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정말 잃어버린 것만 있을까?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회사에서 25년을 다녔다는 것은 꽤 입에 오르내릴 일이지만
나에게는 오랜 시간 지속되던 루틴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불안을 동반한) 퇴사가 더 큰일이었다.
퇴사 후 몇 달 간은 도서관에서 매일을 보냈다.
책도 읽고 공부도 하면서 조금씩 내 여백의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여유가 생기니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여행이었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느긋한 떠남을 하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여행 책을 보면서 어디가 좋을까 열심히 정리를 했다.
그리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 뵙는 것도 내 계획에 추가했다.
일주일에 2~3번은 전화를 드리지만 직장 맘으로 바빴으니 자주 얼굴을 뵙지 못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이 대부분 회사를 다녀서인지 올해는 얼굴 한번 보자면서
새해를 넘기기 일쑤였다.
그렇게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을 하나씩 실행으로 옮길 참이었다.

그런데 퇴사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떠들썩한 뉴스로 코로나 19를 맞이하게 되었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생각했다.
신종플루나 메르스처럼 바이러스와 관련된 감염병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고 가볍게 여겼다.
그런데 심상치가 않다. 연일 뉴스로 보도되는 내용들이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그리고 퇴사 후 세웠던 내 계획은 아직도 그냥 계획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스크를 쓴 아이들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울컥함이 느껴졌다.
저 아이들이 기억할 유년 시절은 조금은 답답하고 무서운 시간이 되지는 않을 지 안타까웠다.
뜨거운 여름 날, 더위 속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마스크로 인해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테고,
등교하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 육아의 지침에 시달리고 있는 엄마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너무나 당연했던 평범한 일상을 어이없이 특이하게 보내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19로 정말 잃은 것만 있을까?


처음에는 무서웠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짜증이 나기도 했다.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도 물론 있었다.

그러다가 어차피 한 동안 이 시간에 머물러야 한다면
조금씩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 환경을 생각하다
지구에 살아가는 우리가 무언가 잘못을 단단히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환경 오염으로 인해 생태계가 뒤죽박죽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스스로 조금 노력해 보기로 했다.
페트병에 든 생수 대신 보리차를 끓여 먹고,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재활용 분리 수거도 정확하게 하려고
신경 썼다. 장을 볼 때면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식품은 왠만하면 구입하지 않았다.
하루에 한번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우리집은 9층인데 더 높았으면 못 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앞으로 또 이런 일들을 계속 겪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생겼던 것 같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환경에 대한 노력은 계속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 요리 그리고 건강에 신경 쓰다

남편의 재택 근무로 하루 세끼를 꼬박 챙기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회사 생활 탓에 요리 실력은 중간 이하였고 크게 관심도 없는 분야였다.
하지만 매일 세 번씩 상을 차려내야 하는 것은 설렁설렁해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어서
점점 요리실력도 늘고 영양에 맞춘 식단으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자주 설사를 하고 역류성 식도염 증세가 있던 남편의 건강도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집 밥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게 된 시간이 된 것이다.


* 책과 글을 가까이 하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 들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몇 개월 후에 책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홍보(강연, 북토크 등)
활동은하지 못했지만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다.
한번도 만나지 않은 분들로부터 받은 따뜻한 공감과 응원은 큰 힘이 되었고,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권 독서라는 목표도 잘 지켜지며 그 이상의 독서를 하고 있다.
집콕 생활로 얻은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사소한 행복들이 생겨났다.

집에만 있으니까 하늘을 더 자주 쳐다보게 된다.
근처 공원 산책길에서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만날 때도 더 기쁘고 행복한 느낌이 든다.
마음껏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더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마스크를 벗고 여행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큰 소리로 떠들 수 있을까?
어쩌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 삶 속에서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일들을 찾아보자.
우린 반드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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