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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산책 Dec 01. 2020

꿈이 없어도 괜찮아

꿈을 강요하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기


학원에서 돌아온 열여섯 살 큰 아이가 무심하게 이야기를 툭 던진다.
"오늘 학원쌤이 꿈이 뭐냐고 물어보셨어요"
흥미로운 대화가 시작될 것 같았다.
"나는 꿈이 없다고 했어요"
허걱. 내 표정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되시는지. 흥미로운 대화는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난 듯했다.
그동안 아이는 몇 가지 직업에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끌리는 것은 없어 보였다. 문과 쪽을 갈지 이과 쪽을 갈지 조차 확실히 선택하지 못했다.
그래도 학원 선생님께는 “몇 가지 관심 있는 직업은 있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꿈이 없다”라는 말은 가볍기도 하면서 무거웠다.
 


아이는 나름 생각이 있었다. 어떤 직업이 멋있어 보여서 꿈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자기가 정말 그 일을 하고 싶은지도 생각해야 하고, 실현 가능성도 고려하다 보니 이제는 자기 꿈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부담된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었다. 꿈이 발화되는 순간 많은 것이 결정된다. 그럴 시기인 것이다. 대학에서의 전공도 정해지고, 남은 고등학교 시절 동안 선택해야 할 과목들도 정해질 것이다. 꿈에 따라 몇 년간의 플랜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것이다.


 
사실 큰 아이의 진짜 고민은 그런 부담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었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분야에 흥미가 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는 이제 열여섯 살인데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역시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었다. 그 나이라면 꿈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꿈을 묻고 강요하고 있었나 보다.
 


은희경 작가의 ‘소년을 위로해줘’란 소설을 좋아한다. 큰 아이와 이런 대화를 한 후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소년을 위로해줘’는 열일곱 살 소년 연우가 주인공이다. 연우는 힙합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소설 속에서는 내내 힙합의 비트가 쿵쿵 울린다. 소년이 이렇게 푸르고 사랑스러운지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십 대의 수줍음도 고민도 웃음도 소심함도 풋풋한 사랑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전에는 몰랐다. 그래서 연우가 마냥 흐뭇하고 부러웠다.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려본다.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책상에 앉아있기만 했던 그 시절, 하교할 때는 종아리가 퉁퉁 부어 주무르기도 아플 정도였다. 순환이 안되어 부은 종아리처럼 나의 십 대도 꽉 막혀 있었다. 공부 외에는 라디오나 음악을 듣고 멍 때리는 것이 다였던 우울한 흑백의 2D시대였다.
 
우리 아이 십 대는 오색찬란 화려한 4D시대였으면 한다. 꿈이나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시기로서가 아니라 그냥 이 순간이 소중하고 즐거웠으면 한다. 그저 그런 십 대 말고, 꿈 좀 없다고 기죽지 않는. 이것저것 관심 가는 것에 기웃거려보면서 고민하고 부딪치면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상하이에서 경쟁 치열하기로 유명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에게 이런 말은 그냥 학교 물정 모르는 철없는 엄마의 소리로 들리려나.)  
 
그래도 엄마 입장에서 아이의 적성 찾기에 도움이 되고 싶어 이것저것 찾아보다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커리어넷(www.career.go.kr)을 발견했다. 직업적성, 흥미, 직업 가치관 등의 검사도구가 있었다. 큰 아이 검사 결과, 직업흥미에서 농업/천연자원 분야가 92점으로 다른 분야보다 월등하게 높게 나왔다. 관련 직업군으로 가축 사육자나 곡식작물 재배자, 어부 및 해녀, 화훼재배 기술자 등이 있었다. 이제는 귀농이냐 귀어냐를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멈춰서도 괜찮아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어
꿈이 없어도 괜찮아
잠시 행복을 느낄 네 순간들이 있다면
멈춰서도 괜찮아
이젠 목적도 모르는 채 달리지 않아
꿈이 없어도 괜찮아
네가 내뱉는 모든 호흡은 이미 낙원에
-방탄소년단, 낙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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