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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at Cheesecakes

누군가에겐, 사골보다 진한 위로

by 작은바이킹



참았던 비가 내린다. 누군가는 더운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이 생각날 것이고, 누군가는 빗소리에 얹어 마실 와인 한 잔이 떠오를 것이다. 막걸리든 와인이든 나와 함께 이 비를 바라봐 줄 어떤 이가 그리운 날, 전화기를 집어 들고 무작정 "나올래?" 말하고 싶은 날, 나는, 치즈케이크가 먹고 싶다.








탄수화물에게 위로를, Vancouver


나는 탄수화물 중독이었다. 하루 세 끼 모두 밀가루를 먹고도 길가다 1달러짜리 조각피자 가게가 보이면 무심코 들어가 내 얼굴만 한 피자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홈스테이 하던 곳에서 15분은 걸어야 했지만, 씨리얼 박스보다 큰 초코칩을 사러 늦은 밤에도 슬리퍼를 신었다. 밴쿠버의 여름은 청량했고, 사람들은 친절했지만 나는 자주, 갑자기 외로웠다. 내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외로움을, 먹는 것 외에 다른 성숙한 방법으로 달래기엔 난 아직 어렸다.



예일타운. 여름의 밴쿠버는 먼지 하나 없는 파랑이었다.


"우리, 치즈케이크 먹으러 갈래?"

히로코가 불쑥 물었다. 당시 우리 나이로 서른. 워킹홀리데이로 네일숍에서 일하던 그녀는 돌아가면 시부야에 자그마한 가게를 차릴 거라고 했다. 휙 치켜 올라간 눈썹에 새까만 아이라인. 알고 보니 그냥 화장을 겁나 잘하는 것뿐이었는데, 처음엔 엄청 쫄았다. "친구랑 가기로 했는데, 너도 가자! 거기 엄청 맛있대!"

나와는 고작 일주일을 옆방에서 지내는 동안, 하얀 웃음이 털털했던 그녀는 아는 이 하나 없던 나를 참 이리로 저리로 많이 불러내 주었다.



가게 이름을 어떻게 읽는건지 기억나지 않는, 예일타운에 있던 케이크 가게.


베리가 무거울 정도로 가득 올라간 꾸덕한 치즈케이크. 빵집표 '치즈케익빵' 외에는 먹어본 적 없던 내겐 신세계였다.


달콤한 케이크를 한 입 물면, 따뜻한 햇살이 와서 기웃거렸다.


"야, 치즈케이크 먹으러 가자!"

마리코는 빨래처럼 축 늘어진 나의 등을 흔들었다. 나이도 동갑, 키도 비슷, 고향 방향(?)도 비슷. 우린 당연한 듯이 금방 친해졌다. 안 되는 영어로 뚝딱거리며 세상에 대체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투덜거렸다. 뭘 먹고 살지가 스물셋 우리의 최대 고민이었다. 나보다 순두부찌개를 더 좋아했던 그녀는 어쩌다 한식당엘 가면 큰 소리로 "여기요!"하며 뿌듯해 했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사진만 찍을라치면 꼭 최대한 열심히 얼굴을 구겼다. 나는 초코칩을 사는 대신 종종 그녀와 함께 햇살 가득한 치즈케이크 가게로 향했다.



햇살이 좋아 그런지, 밴쿠버는 유독 베리 종류가 싱싱했다.


맛처럼 화려하지 않았던 가게 안.




그녀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나는 종종 혼자 이곳에 왔다. 다운타운을 제외하면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밴쿠버에서, 어딘지 서울을 닮은 건물들이 자리한 이 거리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축축하지 않은 여름 햇살에, 마음 편히 피어 있던 꽃들.


마리코는 원하는 길을 찾았을까. 도쿄에 돌아간 히로코 언니는 시부야의 잘 나가는 사장님이 되었을까. 커피를 사려다 가끔 블루베리가 어딘지 허전하게 올라간 치즈케이크를 마주칠 때면, 나는 일본에서 날아온 섹시한 그녀들이 많이 많이 보고 싶다.



치즈케이크 앞에서 가장 정상적인 표정의 마리코.





