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동화
[작가노트]
역설적이게도 이 글은 맥락없는 아름다움애 대한 기억입니다. 삶이 압도하는 생의 순간에 '어떤 드러남'은 삶을 계속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글로써 공명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국민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우리 세 식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이웃에게 빌린 리어카에 단출하고 궁색한 살림살이를 부려 싣고, 서울행 통일호 열차를 탔다.
아버지는 언제나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했지만, 출근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언젠가부터 엄마는 처녀 시절 모아놓은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마저 바닥을 드러내자 스웨터 짜기, 마늘 까기, 모텔 객실 청소, 등의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며 근근이 살림을 살아냈다.
엄마는 그렇게 하루하루가 빠듯했고, 우리 집은 없다가 일상이었다. 엄마가 없네? 아버지도 없네? 밥도 라면도 없네? 얼마 전까지 개집을 지키던 강아지도 없네......? 아버지가 없다는 건 차리리 좋았다. 느닷없이 어느날 술을 진탕 마시고 나타날 것이었으니까.
나는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며칠 지나면 집 앞 전봇대에 나가서 망을 보듯 아버지의 기척이 있는지 살피곤 했다. 그 시절의 엄마는 일거리를 찾아다니느라, 혹은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하느라, 그도 아니면 성령대부흥회를 따라다니며 길바닥까지 나와 앉은 사람들 가운에서 ‘주여!’를 외치느라 그렇게 나는 늘 혼자였다.
엄마는 부업을 하지 않을 때면 성령대부흥회에서 사 온 ‘천국과 지옥 체험 간증’ 테이프를 하염없이 들었는데 그 이야기 속 지옥의 이야기에 나는 꿈에서도 몸서리쳤다. 지옥의 무자비함과 천국의 광휘가 누군지 모를 간증인의 격양된 목소리로 울려댔던 날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도 이내 두려움에 떨기를 반복했다.
그보다 더 깊은 기억 속 골방에 사는 엄마의 모습은, 큰방과 작은방 사이 좁은 돌바닥 위에서 하루 종일 니트 기계의 발을 구르며 스웨터를 짜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항상 놀자고 했다.
"엄마 놀자~"
"엄마! 놀장께 심심한디!"
묵묵부답인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울뚝불뚝 화가 치밀었다. 나는 온종일 스웨터를 토해내는 작은 동그라미를 눈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즈음의 밤이었다. 엄마는 종일, 아니 며칠 내내 누운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연탄도 때질 않아 차갑게 얼어붙은 구들 위에 이불을 몇 겹 깔아도 살기 어린 추위가 내 발을 꽁꽁 얼리던 찬 겨울이었는데, 엄마는 언젠가부터 그 차디찬 윗목에 모로 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해가 둔각으로 기울어가는 만큼 점점 더 엄마가 걱정되었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져 침묵과 어둠만이 가득한 방에 내내 앉아 있다 보니, 나는 썽이 났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는 시커먼 자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마음에서는 핏기가 가셨다. 가슴께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러다가 완연한 어둠 속에서 어둠을 가르듯 엄마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마저 몸을 반쯤 일으키다 만 채로 내게 말했다.
“라면 하나 외상으로 사 온나. 끓여줄게.”
희미한 온기가 살아난 엄마가 너무 반가워 나는 날아갈 듯 동네 구멍가게로 한 달음에 달려갔다. 하지만 동네 구멍가게는 어쩐 일인지 사람이 없다. 나는 애타는 입을 어렵게 열였다.
"라면 사러 왔는디라"
"......"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파리한 형광등 아래 서주아이스 냉동고는 찌를듯한 푸른 한기가 돌았다.
"엄마 인자 겨우 인나 있구만......."
핑그르르 눈물 한방울이 볼을 타자, 목을 치받는 뭔가가 입 밖으로 왈칵 터져나왔다. 나는 아무도 없는 남의 전빵 마루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뱃속에서 끌어 올려진 울음이 놓여나니 몸이 떨렸다.
