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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Oct 14. 2024

밴프(Banff) 여행의 시작

사형제 여행(3)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겨우 항공권을 예약하고 호텔을 찾는 중이다. 갈 곳은 많고 여행 일정은 확정됐고. 동선을 고려하면서도 가격이 적당한 곳을 찾아야 한다.

어제 문득 조카 A가 생각났다. 이 귀찮은 걸 완벽하게 해 주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덕분에 캐나다에선 내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여행을 했다.


사형제가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건 이었다. 오빠가 사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모여 밴프~재스퍼로 떠나기로. 7월 말~8월 초라 호텔 예약도 빨리 해야 한다고 오빠가 서두르길래 그러시라 했다. 알고 보니 오빠는 닦달만 할 뿐 모든 실행은 아들인 A 몫이었다.  

“고모, 계획 잡느라 얼마나 머리 굴렸는지 몰라요. 너무 무리하지 않게 일정을 잡아야 하고, 호텔도 가성비 좋으면서 괜찮은 데로 골라야 하고. 주변 맛집도 아빠는 한식을 좋아하니까 중간에 한식당을 꼭 추천해야 하고….”


몇 번의 카톡이 오고 갔고, A는 아주 깔끔한 여행 계획서를 보내왔다. 구체적인 소요시간, 여행 코스, 호텔, 추천 맛집 1안/2안까지. 완벽했다.  

그뿐인가. A는 레이크루이 근호텔을 예약했다며 결제까지 마쳤으니 잘 즐기시라 했다.

- 뭐라고? 아니 그 비싼 데를 왜?

- 에이. 멀리 캐나다까지 오시는데.. 제 선물이에요.


꼬맹이 시절 A는 자타공인 장난꾸러기였다. 엄마는 우리 집안에 저런 애가 없는데 웬 돌연변이냐고 혀를 내두르셨다. 그러나 순발력, 기지, 잔머리, 말재간은 좋은 버전으로 무르익어 누구보다 유연하고 친밀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낯선 땅으로 가야 했던 A가 두 아이의 아빠로, 부모를 챙기는 장남으로 열심히 사는 모습이 든든했다.  




2남 2녀 사형제와 올케 둘, 여행객은 모두 여섯이다. 넉넉히 9인승 차 빌렸지만 짐이 한가득이다. 각자 챙긴 캐리어 외에 마실 물과 일용할 먹거리까지 큰 올케가 살뜰히 챙긴 덕분이다. 테트리스 쌓듯 막내가 척척 야무지게 트렁크를 채운다.


이번 여행은 완벽하게 A의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예기치 못한 산불로 재스퍼 일정이 통째로 날아가는 바람에 A는 부랴부랴 대안을 짜내느라 바빴다. 사실 재스퍼에 갔더라면 너무 빡빡한 일정이었을 거라고 우린 신포도 리를 펴며 위로했다.


랭리에서 출발, 첫날은 켈로나에 있는 와이너리에 갔다가 레벨스토크에서 하루 머물렀다. 패키지여행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여유로움이다. 처음 도착한 와이너리(Mission Hill Family Estate Winery)는 음악회 행사가 있어선지 어수선했다. 그러나 마치 조각공원같이 꾸며진 공간이라 사진에 담기 좋았다.


두 번째로 들른 와이너리(Quails' Gate Winery)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해외에선 와인 테이스팅을 하고 싶어도 섬세한 맛 표현을 전달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통역로 활약한 작은 올케 덕분에 원을 풀었다. 아직 식전인데 적당한 취기가 기분 좋게 만든다. 맘에 드는 와인을 사들고 와이너리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대기하는 동안 와이너리 주변을 산책한다. 휴게실 같은 곳까지 완벽하게 아름답게 꾸민 정성이 느껴진다.


둘째 날은 존스턴 협곡으로 향했다. 폭포 자체는 놀랍지 않았지만 가는 길이 좋았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걸 내려갈 때 놓칠 세라 천천히 걸었다. 저질 체력인 나는 왕복 5km라는 설명에 살짝 겁을 먹었지만 가뿐히 다녀올 수 있었다. 이게 가능한 건 순전히 여행의 매직 덕분이다.


드디어 도착한 밴프 시내. 9년 전 딸이랑 왔을 땐 여행자센터 같은 데에 들렀고, 내가 궁금한 걸 딸에게 물어보라고 했던 것 같다. 패키지여행이라 자유시간 한 시간 점심 먹고 밴프 시내를 둘러봐야 했다. 그러나 사실상 밥 먹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때 다 못 걸었던 길, 그리 멀지도 않은 길을 끝까지 걸어가 보니 A가 추천한 (Cascade of Time Garden)이 나온다. 세상에, 그야말로 신세계에 온 듯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어느 곳을 찍어도 바로 화보가 되는 곳. 다채로운 빛깔의 꽃은 힐링 그 자체였다. 우린 사형제 인증샷을 여러 번 찍었고, 커플 사진을 서로 찍어주겠다고 떠밀었다.  


돌아오는 길에 관광지에 으레 있는 기념품점에서 밴프 티셔츠를 사기로 했다. 남들처럼 똑같은 옷 입고 사진 찍는 것, 우리도 해보자고. 그러다 약간 쌀쌀하기도 하니 긴팔 맨투맨까지 두 벌 고르기로 의기투합했다. 반팔은 모두 같은 디자인으로, 긴팔 옷은 각자 취향대로 하되 밴프 글씨가 있는 것으로. 아무것도 아닌 그 쇼핑이 얼마나 즐겁던지. 우린 지칠 때까지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며 만족해했고, 다음날 단체 사진을 기대하며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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