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칸 - <어린 왕자>
우리집 책들을 소개합니다
우리집 책들을 소개하는 두 번째 글입니다. 첫 번째 글 이후로 무려 한 달이 넘게 지났습니다. 이 시리즈를 기억하시는 분이 없을 수도 있겠네요. 혹시라도 기다리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첫 글을 쓰고 나서, 처음에는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읽고 소개하자는 생각으로 삼국지에 열중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삼국지라는 대서사시를 글 하나로 소개하기엔 무리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귀찮음과 겁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낀 겁니다. 그래서 읽던 삼국지를 내려놓고, 이 칸에서 제일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어린 왕자입니다.
어린 왕자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저 유명한 책들을 거르냐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동백꽃, 갈매기의 꿈 등등. 쟁쟁하다 못해 엄청난 책들이지만, 미소를 짓게 만드는 정도를 따지면 어린 왕자를 이길 책이 없기에 이 책을 골랐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어린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유명한 책이니까요. 그런데 왜 이렇게 유명할까요? 안 좋게 말하자면 소위 감성 팔이 책에 불과한데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걸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 생각에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과 시선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그 시절, 그 마음과 시선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어린 왕자를 읽은 건, 글자 읽는 법을 막 깨우치고 한창 책장 속 동화와 만화를 읽어 대던 8살 즈음이었을 겁니다. 그 어린 시절엔 그림이 귀엽다 뿐이지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 길을 들여달라던 여우,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양 이야기는 참 신기해서 기억에 남아 있었지만요. 저는 당시 한창 공룡을 비롯한 동물들을 좋아했던지라 여우와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 왕자가 부러웠습니다. 진짜 여우는 본 적도 없으면서요. 그때는 그냥 또 하나의 신기한 동화책으로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로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도, 저는 여전히 어린아이였습니다. 12살, 한창 테메레르 같은 역사 소설을 읽던 와중에 독후감 때문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다시 어린 왕자를 읽었습니다. 이 때는 또 스타워즈를 막 처음 보고 좋아하던 때라 우주를 여행하는 걸 부러워했습니다. 나도 우주를 여행해서, 스타워즈 속 우주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이때까지도 어린 왕자는 어린아이의 아름다운 환상이 담긴 동화책일 뿐이었습니다.
어린 왕자가 그저 그런 단순한 동화책이 아니란 걸 알게 된 건 세 번째로 이 책을 읽었을 때입니다. 사춘기가 심하던 15살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른도 싫고 개 같은 세상도 싫다고 생각하던 중에 어린 왕자를 읽고 나니 정말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어린 왕자가 별들을 여행하며 만난 바보 같은 어른들 이야기가 그랬죠. 난 이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그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린 왕자가 여우, 장미와 나눈 우정/사랑도 그때부터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어린 왕자에 완전히 매료됐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 책을 몇 번 읽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1년에 한 번? 최소 2년에 한 번 정도는 읽었던 거 같습니다.
나이로는 어른이 됐지만 저는 여전히 스스로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합니다. 어리고 싶다 이런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이 많기에 어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거나, 또는 내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어른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 책을 꺼내 읽습니다. 물론 정확히 이 칸에 있는 저 작은 책을 꺼내 읽지는 않아요. 어렸을 때면 몰라도 지금 와서 저 작은 책을 읽기엔 번거롭기도 하고 눈도 아픕니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 꼭 어린 시절의 그 순수함과 꿈이 떠오르기에 참 좋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 삶과 스스로를 돌아보게 돼요. 뭔가 당연한 듯 돌아보게 됩니다. 이유를 대자면 많은 걸 댈 수 있겠지만,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여러분도 어느 정도는 그 이유를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책 소개가 얼마나 걸릴지 장담은 못하겠지만, 최소한 이번보다는 적게 걸릴 겁니다. 삼국지를 읽는 데 너무 열중한 제 실책이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