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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Dec 27. 2022

동유럽 여행이 터닝 포인트였을까?

퇴직할 결심을 하다

# 마지막 안식월

2018년, 안식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직장 생활의 마지막 긴 휴가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왔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동유럽으로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생겼다. 늘 그렇듯 휴가를 꽉 채운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동행은 J. 함께 살면서 단둘이 이렇게 긴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나. 과연 우리의 여행은 순항할 수 있을까. 출국일은 다가왔고, 일은 여전히 바빴다. 첫 여행지인 체코 프라하와, 인기 관광지인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숙소만 예약하고 떠났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떠난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 나를 찾는 길

마흔이 넘어 시작한 일은 2할의 보람과 8할의 스트레스를 주었다. 타이밍을 놓칠세라 대응해야 하는 일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섰다. 다양한 요구들을 조율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말을 해야 했다.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여행을 꿈꿨다.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차오를 무렵, 세 차례의 안식월이 나를 구원했다. 가능하면 먼 곳, 로밍서비스가 연결되는 곳, 직장에 무슨 일이 생겨도 달려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곳이 어디든, 그런 조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여행지에서 맡는 도시 특유의 향기는 나를 숨 쉬게 했다. 저질 체력이 무색하게 잘 걷고 잘 먹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라곤 했다. 배터리도 아닌데 그렇게 여행지에서 충전하며 달려왔다. 그런데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고, 더 이상 잘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일을 위해 내 몸을 갈아 넣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동유럽 여행은 그런 내 결심을 응원했다. 그렇게 해도 된다고, 1년여 남은 기간 동안 잘 준비하라고 토닥이는 듯했다. ‘경력 단절’ 기간을 만회하려는 듯 열심히 뛰어온 내게 더 늦기 전에 나를 찾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 예상치 못한 코로나

지금 이렇게 ‘멈춤’ 상태로 3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래도 퇴직을 결심했을까. 이렇게 오래 쉴지는 예상치 못했지만, 동유럽의 낯선 도시에서 문득문득 떠올랐던 고민과 판단은 여전히 옳다. 후회하지 않는다. 뒤늦은 여행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내 삶의 방향은 맞다고, 속도만 좀 늦어질 뿐이라는 위로가 받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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