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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들고 나서 기쁘지 않습니다(?)

by 리틀 골드문트

책을 만들었습니다.


브런치에서 작가 승인을 받고 난 후, 꾸준히 연재하고 수정을 거듭하여 올렸던 뉴욕 한달살이와 제 인생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구독자분들은 몇 없지만, 매번 부족한 글을 올릴 때마다 하트를 눌러 주시는, 얼굴도 모르는 감사한 분들을 위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글로 올리겠습니다.


브런치에서 구독자를 모으려면 다른 채널에 가서 열심히 댓글도 달고 하트도 달아야 한다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실은 20대부터 제게는 꿈같았던 일 중 하나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브런치를 시작할 때의 제 마음은 수년간 제 장기를 짓누르는 생각을 내던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소통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64편의 제 두서없는 글들에 하트를 눌러주시고 구독을 눌러주신 열 분은 제게 매우 특별한 분들이십니다.


인쇄소에서 책이 완성된 것을 봤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책을 완성하고 판매 준비를 하고, 주변에 책을 보여주는 일이 생기며.. 그 기쁨이 줄어들고 있음을 느낍니다.


내 손으로 책 한 권을 완성시키는 일은 그토록 바랐던 일이었는데.. 이 뜻밖의 기분은 매우 당황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요즘 좀처럼 잠에 들기 어려웠고 일을 하다가도 집중하지 못하고 그 생각이 제 머리 주위를 떠돌아다녔습니다.


'내가 몇 달 동안 품고 낳은 이 글을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겨서 그런 걸까?'


판매에 대한 스트레스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 글을 팔아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기에 그것은 오히려 안 해본 일을 하는 것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스트레스에 더 가깝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는 이 불쾌의 근원은 그보다는 좀 더 글 자체에 있습니다.




저는 살면서 확신이 필요한 때면 도서관이나 책방을 갔습니다.


제가 비교적 자기주장이 강한 인간으로 자란 데에는 독서가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오로지 저자들의 주장만이 가득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심장을 후벼 파는 따뜻한 감성이 깃든 책이어도 엄밀히 말하면 저자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점에서 책에 대한 이견을 내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반론이 필요하다면, 반론을 주장하는 책에 다가갈 뿐입니다. 의견을 논하고 찬반 토론을 하는 곳은 별도의 모임과 공간에서나 할 법한 것이지, 보통 책을 파는 공간에서 하는 행위는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는 책을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태어나 그저 먹고 싸고 자는 것만으로도 잘한다고 예쁨 받는 유아기를 지나면, 온통 세상은 평가의 잣대로만 가득할 뿐입니다.


제 기분에 대한 힌트를 거기서 얻었습니다.

저는 제 책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을요. 이건 단순히 '이 사람이 별로라고 하면 어쩌지?'의 감정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고 세상에 내놓는 행위는, 공중으로 휘발돼 버리는 솔직한 발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의 내지 한 장은 뒷장의 글자가 보일 정도로 얇은 종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한 장을 채우기 위해 홀로 보내야 했던 시간들과, 깊은 땅 아래 묻혀 있던 감정을 어지럽게 파내야 했던 고통과, 파헤쳐 얻은 조각조각을 이어 붙이기로 한 용기와, 그것들을 제 부족한 언어라는 수단으로 정리해 나간 가상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제 뉴욕 여행 에세이의 주요 소재인 뉴욕은, 여행지를 빙자한 제 삶의 방향을 찾는 상징물이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에서 비롯된 제 인생을 회고하는 교차적인 시선들에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몇 달을 내던지고 다시 주워오고 다시금 끌어안은 제 글이, 제 분신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분신은, 나 자신은, 어떤 형태로든 평가받고 싶지 않잖아요.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제 책이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화의 주제가 되는 것 또한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이 초짜 작가의 심경에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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