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니라면
죽음이 A와 Z사이의 Z가 아니라
A-1 정도의 위치라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우리가 그토록 붙잡고자 애쓰는 것들 중 대다수가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
건강이 물론 중요하지만
건강을 전부로 생각하지 않게 되며
건강과 관련한 모든 활동과 산업들이
지금 만큼의 관심을 받거나 호황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명예, 혹은 자기 체면이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죽음 이후로 한참 남은 삶이라면
짧은 호흡의 생애 동안에 누릴 명예에
급급하지 않게 된다
버킷리스트나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던 시선이
그보다 더 중요한 ‘그 다음’의 삶에
완전히 꽂혀서
자아는 부인하고 돈은 ‘그 다음’의 삶을 위해 쓰게 된다
죽음이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는 것이나
나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물론 잠시의 이별이 아쉬워 슬플 수 있다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는다
시간 안에서 시간 바깥으로 나오며
무한을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비유하자면,
100,000,000,000년의 수명에 1만큼 같이 살고
남은 999,999,999년을 함께 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절망할 필요가 무엇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에
타인과 어울릴 줄 모르고
나 자신을 내어줄 줄 모르고
섬길 줄 모르고, 먼저 다가설 줄 모르고
용서할 줄 모르고, 화목함을 이룰 줄 모르고
용기 낼 줄 모르고, 오래 참을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절망해야한다.
빨리 절망하고 절망할수록, 그리하여 돌이켜 변할수록 유리하다.
타인과 같이 살 줄 모르는데
어떻게 999,999,999,999년을 다른 이들과 같이 산다는 말인가
그는 999,999,999,999년을
홀로 지독하게 외로운 곳에서 지내게 될텐데
그에게는 차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