밥보다 빵, New York


세상에 비싸도 비싸도 너무 비쌌다. 숨만 쉬어도 돈을 내야 할 것 같았다. 듣던 대로 뉴욕이란 곳은 정말이지 없는 걸 찾는 게 더 힘든 곳이었다. 먹고 싶은 모든 걸 다 먹고, 보고 싶은 모든 걸 다 보고,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돈만 충분하다면. 무슨 묘기를 부리듯 치솟는 환율에 겨우내 단벌 패딩으로 버틴 대학생이 돈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대학생이었기에, 남들 다 먹는 치즈케이크 하나 포기하는 게 또 그렇게 속상했다. 그래, 나는 차라리 밥을 굶겠어.





아침 7시 반쯤 되었었나, 평소 같으면 눈 비비고 이불 끌어안을 시간에 치즈케이크 하나를 포장해 나왔다. 서버 아주머니는 나를 자꾸만 위아래로 훑었다. 정말 플레인 먹을 거니?(너 이거 얼만줄 알고 사먹는거야?) 네, 플레인 먹을거예요.(네, 얼만 줄 알고 사먹는거예요. 맛 없기만 해봐요.)





플레인 치즈케이크 하나 + 스타벅스 라떼 한 잔 = 당시 우리 돈으로 만 오천 원쯤 했던 것 같다. 엥, 생각보다 안 비싼데? 지금은 웬만큼 비싸다 하는 이태원 홍대 카페도 다 그 정도는 하는걸. 하지만 때는 2000년대 후반, 이제 막 스타벅스란 것이 스멀스멀 자리잡기 시작했던 때. 학관에서 2천 원짜리 치즈라면 사 먹던 대학 4학년에겐 정말이지 이건 밥값이었다. 세상에 이게 디저트라니!





자리에 앉아 먹는 사람보다 줄줄이 서서 처음 보는 커다란 컵-아마도 벤티 사이즈-에 시커먼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맨해튼 스타벅스 한 구석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치즈케이크를 밥 대신 퍼먹으면서, 나도 얼른 직장인이 되어 저들처럼 멋지게 모닝커피를 마셔야지,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지. 아직 아무것도 아닌, 그래서 아무거나 해 봐도 되는, 사실은 참 넉넉한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는 걸.





참, 맛은 또 엄청나게 있더라. (젠장!)





여기가 치즈 케이크 공장, Los Angeles


그날도 잔뜩 흐렸다. 커다란 하늘과 어울리지 않게 얕은 비가 얄밉게 흩날렸다. 생판 남의 집에, 심지어 크리스마스 즈음에 덜컥 신세를 지러 왔다. 그 가깝고도 멀다는 '친구의 친구.' 쉐리는 비 때문에 연락도 없이 세 시간을 연착한 나의 비행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기다려 주었다.



12월이었다.




너 뭐 좋아해? 묻는 말에 별 생각 없이 치즈케이크,라고 답했다. 미국 밥 뭐.. 아는 게 있어야지. 그런데 그녀는 오, 판타스틱! 하며 진짜 치즈케이크 가게로 차를 몰았다. 어, 설마 정말 또 밥 대신 치즈케이크 먹는 거야? (눈물)





허... 이건 뭐지? 내 손바닥보다 더 큰 '한 조각'에 입이 떡 벌어졌다. '빵X레'를 연상시키는 사우어 크림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건, 충분히 밥 대신이다. 아니,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





사실 '치즈케익 팩토리'는, 메뉴판 한 바닥을 가득 차지하고도 넘는 엄청난 가짓수의 치즈케이크 말고도, 샐러드며 수프 등의 식사 거리를 파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진짜 '밥집'이었다. 현지인인 쉐리도 여긴 '양이 짱 많으니' 샐러드 하나에 케이크 하나면 둘이서 밥이 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여서, 나는 왠지 안심했다.





'노란색' 뉴욕 치즈케이크냐, '하얀색' 필라델피아 치즈케이크냐, 하면 나는 노란색 쪽이다. 뭔가 그쪽이 더 꾸덕꾸덕하고 느끼한 치즈 뉘앙스(?)가 더 진한 것 같아서. 하지만 이 녀석은 예외였다. 눈으로 보는 맛과 입에서 받는 맛이 서로 달랐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깔끔하게 생겨가지고 이렇게 질척거려?



한 입 먹고 찍고, 먹다 말고 찍기를 반복했다. 포크와 카메라를 계속 번갈아 드는 나를, 쉐리는 신기하다는 듯 구경했다.


