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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뉴욕에 왔을까 (5) : 맨해튼이라는 '나라'

콘크리트 정글

by 리틀 골드문트

뉴욕 맨해튼은 실로 모든 게 크다. 한국에서 큰 건물들이 모여있다는 여의도에서 일해본 적이 있지만, 뉴욕의 건물 규모는 여의도의 빌딩숲보다 더 클 뿐만 아니라 빽빽하고 빌딩 하나 하나가 개성이 있어 전체적으로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맨해튼 거리를 걷다 보면 내 키와 몸집의 2배만 한 사람들 투성이라 그들 사이에서 나는 꼬꼬마 초등학생처럼 느껴지지만 그들 역시 맨해튼 빌딩의 위엄 앞에서는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 정도일 뿐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2년 전 스위스 융프라우와 아이거를 봤을 때 과연 '유럽의 지붕'이라 불릴만한 거대한 산맥의 경관에 큰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맨해튼 거리를 걷다 뜬금없이 스위스의 융프라우가 떠올랐다.


스위스 융프라우가 대자연의 경관이라면, 뉴욕의 빌딩숲은 인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경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뉴욕에 오기 전까지는 '뉴욕은 빌딩숲'이라는 말이 그저 빌딩이 많아서 붙인 이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뉴욕의 빌딩숲은 그저 빌딩이 많아서가 아닌, 각각의 고유한 모양을 한 빌딩들이 빽빽하게 모여 입체적인 경관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대자연을 보듯 경이롭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경관에 빌딩숲이라는 말만큼 또 어울리는 것이 있을까? 아니, 제이지와 엘리샤키스가 부른 'Empire State builing' 속 뉴욕을 일컫는 'concrete jungle(콘크리트 정글)'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숲은 나무, 즉 빌딩만을 연상케 하지만 정글은 그 숲에서 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까지 연상케 하니까.






뉴욕에는 흔히 말하는 '5대 전망대'가 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탑 오브 더 락(Top of the Rock), 써밋 원 밴더빌트(SUMMIT One Vanderbilt), 원 월드 전망대(One World Observatory), 엣지 전망대(Edge)가 그것이다. 각 전망대의 높이는 물론 전망 특징, 액티비티가 다르기에 도장 깨기 하듯 전망대를 모두 경험해 보는 관광객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 중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만을 방문했다. 그것조차도 뉴욕 인기 관광지를 특정 개수만큼 골라서 갈 수 있는 '뉴욕 시티 패스'를 구매했는데 패스권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필수로 포함되어 있어서 아까워서 간 것이었다.


전망대에서는 뉴욕의 멋진 전경을 높은 곳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SNS에 자랑할만한 멋진 사진을 건질 수도 있다. 누군가는 5대 전망대 중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가장 별로라고 했지만 충분히 갈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망대보다도 센트럴파크 호수 너머로 보이는 빌딩숲, 허드슨강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야경에 반짝이는 빌딩숲, 브루클린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모습이 더 좋았다. 서로 다른 각도,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의 빌딩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위에서가 아닌, 마주 바라볼 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해질녁, 건물 면면에 다른 빛깔의 색을 뽐내는 노을빛을 보고 있노라면, 빛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여 표현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하루종일 걸어 다닌 탓에 반쯤 잠든 채로 뉴저지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가도 까밤 밤 아래 반짝이는 청흑색의 맨해튼 야경을 보면 '그래, 지금 난 내가 꿈꾸던 뉴욕에 있는 거지.' 하고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뉴욕에 오는 데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학생부터 뉴욕에 갔으면 하고 막연히 마음 안에 나만의 꽃을 키우며 조금씩 물을 주고 있었다. 그 꽃이 너무 커져버려 내가 터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떠났다.


뭔진 모르겠지만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었다. 언제나 나는 답답했다. 바다 너머의 것을 보고 싶었다.


뉴욕 맨해튼은 미국이라기보단 맨해튼이라는 나라 같다. 모든 인종이 살고 있고 최신의 핫한 것은 물론, 역사가 오래된 가치들과 이념도 모두 자리하고 있다. 어느 순간은 감당이 안되어 숨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은 놀라운 감동을 받고 행복을 느낀다.


이 입체적인 공간에서 내 오감은 쉴 새 없이 자극받는다. 자극은 긍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경험을 모두 동반한다. 분명한 것은, 이 입체적인 공간 속에서 내 시선 역시 입체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내 지평선은 다각화된다. 아마도 내가 그간 그렇게 답답했던 건 복잡한 내 생각들이 단조로운 자극 안에 갇혀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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