"누가 보고 있는건 아닌가 몰라"
나는 급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전빵 할매가 아가 왜 그러냐? 믈으면 뭐라고 말할건지 엄두가 안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집으로 향하는 어두운 골목은 입을 벌린 지옥길 같았다. 테이프 속 천국지옥 간증에서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돌이가는 길 골목마다 숨어 있을 귀신들과 마귀들이 우굴씨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것만 같았다.
"어뜨케 간당가!"
한참이나 골목 너머를 기웃거렸지만 아무도 나타날 가망이 없었다.
"엄마 기다리는디"
가야했다. 그렇지. 나는 수아랑 영훈이가 안보일 만큼 저 멀리 빨리 뛴다. 눈 딱 감고 뛰면 된다. 발을 굴렀다. 눈물이 다시 터져나왔다. 콧물도 나를 따라 달렸다. 입으론지 마음으론지 소리를 질렀다.
"쌍놈들 비키랑께!"
구비졌더래도 백미터도 안 되었을 그 길을 오래오래 달려 집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가기 전 눈물을 꼼꼼히 훔치고, 딸국거리는 숨을 가다듬어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엄마 구멍가게라 그렁가? 일찍 닫았당께.
큰 가게로 가야했능가?......”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겨우 말을 꺼내 놓았다.
"이모한테 가서 밥먹고...... 오늘 거서 자"
이모네 집은 버스로 여섯 일곱 정거장을 가야 하는 거리였다.
"엄마는?"
"난 안간께. 너 혼자 가."
"밥 먹을라면 이모집 가그라."
엄마는 무슨 이유인지 완강했다. 햐지만 곧 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위태롭게 다시 차가운 구들장으로 스러지듯 꺼져들어 갔다. 나는 마음을 먹고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다섯 살부터 복대에 돈을 말아서 곗돈 심부름을 다녔던 지라 이모집 가는 길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길을 모르더라도 나는 그만 가야겠다 싶었다.
엄마의 집, 엄마의 골목에서 나와 거리로 접어들자, 거리는 화색이 가득했다. 티비마져 꺼져있는 엄마의 방보다는 훨씬 활기찼다. 불빛의 색채는 겨울밤의 공기조차 따뜻하게 감싸는 듯 했다. 나는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가 그렇듯 이모네 집까지 가는 그 길을 곧장 바로 가지 못하고 길에서 할 수 있는 온갖 해찰을 했다. 그렇게 길고 긴 궤적을 그린 후에야 이모네 집에 도착했다.
똑순이로 유명했던 나답게 이모네 집에 이르게 된 일련의 사건을 설명했다. 이모는 밥을 못먹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부엌으로 가 곤로에 불을 붙였다. 이윽고 하얗고 윤기 나는 쌀밥과 젓갈 반찬들, 시원한 김치들을 한 상 가득 올려냈다. 이모는 엄마를 타박했다.
"염병할 년!"
"아따 썩을 년! 애기 밥은 먹여야재!"
그것은 욕이 아닌 욕 같았고, 원망 아닌 원망 같았다. 그 황망한 장면에서 어린 나는 이모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을 어떻게 주워 삼길지 막막했다. 이모는 억지로 숟가락을 손에 쥐어 주셨다.
나는 그 순간, 알 수 없는 어떤 것은 포기한 마음으로 또 더욱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붙잡고 다짐하는 마음으로 황새기젓 올린 밥숟갈을 입에 넣었다.
그러던 어느날, 집이 소란스러웠다. 늘 그렇기는 했지만 유난했던 소란이었다. 깜깜한 새벽이었다. 엄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집은 아수라장이었다. 당장 버려도 문제없을 것 같은 살림살이들을 리어커에 혼자 옮겨 싣는 엄마와 그런 분주한 엄마의 등을 쫒아다니며 맥락 없는 욕만 퍼붓는 아버지의 모습이 귀와 머리를 번쩍번쩍 후려 치는듯 했다. 불빛 하나없는 새벽을 찢어내는 아버지의 고함소리와, 날카롭게 응수하는 엄마의 욕이 겨울 새벽 추위에 엉거붙었다.
그들이 무엇을 하던 나와는 상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둘을 관조하는 방조자로만 있을 수도 없었고, 둘 사이에 끼어들 해결사일 수도 없었다.
