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카페의 일곱 가지 조건
좋은 집이란, 건물을 나서자마자 바로 눈앞에 편의점이 있는 곳-이라는 괴상한 원칙을 가지고 있는 나는 '좋은 카페'에 대해서도 몇 가지 명확한 기준이 있다. 아니, 하도 이 카페 저 카페를 전전하다 보니 어쩌다가 생겼다.
카페라는 공간이 그저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는 얘긴 이제 당연하다. 요즘 특히 좋은 원두, 맛있는 커피로 승부를 보는 커피 전문점들이 늘어나면서 그렇지 않은 '보통의 카페'들에겐 더더욱 커피 외적인 요소가 중요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판다던지, 인스타에 올릴 만한 인테리어를 갖췄다던지, 셀카가 잘 나오는 조명이라던지 하는. 그중 지극히 개인적인 '좋은 카페'의 조건을 몇 가지 공유한다.
여기서의 좋은 카페란, 할 이야기가 잔뜩 쌓인 친구를 만나는 경우, 혹은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 헤매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음을 밝혀 둔다. 만일 당신이 무거운 노트북, 전공책, 일거리, 그 외 '바리바리'를 양 손에 싸 들고 ‘최소 몇 시간 혼자 집중할 곳’을 찾고 있다면, 아마 나의 기준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 이어폰을 낄 필요가 없거나, 최소한 낄 수 있거나.
이어폰을 낄 필요가 없다는 말은 카페 그 자체의 소리로도 충분히 내 할 일에 집중이 된다는 이야기다.
최소한 낄 수 있다는 말은 적어도 이어폰을 끼면 내가 튼 음악 외에는 들리지 않는 환경이란 이야기다.
무언가 집중할 거리를 들고 카페에 갔을 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배경음악'이다. 지나치게 우달달달 믹서기를 돌려 갈아야 하는 음료가 많은 카페라거나, 노래 가사가 심장을 푹푹 파고드는 카페는 좋지 않다. 하루 종일 클래식을 틀어주는 카페라 할지라도 이어폰을 뚫고 들어올 정도의 격정적 멜로디가 흐른다면 감점이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꼭 책상부터 치우는 것처럼, 나는 글을 쓰기도 전에 적절한 배경음악을 찾느라 매번 애를 먹는다. 최근 글이 가장 잘 써졌던 곳은, 적절히 집중하기 좋은 조용한 연주가 흐르다가도 가끔 아- 하는 탄성이 나오는 노래도 툭 툭 틀어주는 곳이었다. 분명 클래식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부드러운 재즈가 되어 있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잔잔한 하모니카 선율에 멍을 때리고 있다거나 하는. 이렇게 가다 멈추고, 가다 멈출 수 있게 해 주는 공간이 좋다.
어떤 공간에 있어 음악은, 적어도 7할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둘, 말하는 사람이 눈치를 봐야 하는 공기.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앉았다. 카페라기보다는 독서실이다. 차이점이라면 음악이 나오고, 음식물 섭취가 가능하다는 것 정도. 이렇게 학구적일 수가 없다. 이 공간에, 이 사람들 틈에 앉아 있으면 나도 뭔가 엄청나게 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주 1시간에 1년씩 쑥쑥 성장하는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그 누구보다 조용한 우리는 둘 이상만 되면 평소보다 데시벨을 한참 올린다. 그것은 다수일 때 보다 당당해지는 일종의 문화 같은 것인데, 만일 말하는 사람이 말 안 하는 사람보다 적다면? 그땐 말 없는 사람이 다수가 되고 말하는 사람이 거꾸로 눈치를 보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대화를 나누려거든, 다른 카페에 가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사람들의 앞으로 나란히. 어쩌면 이렇게 한 사람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을까 싶을 만큼 노트북 타다닥 거리는 소리 외에는 그 어떤 말소리도 공기 중에 떠다니지 않는 곳. 좋습니다. 좋습니다.
셋, 맛있는 커피가 없는 곳.
이건 무슨 말인가. 내 돈 내고 커피를 마시러 와서, 그게 맛있으면 안 된다니. 바로 이 말에 답이 있다. '커피를 마시러 오는 곳'은 집중하기에 좋은 카페가 아니다. 빵, 케익, 샌드위치 등의 베이커리 메뉴가 다양하다면 더더욱 피해야 한다. 커피나 디저트가 훌륭하다면 분명 그를 목적으로 한 손님들이 찾아와서 집중하려 애쓰는 나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기 때문이다. 커피, 디저트, 그게 카페 본연의 목적 아냐? 맞다. 다만 그것은 내가 카페를 찾아가는 목적이 아니다.