압권은 저 쿠키 시트. 적당히 바삭하고 필요 이상으로 달아주었다.


아보카도와 베이컨, 계란이 잘 어우러진 싱싱한 샐러드. 우린 결국 이걸 1/3 정도 남겼다.


비를 맞아도, 주차할 곳이 없어도, 늘 환한 얼굴을 잊지 않았던 쉐리.


쉐리와는 한 일 년쯤 페이스북으로 안부를 주고받다 연락이 끊겼다. 자기의 친구와 서너 달쯤 함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을 며칠씩이나 자기 집 거실에 턱 하니 받아준 친구. 분명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 분명했음에도 내 앞에서 열심히 '코리안 타운 떡볶이'를 먹어준 친구. 비 오는 헐리우드에서 만 원짜리 털모자를 나눠 쓰고 이리저리 내 사진을 찍어주며 좋은 기억을 만들어 준 친구. 유난히 안으로 퍽퍽해진 요즘,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든든한 이름의 친구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메리 치즈 크리스마스, Las Vegas


드디어 크리스마스였다. 온 나라의 건물이 저마다 예쁜 빨강의 리본을 둘렀다. 헌데, 나는 왠지 12인승 승합차에 실려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커다란 이민가방을 들고서 마지막으로 서부를 여행 중이었다. 며칠째 이어지던 사막 캠핑에 지쳐갈 때쯤, 정말 신기루처럼 갑자기 번쩍이는 도시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라스베가스였다.





라스베가스에는, 에펠탑도 피라미드도 트로이목마도 파라오도 바이킹도 있었다. 마치 세상에 있는 무엇 하나라도 이곳에 갖다 놓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뭐든지 많고, 뭐든지 컸다.





2008년 12월 25일. 캠핑에서 만난 송과 함께 하릴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다, 왠지 반가운 이름이 보이기에 아는 체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똑같은 치즈케익 팩토린데, 무슨 놈의 진열장이 또 이렇게 웅장하담.

사실 지금 보면 우리나라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에 있는 케이크 집이 훨씬 더 훌륭하다. 여행 막바지, 꽤 오랜 시간 이 큰 나라에서 버티는 동안 나는 이곳의 '크기'와 '규모' 같은 것들에 약간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어느 나라를 가도, 나는 항상 '음식 진열장'이 제일 예쁘다. (보석보다, 가방보다, 피규어보다!)




가장 만만해 보였던 딸기 치즈케이크를 하나 시키고, 왠지 풀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기에 샐러드 하나를 같이 주문했다. 맛은? 희한하게도 이곳에서의 치즈케이크는 전혀 특별하게 기억되지 않는 맛이었다. 샐러드는 물기가 하나도 없이 퍽퍽했고, 치즈케이크도 뭐 겨우 스스로의 정체성을 알리는 정도였던 것 같다. 커다란 호텔 지하, 잔뜩 멋을 낸 이들이 저마다의 사람들과 모처럼의 좋은 음식을 먹고 있었고, 산타가 주렁주렁 매달린 높은 천정에선 웃고 떠드는 소리들이 부서져 들렸다. 마음이 하나도 편하지가 않았다. 나도 내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이제, 이 여행을 끝내도 될 것 같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떠난 긴 여행의 끝에서 깨달은 건 오히려 여행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내 마음이 누군가로 인해 든든할 때면 거리에서 1달러 주고 산 프레즐 하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반대로 마음이 고플 땐 그 어떤 좋은 풍경이나 비싼 음식들 한가운데에 있어도 그 맛이 서늘했다. 어쩌면, 치즈케이크는 그저 하나의 상징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정말 맛있게 느꼈던 것은, 그리고 꼭 기억하고 싶었던 것은, 그 햇살. 그 공기. 그 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함께 했던 그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우리, 치즈케이크 먹으러 갈래?


비가 많이 내린다. 이런 습한 날에 파전도 막걸리도 아닌 꾸덕한 치즈케이크가 떠오르는 건, 사이에 두고 앉았던 진한 케이크보다 더 진득했던 저 모든 이들 때문이겠지.






| 이 에세이는 2008년 캐나다, 미국 지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가게의 정보, 가격 등은 현재와 상이할 수 있으며 대부분 지금은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다고 하네요 :-)


| 2017.03.05 글의 성격에 따라 [여행의 감정] → [생활의 감정] 매거진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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