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에 발 올려보기

어쨌든 강을 건너야 한다.

by 리틀루이스

공황 일기를 일찍이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게 나은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황에서 벗어나는 바람직한 방법은

‘나는 공황에 묶이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공황이 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라

그저 지금 맞닥뜨린 삶에 집중하는 거다.


그게 밥을 먹는 것이든,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든, 글을 쓰는 것이든, 사람을 대하는 것이든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거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황을 불러일으키는 기질이 셋업 되어 있는데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아 가냐고.


맞다. 내 안에는 공황을 일으키는 기질이 셋업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기질을 묵상하면 할수록 나는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 할 거다.


강 건너편으로 건너가고 싶지만 교량이 무너질까봐 두려워 못 건너가는 아이가,

교량이 안전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넣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반대편의 생각도 곧장 치고 올라올 것이다.

'교량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말이다.


생각 속에 갇혀버린 아이는 교량의 끝에서 겁을 집어먹은 채 다리를 떨며 있을 수밖에 없다.

공황적 생각이란 그런 것이다.


그 아이가 강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그 교량을 건너고 있는 사람들을 봐야 한다.


교량 위에서 자전거도 타고, 조깅도 하고, 대화도 나누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들

그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야 한다.


그래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나 좀 도와주세요!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까봐 두려울 수 있다.


사람들이 도와줄지 도와주지 않을지 확인해보는 방법은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 세상은 따듯하다. 그들은 나를,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고통에 갇힌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


지난 주, 바로 앞에 있던 사람에게 나의 공황상태를 알리고, 정신이 무너져 내려 도저히 어쩔 수 없음을 알렸을 때,

그는 다른 이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고, 나를 돕기 위해 내 주위에 다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나를 진정으로 걱정해주었고,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주었으며,

나의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내 곁에 머물러 주었다.


그들은 교량 위를 자유롭게 거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용기를 얻고 있다.


나는 교량이 무너질지 무너지지 않을지 신경 쓰지 않으련다.

그것은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이룩해놓은 사회, 그 안의 담당자와 전문가들이 신경 쓸 일이다.


나는 내가 교량을 얼마나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교량 위에 나의 발을 올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다.


강 건너로 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물속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과 함께 교량을 건너는 것이다.


어차피 빙 돌아가려고 해봤자

마주하는 것은 내가 건너야 하는 교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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