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내내 좋더라
이 모든 건 하와이 때문이다. 아니, 하와이라서 그리 됐다.
이번엔 조용히 휴가를 보내고 싶다던 S의 말에 내가 살짝 실망의 속마음을 비쳤던가. 얼마 후 S가 마음을 바꿔 엄마랑 같이 가자 할 때, 진심 기뻤다. 심지어 손목 깁스도 풀지 않았는데, 내 마음은 벌써 날아가고 있었다. 그 소식이 가볍게 동생에게, 그리고 멀리 LA에 사는 조카 I에게까지 전해졌다. 그게 무슨 힘인지 모르겠다. 자의와 타의, 주변의 권유, 아무튼 뭔지 모를 것들이 순식간에 네 사람을 하와이에 가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조용히’ 쉬고 싶다는 S의 계획은 망했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하와이 여행에 탑승했고, 결국 두 모녀가 함께 하는 가족여행이 돼 버렸다.
빛의 속도로 항공권을 끊다
여행기간은 2주, 우린 하와이 오아후 섬에만 머물기로 했다. 우리 여행 소식에 미국에 사는 남동생이 놀라던 게 지금도 생각난다. “2주라고!!! 와우~” S와의 여행은 늘 통이 크다.
S로부터 처음 하와이 얘기를 듣고 슬쩍 찾아봤을 땐 항공료가 왕복 120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할인 행사를 하는지 싸졌다. 아시아나 왕복 66만 원! 금세 마감될까 싶어 빛의 속도로 예약했다. 나는 그동안 모아놓은 마일리지를 쓰기로 했다. 전체 금액 대비 수수료가 30만 원인 게 아쉬웠지만 다음 여행은 기약할 수 없으므로. I는 우리 도착시각에 맞게 LA에서 떠나기로 했다. 아무튼 출발부터 좋다.
호텔 사랑
S와 난 호텔을 좋아한다. 에어비앤비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린 무조건 호텔을 선택한다. 뭔가를 요청하면 즉시 해결해 주고 매일 청소해 주는 시스템인 데다 안전한 느낌 때문이다. 각자 마음에 드는 호텔을 선택한 다음, 전화로 토론하는 그 과정이 좋다. 몇 차례 S와 함께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도 서당개 3년 훈련을 하는 중이다.
이번엔 호텔 선택에 시간이 좀 걸렸다. 우리 넷은 각자의 이유로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두 달 남짓 집에서 칩거하며 요양 중이었고, 다른 세 사람은 열심히 일하느라 지친 사람들이었다. 빡센 일정을 소화하는 여행이 아니므로 무조건 호텔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하와이 호놀룰루의 호텔비가 만만치 않다. 각종 세금과 리조트피 명목으로 숙박비의 40%에 달하는 비용이 덧붙는다. 싸다 싶은 호텔은 일일 와이파이 비용까지 따로 청구한다. 넷이 가지만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룸은 따로 잡기로 했으니 비용은 감수해야 한다.
왼손 투혼으로 호텔을 검색하면서 좋은데 비싸, 이 얘기를 십수 번은 했던 것 같다. 이 정도 숙박비면 호텔에서 책 한 권 쓰고 나와야 해. 난 글도 잘 안 쓰면서 호텔비가 얼마나 비싼지 상징적으로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하와이에 가선 책도 읽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다. 그게 내 일상(?)이었으므로 최대한 빈둥거리기로 했다. 잠을 푹 잤고 16부작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선망했다.
우린 처음 일주일은 4성급 중 가성비가 좋다는 모던 호놀룰루(이하 M호텔)에 묵었고, 그다음 일주일은 하얏트센트릭 와이키키비치(이하 W호텔)에서 지냈다. 달러 환율은 치솟는데 2주 일정은 과했나 싶었는데, 여행할 때 쓰려고 열심히 일하는 거야, 대신 항공권을 싸게 끊었잖아, 자주 여행하는 것도 아닌데 나를 위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쿨한 동행들 덕분에 내가 호사를 누렸다.
M호텔은 상대적으로 한적한 곳에 있어 조용하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일품이었다. 호텔에서 힐튼 라군까지 걸어가 발을 담그고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는다. 하늘에 걸쳐진 커다란 무지개를 처음 본 날, 하와이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조금 했고, 금요일 밤엔 벤치에 누워 불꽃놀이를 감상했다. 맥도날드에서 사 온 하와이 맥모닝(스팸+밥)은 단 한 번의 체험으로 충분했고, 가까이 있는 San Paolo 피자는 한번 더 먹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3일간 차를 렌트해 간단히 먹을 장을 봤고, 호놀룰루 미술관과 오아후 섬 곳곳(호오말루히아 야외식물원, 와이마날로 비치공원, 누우아누 팔리 전망대, 지오반니 새우트럭 등)을 다녀왔다.
W호텔은 비교적 새 호텔이고 위치가 좋다. 와이키키 해변이 보이진 않지만 걸어갈 만하고, 맛집과 쇼핑몰들이 가까이 있어 편리하다. 호텔에서 파라솔, 의자, 킥판 등을 빌려주기 때문에 각자 필요한 대로 들고 해변으로 향한다. 늦은 오후 바다에 몸을 담그다 해질녘 낙조를 감상하고 돌아오면 말할 수 없이 뿌듯해진다.
이른 아침 해변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걷는 기분도 좋다. 또 한 번 무지개를 만났고, 이번엔 특별히 쌍무지개여서 더 반가웠다. I가 척척 예약해 준 덕분에 다이아몬드 헤드에 올랐고, 하나우마 베이에도 다녀왔다. W호텔은 오피스를 개조한 건물이라 발코니가 없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하와이에선 치명적인 것 같다. M호텔의 발코니가 그리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