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미션
내가 만든 가족이 없는 지금까지의 나에게는 나를 만든 가족이 전부다. 그중 한쪽과 감정의 날을 세우고 도망치듯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가운데서 전전긍긍하던 다른 한쪽은 내게 미안하다는 카톡을 보냈다. 아니 당신이 왜요?
다음 날인 오늘도 그 다른 한쪽은 계속 나의 기분이 신경 쓰였다. 너무나 신경이 쓰여 아무 연락도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그에게 '주민센터 프로그램'을 등록해주기로 한 날이었다. 그가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 신경 쓰였던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모니터를 보며 함께 이런저런 프로그램들과 시간들을 맞춰 보았다. 그가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내가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던 그는 짐짓 신나는 목소리로 딴지와 어깃장을 놓았다. "왕기초 영어는 자존심 상해서 싫어." "그림 그리는 것은 못하니까 싫어." "우리 동에서 하는 건 시간이 안 맞아."
가까스로 찾아낸 천금 같은 프로그램을 등록하려는데, 이제는 또 온라인 접수가 마감이란다.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다른 동네, 친절할 리 없는 사람들에게 60대 후반의 어른을 혼자 보낼 수는 없다 생각하는 찰나, 이미 그는 신발을 신었다. 나 버스 뭐 타고 가면 될까?
원격으로 수강료와 타야 하는 버스의 도착 시간과 걸어가야 할 길의 지도를 그려 보내며, 마치 게임 속 미션을 수행하는 캐릭터를 보는 듯 마음 졸임과 응원이 교차했다. 캐릭터는 나와 톡을 하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치기도, 중간에 우산 없이 비를 맞기도 했다. 그러기를 한 시간 여, 마침내 퀘스트를 완료한 캐릭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등록함."
이후 더 이상의 메시지는 없었다. 급 뜸해진 채팅창을 괜히 오르락내리락해 보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미션을 세팅한 것은 내가 아닌 그였다는 것을.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유의미한 존재인가를 알게 해 주기 위해 오늘 하루 게임 캐릭터를 자청했음을. 'Mission Complete'를 알리는 사진 한 장을 내게 보내주는 것이, 내가 어제의 기분을 털고 '딸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최대한의 엄마 노릇이었음을.
가끔, 너무 사랑해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