아, 그래도 '맛있지 않은' 곳이어야 하지 '맛없는' 곳이면 곤란하다. 내 소비는 소중하니까. 정확히 말하면 커피 말고는 딱히 먹을 게 없는 곳, '뭔가가 맛있는 걸로 소문나지 않은 곳' 정도면 된다.
넷, 여기가 내 방이오! 책상 같은 테이블.
카페 트레이, 선글라스, 노트북, 외장하드, 핸드폰, 충전기, 노트 및 필기구, 오늘 같은 날엔 쓰고 온 양산도 턱 하니, 손목시계도 하나 풀어놓고, 이따금 목마를 테니 물 잔 하나까지 모두 늘어놓을 수 있는 테이블, 아니 책상. 그냥 지갑 하나 들고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와는 달리, '나의 욕구'를 채우러 이 짐 저 짐 잔뜩 들고 카페로 향하는 당신에겐 테이블이 아닌 책상이 필요하다. 요즘은 꽤 많은 카페에서 창가 쪽 자리를 널찍한 책상으로 활용해 이런 공부족, 혹은 자기계발족의 욕구를 채워 준다.
개인적으로 동그란 테이블보단 각을 잡을 수 있는 사각 테이블을 선호한다. 보통 음료는 트레이에 받쳐서 주지 않나. 거기다 머그컵 하나가 아니라 주전자에서 따라먹는 차라도 시킨 날에는, 노트북 하나 두기에도 모자란 테이블 위에서 이리저리 레이아웃을 맞추느라 애써야 한다.
다섯, 나가라고 재촉하지 않는 의자, 그냥 쉬어! 꼬시지 않는 의자.
의자는 책상만큼이나 중요하다. 카페 의자 뭐 그냥 푹신하니 편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네, 아닙니다. 의자가 패스트푸드점의 그것처럼 너무 딱딱하면 아픈 엉덩이를 신경 쓰느라 집중이 안 된다. 반대로 너무나 쿠션감이 좋으면 그것대로 목이나 허리에 무리가 오거나 잠이 오거나 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너무 커서 뒤로 푹 파묻히지 않고, 일감이고 공부고 책이고 모두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편안하지는 않은 정도의, 등받이 있는 의자가 딱 좋다.
여섯, 약간은 어중간한 포지션.
대형 프랜차이즈와 완전 동네 다방 중간쯤의 규모가 좋다. 사실 하루 종일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고 어떤 음료를 시켜도 평타 이상을 치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부담이 없긴 하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비슷한 음료를 시키고 앉아 비슷한 모습으로 허리를 쭈그려 앉아 있는 그곳에선 왠지 재촉받는 느낌이 든다. 잠시의 멍때림도 없이 고개를 푹 빠뜨리고 앉아 해야 할 일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느낌. 게다가 자칫 천장이라도 높아버리면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와 그보다 더 큰 음악소리가 메아리쳐 마치 목욕탕에 앉아 있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커피 한 잔 시키고 두 시간 이상 앉아 있기 민망한 동네 찻집보다는 큰,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는, 깨끗하고 아늑한 중간 정도의 카페가 동네에 있다면 베스트.
일곱,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 인테리어.
'#카페인테리어'라는 것이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린 만큼, 이제 인테리어 예쁜 카페는 깔리고 널렸다. 그냥 모르는 동네를 걸어가다 아무 카페나 들어가도 당신의 인스타에 올릴 만큼의 분위기는 된다. 그런데 종종, 유명하다는 카페를 찾아가 보면 곳곳에 쓰인 멋진 글귀와 손 대면 큰일 날 것 같은 비싼 소품들, 나만 모르는 어떤 전문가의 손길이 지나간 듯한 인테리어에 압도당할 때가 있다. 그런 곳에서는 커피값이 비싼 것은 둘째 치더라도 왠지 안경과 모자를 눌러쓰고 일감을 가득 든 내 모습이 더 작게 느껴져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더라.
셀카 잘 나오는 포인트 조명보다는, 책 읽고 작업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원만한 조명이 좋다. 이런저런 의미들이 꽉 들어찬 공간보다는, 꾸밈새는 어설퍼도 사람이 들어왔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공간이 좋다.
숨어 있고 싶을 때, 카페
비 오는 날엔 비가 와서, 더운 날엔 더워서, 심심할 땐 심심해서, 바쁠 땐 바쁘니까, 카페.
예전에는 과제나 회사일이 밀렸을 때 그것들을 들고 카페를 찾곤 했었는데, 요즘엔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카페에 온다. 나를 둘러싼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고 싶을 때, 진짜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 싶을 때,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을 하고 싶을 때,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을 때.
나는 종종 카페에 숨는다.
당신에게는 언제든 들어가 숨을 수 있는, 그런 취향 저격 카페가 있나요?
cover photo/ 2012년 12월, 오스트리아 빈
body photos/ 2016년 7월, 대한민국 마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