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지만, 그 해법은 OOOO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어지간히 다 영어로 말할 수 있어요.
지금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쉽지만 아직 아니다. 내가 추구하는 영어 말하기의 목표다.
그간 영어를 못해 자리를 피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스페인 여행 중 마드리드에서 잠깐 묵었던 호스텔이 떠오른다. 2인용 침대 6개가 놓인 12인실 도미토리였는데, 나를 제외한 숙박객이 대부분 유럽 사람이었다. 그들은 방 가운데 공간에 동그랗게 둘러 앉아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낄 수 없었다. 그들의 유창한 영어를 듣기도 어렵거니와, 내가 말할 차례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때부터 나의 영어 목표 중 중요한 부분은 '영어로 할 말 다하기'였다.
하지만 실력은 제자리걸음. 한국에서는 필요성을 못 느끼니 꾸준히 연습하지 않은 탓이다.
이제는 발리에서 1년을 살아야 한다. 필요성이 생겼다.
영어 일기를 쓰기로 했다. 영어 회화를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어 일기와 회화를 연결한 계기는 책 한 권 덕분이다. 책 제목은 <웬일! 내가 영어로 말을 하네!>. 솔직히 제목이 좀 유치한 것 같아 손이 가지 않았다(죄송합니다 작가님). 하지만 책 소개글과 저자의 서문을 읽고 나니 신뢰가 가서 단숨에 읽어나갔다.
책의 핵심 내용은 간결하다.
영어 공부의 시작점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영화 대사 같은 남의 얘기를 듣고 따라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어차피 영어 말하기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영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번역 어플을 활용해서라도), 여러 번 소리내어 읽고, 녹음하라고.
저자의 철학이 와닿았다.
주저할 것이 없었다. 바로 이날 저녁 영어일기를 썼다. 아래 4단계를 거쳐서.
다섯 문장을 썼다. '앞으로 1년간 영어 일기를 쓰겠다'는 다짐을 주제로. 적당히 영어로 쓰다가, 표현하기 어려운 내용은 한글로 입력한 후 번역을 돌렸다. 쉽게 완성되었다.
완성본을 두세 번 소리내어 읽었다. 어색한 것도 잠시, 조금씩 소리가 입에 좀 붙는 것 같다.
녹음도 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녹음한 걸 들어보았다. 그동안 스스로 영어 발음이 나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 발음은 나빴다. 아주 나쁜 놈이었다.
이상하게 발음된 부분을 몇 번 반복하며 교정했다.
이렇게 4단계를 거치니 10분 정도 걸렸다. 내 이야기인 만큼 지루하지 않았다(물론 고작 10분만에 지루함을 느낀다면 그 나름대로 대단할 것 같긴 하다). 뿌듯한 마음으로 곧장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놀랍게도 어제 익힌 다섯 문장이 모두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 이야기니까 무슨 내용인지 떠올리기도 쉬웠다. 두세 번 이상 따라 읽고 녹음한 덕분인지 영어 표현도 다 기억이 났다.
이제 외국인에게 내가 영어 일기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만나게 될 친구들아, 내게 영어일기에 대해 물어봐줘)
그래, 이것이 나의 길이다. 영어 공부하겠답시고 봤던 영화, 드라마는 이제 그만 봐도 될 것 같다. 그동안 별로 재미도 없는데 꾸역꾸역 봤던 내 자여러 차례 봤지만, 당장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늘어나진 않았다. 내가 그 주인공의 말을 그대로 흉내내서 할 일은 거의 없다. 그 사람과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까. 생각, 행동, 말투, 즐겨쓰는 모국어 표현 등 모든 면에서.
※ 잠시 번외편
사실 이전에도 잠시 영어일기를 썼었다.
원래부터 일기쓰는 걸 좋아하는데, 영어 공부도 되니 꽤 재밌게 했더랬다.
(지금 찾아보니 올해 7월 21일부터 8월 7일까지 띄엄띄엄 열 번 정도 썼다.)
당시 영어 일기를 시작한 이유는 '쓰기' 영역을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문장을 써보고, 첨삭받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쓰기 실력이 늘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왜 '쓰기'까지 공부해야 하지? 라고 했을 때 대답이 궁색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4개 영역(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을 골고루 해야 한다는 흔한 조언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영어 쓰기를 그렇게 잘해야 하는 이유를 못 찾았다. 나는 영어로 소설을 쓸 생각이 없다. 그러다보니 서서히 동력을 잃고 있었다.
지금은 왜 영어 일기를 쓰냐고 물으면 할 말이 명확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 영어로 잘 해보려고요."
다시 돌아와서,
어쨌든 결심을 했으니, 남은건 실천 뿐.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하다.
독자님들 중에서도, 영어에 관심이 많고, 일기쓰는 것을 좋아한다면 한 번 시도해보심이 어떨까 싶다.
생각보다 재밌고, 시간도 얼마 안 걸리니까.
영어 일기 챌린지 진행과정은 일주일, 한 달, 3달, 반 년, 1년 단위로 차차 공유를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