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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브런치 안 하고 스레드 하는 이유

by 리틀 골드문트

나는 브런치를 오래도록 좋아한 사람이었다.


내 채널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작년 11월부터였으나, 그전부터 브런치에 작가 승인을 받는 일은 마음속 1순위였다. 그래서 작년에 마침내 승인을 받고 글을 올리기 시작할 땐 정말 기뻤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 쓸 글 주제부터 고민했다. 주제가 정해지면 당장 떠오르는 생각의 실마리를 붙잡고 그 꼬리를 따라 나만의 굴삭기를 가지고 생각의 땅을 파 내려갔다.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지점까지.


그렇게 하다 보면 1,500자 남짓한 분량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땅을 파내려 가는 일은 쉽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해야 할 일이었다. 땅을 파다 말고 울기도 했고, 허공에 욕도 했고, 어떤 순간엔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매일같이 긴 글을 쓴다는 것은 고된 일이다.

10여 년 회사생활을 하며 간결하고 근거가 명확한 그럴듯한 글쓰기에 길들여진 내가, 이제는 내 감정이라는 근거하나만을 가지고 나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수식어를 떠올리며 솔직한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내 감정만이 근거'인 글은 얼핏 쉬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자존감 높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내 감정과 문장 하나하나가 전부 의심스러웠다. 오랜 시간 나 자신을 속이고 살았기 때문에 나 조차도 무엇이 솔직한 감정인지 따져봐야 했다. 투명한 줄 알았던 내 감정의 실마리엔, 생각보다 많은 겹이 숨겨 있었다.


일을 하듯이, 누가 시킨 적도 없는 가치 판단과 저울질을 해가며, 내 글이 과연 타당한지,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글인지 너무 사적인 건 아닌지 검열하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러다 스레드를 알게 됐다.


시작은 인스타툰이었다. 뜬금없지만, 오래도록 봉인해 둔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나는 초등학생 때 그림을 꽤 잘 그리고 좋아하는 아이였다.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디자이너와 작업을 해야 할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디자이너의 재능이 내심 부러운 적이 많았다. 그런 내가 인스타툰을 덜컥 시작하게 되어, 어느 새부터는 유튜브보다 인스타그램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 보면 같은 회사에서 만든 스레드 게시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다 누군가가 스레드에서 반응이 좋은 글들을 인스타툰에 녹여내어 그림을 그리다 보니 인스타툰 호응이 더 좋아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한 번 시작해 보기로 했다.


스레드는 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채널이었다, 들어가 보니 '스하리'니 '반하리'니 '뒷삭'이니 정체불명 용어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암호처럼 쓰이고 있어서, 이 생태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스레드는 글자 수가 500자로 제한되어 있다. '뭐 해?' 간단한 말부터 500자를 꽉 채운 글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반응을 얻기 위해선 500자 안에 웃음이든, 감동이든, 통찰이든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ChatGPT를 활용해 글을 쓰고 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나 역시 처음 몇 개의 글은 그렇게 올렸다. 그림 그리는 것도 빠듯한데 그저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한 스레드에까지 정성을 쏟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들 글에는 잘 달리는 빨간 한트가 내 글에는 없었고, 무반응이었다. 나 역시 ChatGPT스러운 내 글이 민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답게 써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다 3주 만에 천 명의 팔로워가 늘었다.


나는 회사에서 메신저를 할 때면 동료들이 "왜 이렇게 웃기냐"며 좋아해 주는 동료가 많았다. 일할 땐 농담도 잘 안 하는 워커홀릭이었지만, 메신저 안에서는 동료들과 너스레도 떨고 유머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친구들에게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고, 감정적 위안을 잘 주는 소녀이기도 했다.


거기에다가 지난 6개월 간 심혈을 기울여 브런치에 올렸던 장문의 글과 비교하면 스레드는 많아봤자 겨우 500자 아닌가. 하루에도 몇 개씩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이 내게는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다. 500자 안에서는 땅을 파듯 깊이 들어갈 필요도, 감정의 근원을 끝없이 따라갈 필요도 없었다.


10년간 고군분투한 회사생활에서의 꿀팁과 자잘한 나의 회사 에피소드를 풀어놓았고 그렇게 3주 만에 천 명의 팔로워를 모았다.


사람은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브런치에는 온 정성을 쏟은 글에 하트 20개를 받기도 힘들었는데, 스레드에서는 괜찮은 글에는 하트 100개 이상, 공감이 많이 일으켰다면 300개 이상, 대박이 터진 글은 하트 1,000개가 넘어갔다. 게다가 스레더(스레드 유저)들 간의 유대관계가 꽤 좋아서 마음이 맞는 스레더를 만나면 이야기를 주고받는 재미도 컸다.


글 올릴 때만 들어갔던 스레드는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틈이 나면 가는 필수 앱이 되었다. 물론 스레드 팔로워가 늘어난 만큼 내 인스타툰도 함께 떴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상관이 없을 정도로 스레더가 되어 있었다.


하루에 몇 번씩 글을 올리고, 호응을 받고, 나도 누군가의 글에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스레드를 시작하고 한 달 반, 나는 이제 팔로워 2천 명을 앞두고 있다.


브런치는 언제까지 브런치일까?


스레드에서 6주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긴 글을 쓰고 싶다. 짧은 글은 쓰기 쉬운 만큼 글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글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브런치가 사람을 승인해 가며 주는 건 대체 무엇일까?'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며 가졌던 막연한 기대는 이러했다.


- 브런치에 글을 연재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 마치 아마추어 작가가 된 듯한 뿌듯함

- 잘하면 출판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 : 브런치를 통해 출판했다는 꿈같은 이야기들

- 독립출판에 대한 정보나 방향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

-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의 네트워킹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두 번 조회수가 크게 오른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다음 지면에 올랐고, 다른 한 번은 유입 경로조차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다음 지면에 올랐던 글은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과 다른 제목으로 올라가 하트나 댓글, 구독자로 이어지는 진짜 반응도 거의 없었다. '허수 유입'이었다.


브런치 앱을 들어가 보면, 여러 로직에 따라 보이는 연재글과 인기글, 브런치북이 있지만, 어떤 기준으로 메인에 노출되는지도 알 수가 없다. 나처럼 글에 대한 꿈이 있는 초보 작가들의 글을 골고루 실어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지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브런치 앱의 화면 로직은 2010년대 UI UX에 머물러 있다.


한 권의 책을 마무리지었을 때 POD를 출간하라는 알림이 온 것이 다였다. 나는 독립출판에 대한 정보를 알 길이 없어 유튜브를 배회하다가 클래스 101에서 유료 결제를 하고서야 출판까지의 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를 지원하겠다는 여러 글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그 지원도 별로 없을뿐더러.)


승인까지 해가면서 사람을 골라 받았다면, 그 안에서 사람을 키워주고, 네트워킹 해주고 작가로 성장하기 위한 독려를 해야 하는데, 소수의 잘 나가는 작가들과 그들을 아래서 바라보는 초보 작가들은 알아서 생존하는 식으로밖에 안 느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타적인 브런치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지금으로서는 장문의 글을 저장하는 용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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