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일기 마침.

행동하러 나갈 거라서 일기장 덮는다.

by 리틀루이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어떤 목적 없이는,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한 지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 모두에게 목적은 자유,
그리고 감옥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 도스토예프스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03년, 우리 지역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에는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것이 있었다.(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말만 자율학습이지, 실제로는 강제학습이나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부모님의 동의서 및 특정한 사유 없이는 자율학습에 빠질 수 없었으며, 자율학습은 밤 아홉시까지 이어졌으며(고3은 열 시까지였다.), ‘자율학습’임에도 불구하고 공부 외에 다른 활동을 절대 해서는 안 됐다.


졸거나, 친구와 잡담을 하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선생님에게 걸리면, 맞거나 벌을 서야만 했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맞거나 벌서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척’ 했었다.


자율학습이라는 명칭과 그것과는 반대로 학생들을 강제하는 실제 상황과의 괴리에 나는 혀를 내둘렀었다.

평소 다른 누구보다도 자유를 간절히 바랐던 나는 학교의 강압적인 실상을 접하며 얼마나 혐오스러워했고, 얼마나 우울감을 느꼈던가.


그런데 문제는 위와 같은 가짜 자유가 일상 가운데 가득하다는 것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가짜 자유, 종교가 만들어낸 가짜 자유, 가정에서 만들어진 가짜 자유들 말이다.

(가짜 자유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가짜 자유적인 정치체제를 지닌 국가들을 보면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실로 어마어마하게 실용적인 결과들을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인권이 유린당해 왔는지 우리는 확인하지 않았던가.)




자녀들이 자기 방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종용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적절하게 중용을 지키지 못하면, 방임 또는 억압으로 변질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네 방 이제 네가 알아서 맘대로 해라.’하고 자녀의 정리 의식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부모는, 방을 정말 자기 마음대로 지저분하게(간혹 정리를 잘 하는 아이가 있지만) 만들어 놓는 자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네 방 이제 네가 청소해라. 하지만 제대로 청소하지 않으면 다리에 피가 날 정도로 맞을 줄 알아.’하며 자녀에게 공포를 불어넣는 부모는, 방을 깔끔하게 정리하지만 부모를 존경하는 듯 보이지만, 나중에는 부모와 연을 끊고 싶어 하는 자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앞선 두 사례는 모두 자녀에게 자유를 구가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부모가 제공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부모의 '무책임'과 숨 막히는 '집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자녀에게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그 자유는, 방을 치우고 말고를 떠나서 자녀가 부모를 신뢰하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관계가 상호간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서로 아는 것에서 온다.


자녀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된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고집하지 않아도, 사랑을 드러내려하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고집하고 드러내려할수록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 잘 깨닫게 될 것이다.)


부모를 신뢰하는 자녀는 부모가 명령한 일 또한 믿고 따르게 된다.

처음에는 방을 왜 치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해도, 방을 치우는 일에서 오는 고단함 때문에 그 일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때로는 방을 제대로 치우지 못해 엉망인 모습을 부모에게 보여줄 때도,


자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부모가 비난을 퍼붓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임을, 오히려 사랑으로 타일러주고 바른 길을 알려줄 것임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부모를 믿는 그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를 진정 신뢰하는 자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


그 아이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즐거워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걱정할 겨를이 없으며,

만에 하나 걱정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는 곳에 세워져 있기에,


공황의 코빼기 하나 볼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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