신새벽 어둠이 새파란 물빛으로 변해가는 동안 리어카에 욱여넣은 살림살이를 끌고 엄마, 아버지는 내내 새벽을 찢어냈다. 엄마의 결단은 그렇게 우리 식구를 포도시 서울행 통일호 열차에 실어냈다.
목포에서 서울까지의 여덟 시간 동안 어떻게 자세를 고쳐앉아도 내 엉덩이에서는 불이 났다. 복리처럼 불어나던 피로 가운데서 나는 머릿속을 손으로 까불치며 어떤 의미 심장한 단어들을 여러번 뽑아 내 차창 밖에 내다버렸던 것 같다.
야반도주하듯 서울로 온 우리에게는 아직 지낼 곳조차 마땅치 않았기에 불광동 이모네 표구 가게 작업 다이 위에서 한동안 잠을 잤고, 엄마는 떡볶이집 개업을 준비했다. 두 평이 될까 싶었던 그 작은 떡볶이집을 열고 나서는, 영업이 끝난 후, 가게 안의 의자 열두 개를 붙여 판자를 깔고 그 위에서 잤다.
엄마는 초저녁부터 열 시 까지는 다음날 장사를 준비했다. 그렇기에 나는 하루 종일 놀다가 피곤해져 잠이 쏟아져도 의자 위에 판자가 깔리는 열 시까지는 쉴 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저녁 시간의 나는 가게의 의자에서 졸거나, 주변 상가 골목을 하릴없이 휘적거리고 다니며 배회하거나, 이유도 없이 뛰어다니거나 그도 아니면, 길바닥에 앉아 쉬거나 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하던 밤 열 시가 되어 의자를 침대 삼아 잔다 해도 판자에 이불 두 장이 올라갔을 뿐이라 뼈가 짓눌렸다. 좁아터진 판자 위에서는 뒤척일만한 여력도 나질 않았다. 셋이 덮기엔 너무 작았던 솜 이불은 내 발을 덮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 식의 어느날 밤, 이미 피로에 곯아 떨어진 부모님의 숙면을 방해할 수 없어 나는 이불을 당겨올 수 없었다.
나는 어떤 무언가에 이제 이골이 난 것 같았다.
피로와 추위가 충돌하며 각성이 되어서인지 새벽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불을 덮지 못한 발과 내놓아진 얼굴에 자리잡은 추위는 몸의 심지를 향했다. 몸은 점점 얼어붙어 갔고, 뜬 눈을 어쩔 수 없어 눈만 데굴데굴 가게 안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러던 중 나는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뭔가 파닥파닥한다 싶었는데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스미는 가운데 날개 달린 작은 것들 여럿이 가볍고 어여쁜 몸짓으로 가게 안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들은 내 손바닥만 했다. 빛의 음영에 따라 얼굴과 표정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눈을 비비지는 못했다. 더 추워지긴 싫었으니까. 하여간 뚫어지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것들을 보노라니 부산스럽고도 경쾌하게 날개를 팔랑거리는 것이었다. 팔랑팔랑. 팔랑팔랑. 그 몸짓은 가볍고 유연했다. 위로 아래로 뒤로 옆으로 그것들은 마음껏 나부끼며 지들끼리 숙덕대던가 소리없이 웃던가 다시 어여쁘게 날아 올랐다.
나는 얼마든지 그것들을 보고 있을 수 있었다. 몇 시간을 바라 보아도 그것들의 어여쁨은 질리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문득 알수 없는 조바심으로 가슴이 조여왔다. 그것들이 곧 사라지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내가 눈을 깜빡하는 찰나에 사라져 버리면 나는 다시는 그것들을 볼 수 없다는걸 이미, 알고 있었다. 눈에 힘을 주며 버텼다. 부릅 뜬 눈이 따뜻해졌다. 가게 밖의 가로등에선 유리문을 뚫고 온 선명한 주홍빛으로 그것들의 무대를 밝혀주고 있었다.
이불 속 온기가 아침나절 여문 햇살에 닿아 유리창에 부서지던 그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