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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Oct 09. 2024

이균 셰프의 서사

흑백요리사 준우승자의 킥



문제는 서사였다.

많이들 꺼내놓고 있는 ‘두부 지옥이 결승전이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두부 지옥이 끝나고 펼쳐진 결승전이 바로 이전의 것과는 너무도 차이나는 체급의 형태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극인 심사위원 두 명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우승자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맛보지 않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왈가왈부하기 어렵다. 떡볶이가 양고기를 이길 수도 있고, 본식보다 디저트가 강할 수도 있고, 여러 장르를 소화한 사람이 한 장르만 후들겨 팬 사람보다 비선호될 수 있다. 서바이벌에서는 어떤 결과든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결과 자체보다 그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다.


11회에서 말 그대로 지옥을 경험하며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낸 준우승자에 비해, 직전 경기에서의 우승으로 지옥을 프리패스한 우승자는 상대적으로 준결승과 결승 사이에 자신의 서사를 쌓아 올릴 기회가 없었다. 사람들은 무파사를 닮은 에드워드 리가 한쪽 입술을 앙다물며 (귀엽게)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보았고, 재료를 가져오다 말고 막두부를 한 입 가득 우악스럽게 베어무는 것도 보았으며, 여섯 번의 두부 요리를 만드는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주종목을 꺼내지 않고 익숙하지도 않은 한식에 기상천외한 컨셉 입히기를 고집하는 것도 보았다. 그 고된 난리를 치르고 난 바로 다음 날, 다시 또 한식에 또 다른 도전을 입힌 메뉴를 들고 와 비뚤비뚤 적은 설명을 읽어 내려가는 ‘반백의 이균 셰프’를 납득하지 못할 시청자는 아무도 없었다.


반대로 에드워드 리가 그놈의 징글징글한 두부를 닭다리 모양으로 자르고 세숫대야 만한 구멍도 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동안, 맛피아가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팔짱을 끼고 그 지옥을 내려다보는 모습과 (방송용 멘트에 실린) 과한 자신감뿐이었다. 프로그램 초반, 화면 너머로도 보이는 대단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억까를 겪으며 고생한 그에게 이입하기도 했던 사람들은, 그 서사를 잇지 못하고 갑자기 완벽에 가까운 자신감과 디쉬 메뉴를 선보인 ‘결승전의 권성준’을 납득하지 못했다.


이전 같으면 통쾌함을 안겼을 흑수저의 우승에도, 그것을 ‘반란’이라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흑과 백의 대결을 ‘언더독과 가진 자’로 프레임하기엔 흑수저들은 실력으로나 환경적으로 부족하거나 약하지 않았고, 잘해야 본전일 백수저들은 주특기를 내려두고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도전을 한다거나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보통은 언더독에 이입할)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았다. 이처럼 어쩌면 제작진도 예상하지 못했을 반전은 '과정'에 있었고, 12회차에 걸친 프로그램은 ‘흑과 백’으로 이분된 ‘하나의 서사’를 완성했다기보다는 몇몇의 매력적인 서사와 그 서사들을 좀 더 촘촘히 자세히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만일 다음 시즌이 있다면 다들 그 갈증을 채우고자 티비 앞에 앉겠지.


자꾸만 커다란 두부에 고추장 소스를 벅벅 칠하던 투박한 손이 어른어른하다. 연출의 효과든 본인의 스타성이든 아이언 셰프 우승자에서 이균으로 이어지는 에드워드 리의 서사가 누구보다 강력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서사를 모두에게 납득시킨 킥이, 어눌한 한국말에서 온 신파적 감동이 아닌 요리사로서의 실력과 패기였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강력한 서사다.




#흑백요리사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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