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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형 Aug 25. 2023

04_배낭의 짐 보다 설렘이 더 커서 괜찮아!

첫 등교를 기다리는 신입생의 마음으로


“좋아! 언제?”


등산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인지, 또는 아빠와 함께하는 캠핑이 좋았던 건지, 망설임 없이 흔쾌히 대답해 준 다섯 살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달력 앞에 섰다.


“음, 다음 주말 어떨까? 토요일에 올라가서 일요일에 내려오자!”




5월 22일 토요일. 그렇게 디데이는 정해졌다.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가는 캠핑. 바로 아들과의 첫 백패킹이다. 처음이라는 상황과 시작이라는 도전은 늘 설렘과 긴장의 연속이다.


문득 아내와 함께했던 첫 캠핑 날이 떠올랐다. 아직은 연인 사이였던 십여 년 전, 우린 참 용감한 캠퍼였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낯 뜨거운 장비와 용품을 들고 우린 산에서 바다에서 섬에서, 때로는 휴대전화 신호가 닿지 않던 벽오지(僻奧地) 산중에서, 어느 날은 도보 거리에 편의 시설이 즐비한 관광지에서 캠핑을 즐겼다. 아내와의 첫 캠핑은 서울에서 멀지 않은 서해안의 바닷가였다. 대형마트에서 산 텐트와 매트, 침낭, 은박 돗자리, 버너만을 들고 떠난 무모한 도전이었다. 의자도 테이블도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감성 캠핑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춥고 배고프고 어둡고 번거롭고 불편한 캠핑이었지만 낭만만큼은 충분했다. 비록 이후 수일 동안 이비인후과를 들락거리며 감기약 신세를 졌지만 말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성인이었고 연인이었기에 감내하고 만족하며 즐길 수 있었던 거다. 만약 캠핑 후 아이가 감기로 고생한다면? 아마도 아이를 고생시켰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몹시 시달릴 테다. 그렇기에 젊은 시절처럼 호기롭게 덤벼들 순 없었다. 


나는 마치 입학을 앞둔 신입생의 마음으로 아들과의 첫 출정을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의] 등산복, 등산화, 모자, 방한 의류, 여벌 옷과 양말

[식] 저녁거리, 아침거리 및 간식거리, 식수, 음료 및 보온병

[주] 텐트, 침낭, 매트, 랜턴, 체어, 테이블, 배낭 


일단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야영 장비 순으로 생각했다. 꾸준하게 산행을 즐겨왔기에 다행히 옷은 준비되어 있었다. 빠른 건조가 가능한 기능성 티셔츠와 바지, 발목을 단단히 잡아주는 등산화, 그리고 햇빛과 낙하물로부터 머리와 얼굴을 보호해 줄 모자도 필수다. 산행 후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을 여벌 상/하의와 속옷, 그리고 양말도 잊지 않았다. 산중의 밤은 도시의 밤보다 기온이 낮으니 일몰 이후의 쌀쌀한 밤을 대비해서 덧입을 경량 패딩 재킷과 도톰한 바지도 챙겼다.


먹거리는 다행히 화기를 사용하지 않는, 아니 사용할 수 없는 백패킹의 정서를 전제하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비화식, 즉 불이나 버너 등의 화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끼니를 해결해야 하므로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아 오히려 준비하기 편했다. 평소 아들이 먹고 싶어 하던 메뉴를 준비하면 좋아할 것 같았다. 저녁거리로는 컵라면과 마트표 족발을, 아침거리로는 빵과 사과를 선택하고 방울토마토와 오이, 초코바 등 약간의 스낵을 간식으로 챙겼다. 마실 것은 컵라면을 위한 보온병의 온수를 제외하고, 각자의 음료와 물의 총량이 약 1L가 되도록 준비했다. 


야영 장비는 내가 보유한 것과 새롭게 구비해야 하는 것으로 다시 나눴다.


