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가를 포기했던 이유

그럼에도 다시 글을 쓰는 이유

by 작은인간

글이 주는 힘은 분명히 있다. 그 글이 누군가가 보기에 아무리 거지발싸개 같을지라도 말이다. 글은 결과물이 어떠한가의 여부를 떠나 그 과정 자체에도 충분한 힘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글을 쓰기 위해 지나간 과거를 회상함으로 흘러간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지나간 일을 글로 쓰다 보면 스쳐간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나조차도 몰랐던 나의 마음을 글로 정리하고 나면 내 삶까지 정돈되는 편안함을 느낀다. 다름 아닌 글을 쓰는 행위 자체로 인해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나 역시 글을 통해 이런 과정의 행복을 느낀 사람이다. 내가 ‘글’이란 것을 접한 건 일기를 썼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 여느 학생들과 다름없는 시작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숙제로 한 두 자 적던 것이 어느새 내 삶을 채우는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은 지루했던 내 삶에 유일한 흥밋거리였다. 아무리 반복된 삶이라 할지라도 쓰기 위해 머리를 감싸매면 뭐라도 새로운 것이 나왔다. 사춘기, 많은 생각들로 혼란할 때 인생의 의미를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를 통한 성찰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자양분들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날 먹여 살리고 있다. 아, 아직 물질적으로 먹고살진 않는다. 글로는.


나는 한때 작가를 꿈꿨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학교에서 문예창작대회가 있으니 글을 써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그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소설 한 편을 휘리릭 써서 출품했다. 그냥 글 쓰는 게 재밌던 차에 소설도 한 번 써볼까 하여 냈던 작품이 덜컥 대상을 타버리고 말았다. 몇몇 주위 학교들과 함께 연 소소한 대회였지만 그래도 대상이란 걸 타버리고 만 나는 그 길로 글쓰기에 푹 빠졌다. 그 후 내리 3년을 같은 대회에서 대상을 받아내었다. 이런 연유로 작가가 되면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작가는 돈벌이가 안된다는 주위 어른의 말을 이겨낼 용기가 없어 이내 곧 작가가 되길 포기했다. 이후 더 이상은 생계로써의 글짓기에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20250212_233955.png 내 첫 작품이다. 용케도 이게 내 웹하드에 저장되어 있었네. 이 글이야말로 나의 소중한 추억이다.


하지만 글은 여전히 나의 자존감이고 내 친구이자 스승이 되어 준다. 아무리 내가 못나 보여도 글을 쓰면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글이야말로 내 자존감 지킴이인 것이다. 그렇게 난 외롭고 힘들 때 키보드 앞으로 달려가 내 마음과 대화한다. 반대로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을 곱씹어 보고자 할 때도 나는 자주 글 친구를 소환하기도 한다. 그 속에서 삶에 대한 감사와 나에 대한 격려가 꽃피우기도 한다. 간혹 똑같은 문제들로 힘들어질 때 내가 쓴 글을 뒤적인다. 내가 찾던 글을 꺼내었을 때 그 글이 지금 내가 갈 방향을 알려 주는 스승이 된다.


그렇게 내 글은 생계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글쓰기는 삶을 살아내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저 쓰는 행위가 좋아 끄적였던 글들이 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채워갔다. 그런데 내가 살아내기 위해 썼던 그 글들이 누군가에게 가닿아 그들에게도 위안을 주기 시작했다. 내 아픔을 꺼내놓았더니 본인도 비슷한 아픔이 있다며 내 글을 읽고 위로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처럼 내 글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사람들, 힘이 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내 글이 올라올 때마다 묵묵히 ‘좋아요’로 화답하는 사람들로부터 난 더 힘을 얻는다. 그래서 난 글로 나 자신과,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며 서로를 살리게 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최근 들어 글로부터 얻은 이 힘을 내 사랑하는 이들과 깊게 나누고 싶어졌다. 내가 글로 먹고 살 생각은 아직 없지만 글로 누굴 먹여 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글이란 것이 배는 부르게 하지 못할지언정 마음을 든든하게 할 힘을 가졌다는 걸 나는 믿는다. 그래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무려 돈을 들여서까지 말이다. 수업을 할 때마다 내가 그동안 글을 얼마나 엉망으로 썼는지 발견하게 된다. 엉망스런 글을 보자니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한다는 기쁨이 있다. 하지만 더 기쁜 건 다름 아닌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매주 수업을 위해 주어진 글감을 가지고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생각을 발견하기도 하며 정리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글을 통해 내가 바라는 그 무엇을 그려보기도 한다.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을 말이다. 이렇게 글을 통해 다양한 나를 발견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글을 통해 나타나는 나의 모습이 어떠하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용기 있게 글로 다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글은 더 이상 힘 있는 글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화려한 언어를 쓰고 문장과 문단을 잘 정리해도 이런 힘없는 글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확률은 극히 드물다.




글쓰기는 나를 비추고 세상과 연결하는 다리와 같다. 그 다리를 통해 내가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는 또 다른 이를 살려내는 선한 순환이 이어지길 바란다. 내가 쓰는 글이 세련되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글이 진실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졌느냐다. 앞으로도 나는 글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정직하게 드러내고, 세상과 소통하며, 사랑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나의 글이 다른 이들에게 작은 빛이 되어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도구가 되길 희망한다.


40에 가까워진 지금, 다시 작가라는 꿈을 꿔봐도 좋을 것 같다. 비록 무명작가가 되더라도 내 글이 단 한 사람의 마음을 살릴 수 있다면. 단 한 명에게라도 그렇게 작가로 불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