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2박 3일 국내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광주와 목포였다. 국내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국내에 다양한 지역에 가봤지만, 광주와 목포는 우리 둘 다 가본 적이 없었다. 전라남도를 가더라도 순천, 여수, 남해가 주요 거점이었기에 목포로 갈 생각을 하지 못했고, 담양까지는 내려가봤지만 이상하게도 광주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직장생활에 지쳐 자연에서 위로받기 위한 여정이 대부분이었기에, 광역시는 자연스럽게 후보군에 오르지 못했다.
우리는 서울에서 광주까지 가서 하루를 쉬고, 다음 날 광주에서 목포까지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스레드를 통해서 광주행을 알렸고 광주 시민들이 여러 맛집을 알려주었다. 유튜브에서 광주 여행로그를 보는데 나와 꽤 성향이 잘 맞아 보이는 어느 여성의 여정이 마음이 들어 그것 또한 참고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네 시간을 달려 광주에 도착한 후 우리가 아침을 먹기 위해 간 곳은 '진식당'이었다. 이곳의 애호박 찌개가 맛있다는 후기가 많았고 무엇보다 보기 드문 24시간 식당이었다. 광주에 도착하니 아침 9시쯤이었는데, 토요일 아침 일찍 문 여는 식당도 잘 없는데, 심지어 맛집이라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고, 이미 식사를 마치고 간 자리들이 여럿 보였다. 식당 아주머니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계신 모습을 봐선 맛집 포스가 느껴졌다.
간장게장도 맛있다고 들었는데, 그날 날씨가 불볕더위라 상할까 봐 걱정되었다. 주문받으시는 아주머니께 날이 더워서 간장게장 시켜도 괜찮냐고 여쭤보니, 아까도 주문 나갔고 신선하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길래, 애호박 찌개와 간장게장을 시켰다.
나는 간장게장을 엄청 좋아하는데, 나름의 철칙으로 집에서 절대로 시켜 먹지는 않는다. 먹고 싶을 때면 세상 불쌍하게 유튜브에서 먹방을 찾아본다. 그러다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맛있다는 식당에 갔을 때만 한 번씩 시켜 먹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을 많아봤자 일 년에 한두 번 먹는 꼴이니, 얼마나 기대감을 갖고 음식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10분쯤 기다렸을까, 음식이 나왔다.
애호박 찌개라고 들었을 땐, '애호박 좀 많이 들어간 찌개겠지' 싶었다. 실제로 그 생각은 맞았으나 찌개의 맛은 여태껏 수도 없이 먹어왔던 것과는 또 달랐고 중요한 건 엄청 맛있었다!
칼칼한 맛과 애호박의 달짝지근한 맛, 군데군데 있는 고기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고, 매콤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 좋아할 수가 없는 맛이었다.
간장게장은 또 얼마나 신선하던지! 쫀득하면서 짭짤한 맛이 정말 맛있어서 진실의 미간을 찌푸리고 남편을 쳐다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맛있다. 여기 짱이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들어와 옆자리에서 고등어구이를 시키셨는데, 구이가 나온 모습을 곁눈질로 보니 그 또한 예사롭지가 않았다. 집 근처에 이런 가게가 있으면 주말마다 가서 이것저것 사 먹을 것 같다.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를 맛보니, 내가 남쪽으로 많이 내려온 게 실감이 났다. 특유의 젓갈향이 나는 김치는 시원한 맛은 덜하지만 자꾸만 젓가락이 가는 투박한 매력이 있는 맛이었다.
밥을 먹고 나오니, 여기가 사막인가 싶을 정도로 타는듯한 햇빛이 쏟아졌다. 날이 좋으면 광주의 자연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은 꼼짝없이 광주 실내 여행이 되어버렸다.
배도 불렀겠다, 이제는 카페인 차례였다. 대한민국의 커피는 상향평준화돼 있고, 어느 지역에 가도 고퀄리티 카페가 많아서 고르기 어렵다. 여러 후보군들 중에서 그냥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유튜브에서 봤던 에프프레소 바, '어론커피'였다. 평소에 에스프레소를 마시진 않으니, 여행이 주는 특별한 여정에 추가해 보기로 했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 주변을 배회하다 차를 세우고 걸어서 카페에 갔다. 5분밖에 안 걸었는데 땡볕 아래 걷는 그 짧은 시간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이 카페는 아담한 규모의, 깔끔한 곳이었다. 남편은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나는 플랫화이트를 시켰다.
잠시 후 카페 주인이 음료를 가져오셨는데 에스프레소를 두 잔을 들고 오셨다. 하시는 말씀이, "같이 드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서비스로 에스프레소 '피에노'를 한 잔 더 들고 오셨다. "어머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서비스에 감사한 마음을 안고 한 모금 넘겼는데... 세상에 너무 너무 너무 맛있었다.
나름 홈카페 비슷하게 흉내 내며 만들어먹던 내 라테들이 한낱 저렴한 공산품으로 격하되는 기분이었다. 부드럽고 고급스럽고 진하고 적당히 쌉쌀 달콤한 맛의 조화가 공들여 만든 공예품 같달까. 남편과 마주 보며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안 먹어봤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
그렇게 남편과 한참 커피를 홀짝이며 나의 첫 에세이 출간에 대한 이야기와 남은 여행 일정에 어딜 가면 좋을지에 대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사장님이 또 오셨다. "커피만 드시면 입이 마를 것 같아서요." 사장님이 가져다주신 건 핑크 색깔의 차가운 차였다. 느닷없는 친절 공격 2연타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날 우리가 낸 세 잔의 커피 값은 단돈 9,000원. 에스프레소 값이 평균 3,000원 밖에 하지 않는, 에스프레소바 중에서도 저렴한 곳이었다. (에스프레소 바에서 파는 커피는 한 잔 가격이 보통 3,700원 선이다.) 심지어 두 잔을 무료로 먹어 총 다섯 잔을 마셨다. 남편도 나도 나름 커피 입맛이 고급인데, 이 집은 커피도 예술이었다.
결국 감사함을 표현할 길이 없어 스레드에다가, 이곳 브런치에다가 이렇게 글을 쓴다.
낯선 도시의 첫인상은,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보여준 온도와 그곳에서 먹은 한 끼 식사의 맛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광주에서 고작 3시간 있을 뿐이었는데도 남은 여정이 더욱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