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여행 둘째 날. 도나우 강변에서 본 헝가리 국회의사당 야경은 예상보다 더 멋있었다. 디즈니랜드를 처음 본 어린아이처럼 건물 주변을 떠도는 조명이 진짜 새라고 우겼는데, 그렇게 느낄 만큼 신비로웠다. 물론 저렇게 돈을 쏟아부어도 될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 건물은 단순한 의사당 건물이 아니라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라니 그들에겐 자부심 이상일 것이다.
언젠가 부다페스트에 다시 오면 오늘이 기억나겠지? 은근 감성파인 J가 말을 건넨다.
아마도…. 당연히….
부다페스트는 역시 야경이다. 대표적인 관광명소 ‘어부의 요새’엔 낮과 밤, 두 번 다녀왔다. 도시에 불이 켜지면 사람들은 국회의사당 건물이 살짝 배경으로 보이는 난간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눈으로 보는 것처럼 멋지게 나오지 않아도 그 풍경을 담으려고 줄을 선다.
우린 굳이 국회의사당을 찾아가진 않았다. 야경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헝가리 정치인들은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야경을 보듯 환호할 수 있는 정치는 과연 언제쯤 가능할까.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진입한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의 풍경에 씁쓸해진다.
# 발레 공연
빈을 여행할 때 국립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답게 우리가 머무는 동안 열리는 공연은 모두 매진이었다. 사전 준비가 부족한 여행은 이렇듯 빈 구멍을 남긴다.
다음 여행지에선 어떤 공연이라도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검색해 보니 Mupa Budapest에서 헝가리 국립발레단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시큰둥한 동행은 진짜 혼자 갈 거냐고 했지만, 이미 여행이란 ‘따로, 또 같이’가 좋다는 걸 알기에 이른 저녁을 먹고 다녀왔다.
“브라보! 너무 좋아!”라는 말을 백 번쯤 하는 관객들 속에서 난 무용수의 등에 맺히는 땀방울과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경험에 입이 바짝 탔다. 지금까지 내가 본 발레는 현장음이 소거된 게 아니었던가. 작은 공연장, 무용수가 내딛을 때 나는 마루의 삐그덕 소리마저 리얼 그 자체여서 신선했다.
공연 중간 브레이크 타임. 로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간단히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공연과 예술이 일상에 녹아 있는 듯한 분위기가 좋아 나도 그들 곁에 서 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워라밸 따위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날들일 텐데, 그래도 언젠가 공연과 가까이하는 삶을 꿈꾸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 마트료시카 인형
여행지에서 시장 구경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레이트 마켓홀은 부다페스트 중앙시장이다. 시장이 이렇게 멋질 수 있을까 싶은 건물에 들어서면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다. 1층엔 일반 시장처럼 식재료들을 팔고, 2층엔 기념품 샵과 식당들이 모여 있다. 맛있는 굴라쉬를 먹고 딸 S가 얘기한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인형을 골라보기로 한다. 그중에서 맘에 드는 인형이 있었는데 내 마음을 들켜버렸는지 주인이 영 빡빡하다. 흥정 실패.
아, 살 걸…. 살까 말까 싶을 땐 사는 게 맞는 건데. 내내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우연히 바치(Vaci) 거리 소품샵에서 괜찮은 걸 만났다. 깎지 않아도 딱 적당한 가격. 난 역시 실랑이하는 덴 젬병이라 이런 정찰제가 좋다. 무엇보다 여행경비를 아끼느라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마트료시카 인형을 집어 들었다 내려놓았을 S에게 뒤늦은 선물을 줄 수 있어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