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걸 좋아한다

합정동에서, 오스테리아 샘킴

by 데이지

<흑백요리사 2> 열풍으로 출연진들의 레스토랑이 난리가 났다 한다. 시즌1보다 더 강력하게,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마케팅에 관련 업계가 들썩이는 듯하다.

샘킴 셰프의 레스토랑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몇 달 전이다. 예전에 ‘모닝페이지’로 아침을 열던 습관대로 시간 날 때마다 몇 달 후 일정을 미리 체크한다. 나같이 덜렁대는 사람에게 핸드폰 캘린더 앱은 무척 유용하다. 엄마 면회 일정을 잡아두고, 브런치 글 쓰는 날을 박아놓고, 정기 모임을 체크하고, 이때 누굴 만날까, 뭘 할까 궁리한다. 일정이 빼곡히 채워지면 제법 계획적인 인간이 된 듯해 뿌듯하다.


1월 캘린더를 보니 동생 생일이 있다. 올해는 특이하게도 음력 변환 생일이 태어난 날의 양력 생일과 같다.

동생 생일 때 뭐 할까 생각하다, 맛있는 밥, 특별한 음식의 고민 끝에 샘킴 셰프가 떠올랐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늘 그를 따라다니던 수식어 ‘자연주의’ 식단을 맛보고 싶었는데 이때다 싶었다. 샘킴이 운영하는 두 개의 식당 중에 합정동에 있는 ‘오스테리아 샘킴’을 예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만 해도 평일 점심이라 굳이 몇 달 전에 예약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흑백요리사 2>가 공개되고 샘킴 셰프가 출연하게 된 걸 알게 됐다. 큰일 났다. 예약 앱 캐치테이블에 가보니 다행히 그날 오전 11시 30분 타임 하나가 남아 있다. 예약 성공! 내 사심이 동생 맘에도 들면 좋겠는데, 다행히 기대된단다.


미국에 사는 조카가 새해 인사를 보내왔다.

“이모, 엄마랑 샘킴 셰프 레스토랑에 가신다면서요? 아니 어떻게 예약하셨대요?”

“그냥 했지 뭐…. (으쓱)”

간발의 차이, 동물적인 감각 덕분에 스마트한 사람이 됐다.


이 모든 건, 내가 특별한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작지만 새로운 시도, 재미있는 계획, 엉뚱한 상상 등은 언제나 즐겁다.




오스테리아 샘킴이 있는 ‘합정동’은 우리에게 각별하다. 태어나서 줄곧 살았던 영등포를 떠나 새로 정착한 동네였기 때문이다. 1979년, 위태롭던 아버지 사업이 파국을 맞자 엄마는 멀리 이사하기로 결정한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한강 다리를 건너는 건, 마치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단절해야 한다는 걸 상징하는 듯했다. 매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은 언제나 지루했고 멀었다. 중학교 2학년, 어린 나이였지만 생각이 많아지면서 나는 조금씩 철이 들어 갔다.


그 시절 매년 이사를 해야 했던 기억이 선하다. 처음 경험한 단칸방 집은 생경했지만 마당에 있던 라일락 나무의 향기가 떠오르고, 불란서 빵집이 있던 다세대 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던 집의 소음이 떠오른다. 어느 해엔 엄마가 가계약을 했는데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우르르 데려갔다가 애들이 많다고 주인이 파투를 놓는 바람에 계약이 파기된 적도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양복점을 했던 집에선 우리가 안채를 썼는데 그 집 아주머니가 가끔 간식을 건네주곤 해서 따스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꽤 큰 주택의 차고에 딸린 집에 살 땐, 행여 친구가 쪽문으로 들어가는 나를 볼 새라 하릴없이 동네를 몇 바퀴 돌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지금의 합정동은 높은 빌딩으로 바뀐 홀트아동복지회를 제외하고는 예전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동생이랑 레스토랑 주변을 거닐면서 오래전 기억들을 조금씩 떠올려 보지만 전혀 다른 동네가 되어 버려 기억 속 이미지들이 와닿지 않았다.


오스테리아 샘킴에 샘킴 셰프는 없었다. 식당이 두 개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래도 큰 맘먹고 왔는데 서운하다. 멜란자네, 구운 문어와 라디치오, 그리고 랍스터 리소토를 주문했다. 자연주의 식단답게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 좋았다. 저녁 시간이었다면 와인 한 잔과 함께 좀 더 느긋하게 즐겼어도 좋으련만 아쉬웠다. 무엇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겐 실내가 너무 추웠다. 그래선지 요리가 빨리 식는 것 같았다. 그래도 동생이 마음에 들어 해서 좋았다. 특히 리소토가 맛있었다고 하니 다음에, 이 모든 열풍이 가라앉은 뒤에 다시 한번 찾아가야겠다. 그땐 합정동에 좀 더 머물면서 혹시라도 남아 있을 옛 추억을 건져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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