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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산책 Oct 07. 2021

사춘기 아이들에게도 먹히는 잔소리 비법

엄마의 잔소리쯤 들어드리죠


“방이 이게 뭐야~ 과자 먹은 봉지가 왜 방바닥에서 굴러다녀~ 벗은 옷은 제대로 안 걸어놓을래~~~”


큰 아이 방문을 열자 나도 모르게 속사포 잔소리가 쏟아졌다.


“엄마, 지금은 잔소리 들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책상에 앉아있는 아이는 뭐가 바쁜지 내 쪽을 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아니, 잔소리를 거절할 수도 있나. 생각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다. 당황한 나머지 헛웃음만 나왔다. 그 마음의 준비는 언제 되려나, 되긴 되려나, 어쨌든 지금은 아니라고 하니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올 수밖에.


큰 아이가 “잔소리하지 마세요”라고 했다면 나도 곱지 않은 반응으로 대했을 것이다. ‘마음의 준비’라는 표현은 짠하기도 하면서 너그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어쩌면 나의 행동이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이의 말은 서로에게 윈윈이었다. 나는 내 말이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목격하며 속을 부글부글 끓지 않아도 되고, 아이는 잔소리 영향권을 벗어나니 하던 일에 계속 집중할 수 있고 기분을 망치지 않아도 되었다.



저녁 식사 자리는 바쁜 아이들과 짬 내어 대화하기 좋은 시간이다(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식사시간에 무방비 상태로 잔소리 폭격을 맞는 경우가 많다). 마음은 대화이기를 바랐으나, 일방적인 훈화 말씀이 시작되었던 어느 날이었다.


“지금 머리가 복잡한데 그런 소리까지 들으니 체할 것 같아요. 잔소리 들을 상태가 아니에요.”


 잔소리는 가끔씩 이렇게 거절당했다. 부모님께서 잔소리를 시작하시면  상태와 상관없이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딴전을 피우다가는 혼이  것이고 잔소리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그렇게 자라온 나에게  아이의 말은   충격이었지만, 타당하기도 했다. 자신의 상태와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해주어 고맙기도 했다. 아이는 산적한 과제에 대한 스트레스와 피로로 머리도 복잡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엄마가 아무리 오바마 같은 연설을 하더라도 귀에 들어올  만무할 터였다. 식사할  있는 시간 동안이라도 잠시 놓고 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  고요를 지켜주는 것이 가장 좋은 위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화를 걸었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상대방이 지금 통화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거리에서 지인을 마주쳐 안부를 나누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지금 바쁘게 가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먼저 나서서 배려하면서 아이들과의 소통에서는 그러질 못했다. 여기저기 구멍 숭숭 뚫린 부족한 엄마의 모습은 늘 들키고 만다. 그 후 나의 염려나 조언이 잔소리로 퉁쳐지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먼저 살피게 된다. 성격 급하고 하고 싶은 말을 바로바로 해야 하는 나에게는 높은 단계의 인내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언제 하면 좋을까? 지금 해도 괜찮아?”


이 몇 마디 물음에 아이들은 대화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엄마의 잔소리쯤 내가 들어드리죠’라는 태도로 잔소리를 허락한다. 듣는 자세도 훨씬 적극적으로 바뀐다. 아이들이 먼저 나의 시간을 물어올 때도 있고, 가끔은 나도 바쁜 척을 하며 생색을 내기도 한다.


출처 : Emma Block




둘째 아이는 더 일찌감치 나를 가르쳤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첫 시험에서 90점 조금 넘는 점수를 받아왔다.

1학년의 시험이라야 봐야 아주 간단한 것들이라 반에서

100점을 맞은 아이들도 여러 명이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해. 1학년이 이 점수를 받은 건 잘 한 건 아닌 것 같아”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야무졌다.


“이번에 내 목표는 90점이 넘는 거였는데, 90점이 넘었기 때문에 잘한 거예요. 혼내면 안 돼. 엄마가 혼내면 내 기분이 나쁘잖아. 기분이 나쁘면 공부하기 싫어지고 시험도 못 보게 되니까, 엄마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에요.”


내가 오은영 박사님을 키우고 있었던 거였다. 여덟 살 딸아이에게 된통 혼이 났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뭐라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우물쭈물’이라는 표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고, 식은땀도 삐질 났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한참이나 덜 성숙한 엄마였다. 지금 생각에 왜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안타깝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 후 아이들의 시험 점수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혼을 낸 적이 없다(고 기억한다). 본인들이 더 속상해하니 나는 오히려 달래주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즐겁다. 정확히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권위 있고 모범이 되는 부모 역할은 능력이 안 되는 걸 알고 일찌감치 내려놓았다.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나는 상상도 못 할 생각과 표현들을 아이들한테 배운다. 어느 순간에는 찬반 토론의 장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이들의 논리의 힘이 탄탄해져 가는 걸 느낄 때마다 수세에 몰리면서도 흐뭇해진다. 아이들은 언행이 불일치한 엄마의 이중성을 시크하게 꼬집기도 한다.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오, 제법인걸’ 하는 기특한 생각이 더 크다. 아이들 덕분에 못난 엄마가 이렇게 성장하고 있다.



잔소리 비법은 별거 아니다. 아이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고 기다려 주는 , 아이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는 만큼 마음  주는 것이다. 잔소리, 내가 하고 싶다고 아무 때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열번 정도 참다보면 성인의 경지에 오르실 수도 있다죠....)




#잔소리들을마음의준비는도대체언제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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