가을의 뉴욕을 즐기기 위해 왔을 것이고,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바꾸기 위해, 또 누군가는 마음에 품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곳에 왔을 것이다.


어학원에서 알게 된 프랑스에서 온 마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열아홉 살 때부터 뉴욕에 오고 싶었어. 그리고 지금 육십이 되어서 왔지." 신용카드를 잃어버려 어학원 라운지에 앉아 속상해하는 내게 먼저 다가와 따뜻한 포옹으로 위로해 준 상냥한 마리. 그녀는 인자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뉴욕을 향한 오래된 애정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나는 그녀의 지난날의 삶의 이야기를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그 흔적들이 온화한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웃을 때마다 눈가에 잡히는 주름, 부드럽게 올라가는 입꼬리, 안경 너머로 보이는 따뜻한 갈색 눈동자가 그 모든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열아홉 살의 마리가 뉴욕을 꿈꾸던 그 순간부터 사십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녀는 성실하고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일궈왔을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소변 냄새가 진동하고 선로엔 온갖 쓰레기가 나뒹굴며 길거리에선 대마 냄새와 온갖 불쾌한 냄새가 퍼져 나와도 뉴욕은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 모여드는 순수함을 지닌 도시였다. 살기는 힘들어도, 그런데도 살고 싶은 곳. 여행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그런데도 가고 싶은 곳. 뉴욕만큼 이 간극이 극명한 도시가 또 있을까?


누군가는 나의 퇴사가 미국 한달살이와 맞바꿀 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이냐고 했다. 안정된 대기업에서 이제 자리를 잘 잡았는데 좀 더 참아보라고 했고, 경제가 더 안 좋아질 것 같으니 다음 기회를 기약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백 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음에도, 주변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난 그렇게 배짱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


팀장님께 처음 퇴사 의사를 전했을 때, 현실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예상했던 것이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10년 차 마케터로서 나는 비교적 주장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업무를 추진하는데 당당한 자세를 고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제나 그에 대한 분명한 근거를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감정만 있는 나의 퇴사에는 이직을 하거나, 건강상의 이유가 있다는 등의 '적합한' 사유가 없었다. 상부에 보고할 때 퇴사 사유를 그럴싸하게 말할 순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믿고 의지한 팀장님께는 내 결정이 이해될 만큼의 납득은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마음만으로 내린 결정에는 당연하게도 근거가 있을 리 없었고 말하면 할수록 내 열망이, 내 마음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그날 꽤 오랜 시간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팀장님은 내가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여러 관점에서 나를 설득하셨다. 이미 내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좀 더 생각해 보라는 팀장님의 말씀에 예의상 알겠다고 대답했다. 늦은 시간 회사에서 나와 쉬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서울역까지 걸으며 스스로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졌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되는지는 명확했다.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좀 더 참아보는 쪽이 늘 현명한 선택처럼 보였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어떻게 살아.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고 그 이치를 받아들이는 게 어른인 거야.' 갈림길에 설 때마다 나는 언제나 조금 더 참아보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 몫의 굴레이자 감당해야 할 무게라고 되뇌었다. 견뎌내야 할 성장의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이렇게 억지로 이성적인 삶을 계속 살다간 잔뜩 뒤틀려 모두가 피하는 사이코가 되거나 제명을 못 채우고 죽거나, 둘 중 하나가 되는 건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내 인생을 사는 건데 비이성적으로 살아봐도 되는 거 아닌가. 그간 정답이라 착각했던 후회가 남는 이성적인 삶이 아닌, 만족스러운 비이성적인 삶을 택하고 싶었다.


미국 한달살이는 내게 중요했다. 미국 여행은 내 삶의 변화를 대표하는 표상일 뿐이고, 나는 인생의 돌파구가 필요했다. 불안이 높은 나는 'Next step', '옵션 B'를 인생의 키링처럼 달고 다녔다.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늘 마음 한구석을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불안과 불안이 주는 공포는 겁 많은 내가 불도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기폭제가 되곤 했다. 하지만 내 화약은 뜨겁게 타오르고 무섭게 타들어 가다 불발탄처럼 이내 언제 시작이라도 했냐는 듯 잦아들다 그 존재를 감추곤 했다. 그게 참 싫고 슬펐다. 나는 늘 폭발하고 싶었다. 폭발하여 하늘을 날아 뜨거운 빛으로 하늘을 수놓고 싶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그때의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결정일 것이다.


시간도, 돈도, 마음의 여유도 부족했던 순간마다 여행 에세이는 내게 작은 위안이고 쉼이었고 희망이었다. 나의 이야기가 하루의 휴가조차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는 직장인에게, 잠깐의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은 양육자에게,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영어 공부에 몰두하는 열정가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뉴욕의 꿈을 가슴에 품은 당신에게 잠깐이나마 쉬어갈 수 있는 따뜻한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