[보유 중인 것] 텐트, 침낭(아빠), 체어, 랜턴, 배낭

[구비해야 할 것] 침낭(아들), 매트, 테이블


다행히 나에게는 2kg대의 작고 가벼운 2인용 알파인 텐트가 있었고, 최근 미니멀 캠핑을 지향하며 사용하던 경량 체어와 랜턴은 백패킹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듯했다. 아들에게는 평소 산행 시에 메던 12L 등산 배낭이, 나에겐 오래전 배낭여행을 다닐 때 사용하던 55L 배낭이 있었는데, 이번 짐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오토캠핑을 다니며 사용하던 솜 침낭이 몇 개 있었지만, 배낭에 짊어지고 오를 만한 부피와 무게의 침낭은 하나뿐이어서 추가 침낭을 구매해야 했다. 매트와 테이블도 필요했다. 먼 거리를 두 발로 횡단하는 백패커에게 체어나 테이블 따위는 사치품이겠지만, 아이와의 쉼을 생각하는 아빠 백패커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은 중요한 이슈다. 고민 끝에 아들이 사용할 구스(거위털) 침낭 한 개와 폴리에틸렌 소재의 접이식 엠보싱 매트리스 한 쌍을 구매했다. 체어와 같은 브랜드의 테이블까지 구매하고 나니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춰진 듯했다.


이제 실전과 같이 배낭에 패킹(packing)해보았다. 텐트와 침낭, 매트, 랜턴, 체어와 테이블, 먹거리와 식수, 음료, 보온병까지. 두 명분의 장비를 모두 나의 55L 배낭에 담으려니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들의 12L 배낭은 여벌 옷과 양말, 방한 재킷, 작은 장난감, 그리고 이동 간에 먹을 간식과 식수로 이미 가득 찼다. 어쩔 수 없이 텐트는 배낭의 헤드에, 두 개의 매트는 배낭의 아래에 외부 결속을 하고 어깨에 둘러메어 보았다. 혹시나 산행 중에 불편하지는 않을지, 외부 결속한 매트와 텐트가 탈락하지는 않을지, 무려 20kg에 육박하는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건 과연 가능한 건지 걱정된 나는 아들과 함께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25층 건물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서 꼭대기 층까지 천천히 걸어 올라보기로 했다. 계단을 오르다 숨이 가빠올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들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고 흔들어주었다.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사인이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외침과 함께 계단을 한 칸 두 칸 올랐다. 마침내 25층에 올라서서는 마치 산 정상에 오른 듯 벅찬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배낭이 무겁지는 않았어? 아들?”

“조금 무겁기도 한데, 그보다 등이 조금 더웠어. 아빠는?”

“배낭은 무거웠는데, 배낭의 짐 보다 설렘이 더 커서 괜찮아!”




이렇게 첫 ‘박배낭(泊背囊, 1박 이상의 야영 장비를 포함한 배낭을 일컫는 백패킹 용어)’이 꾸려졌다. 떠날 준비는 모두 마쳤으니 이제 어디를 갈지, 목적지를 설정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첫 백패킹에 고려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아이가 오를 수 있는 수준의 산일 것

2.         야영 금지 구역이 아닐 것

3.         긴급한 상황 발생 시 빠른 하산이 가능한 거리일 것

4.         익숙한 등산로이거나 이정표가 친절한 어렵지 않은 등산로일 것 

5.         텐트를 칠 수 있는 장소의 면적이 제한적인 경우, 차선책이 있는 곳일 것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즈음, 불현듯 아들과 자주 거닐던 전월산이 떠올랐다. 


등산로 입구부터 ‘박지(泊地, 백패커들이 설영 하는 장소를 일컫는 백패킹 용어)’까지는 편도 약 2km 거리의 높지 않은 산으로 1시간 이내에 하산할 수 있으며, 집까지는 불과 십여 분 안팎 거리다. 야영 금지구역이 아니어서 백패커들이 빈번하게 쉬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위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아들과의 첫 박지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했다.


이제 날씨만 도와주면 된다. 일기예보를 확인해봤다. 아직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제법 있는 5월, 주말의 일기예보는 아침 기온 12도, 한낮 기온 26도를 내다보고 있었다.  산행과 캠핑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가 예상됐다. 


새 학기 첫 등교를 기다리는 신입생의 마음으로 혹시 빠트린 것은 없는지 준비물 목록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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