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시간의 쓸모
"저, 드럼 쳐요."
라고 말을 할 때면 왠지 모르게 힙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어깨가 으쓱하곤 했다. 뒤를 잇는 ‘오…!’ 하는 탄성과 멋지다, 잘 어울린다, 밴드를 하려고 그러냐 등등의 리액션도 만족스러웠거니와, 꽤 오랜 시간 ‘자체 목적적’인 취미 활동이 없다는 사실에 갈증이 있었고 보니 이전엔 참 싫었던 ‘요즘 뭐 (좋아)하세요?’와 같은 질문이 이젠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아이를 키우는 또래들과 달리 여전히 나를 키울 고민들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홀로 대학생들 사이를 어색하게 흘러 다닐 때, 배낭 옆구리에 비죽 솟은 드럼 스틱 한 조는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나 이만치 멋진 사람’이라는 존재감이 되어 주었다.
딱 3개월만 일단 해보자.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설렘보다 두려움의 무게가 컸던 12월의 어느 날, 미리 1월의 레슨을 예약해 두며 생각했다. 지금은 놓은 지 좀 되었지만 피아노를 꽤 오래 쳤고, 대학에서 풍물패를 하기도 했으니 그래도 박자감은 있을 거라는 나름의 언덕을 비벼 보며. 하지만 ‘직장인 취미반’의 한계는 명확했다.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 당연하게도 레슨을 받고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했는데, 집에서 서쪽으로 왕복 1시간이 넘는 거리의 연습실을 집에서 동남쪽의 회사로 출근했다가 들러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왜 꼭 연습하러 가는 날이면 그렇게나 춥고 눈보라가 치던지, 늦은 저녁 한껏 멋을 낸 사람들 틈을 헤치고 자꾸만 뒤집어지는 우산을 붙잡으며 집으로 향하는 길엔 눈과 함께 현타가 내렸다.
내향인 5000% 선생님의 캐릭터도 쉽지 않았다. 미리 찾아보고 간 유튜브 채널에서 그렇게나 활달하고 에너지 넘치시던 선생님은 온데간데없고, 작은 목소리로 조신하게 몇 마디 하신 후 질문 없으시냐며 대체 뭘 질문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는 나와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던 첫날의 공기가 아직 생생하다. 그저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지금 배우고 있는 게 뭔지, 내가 하고 있는 움직임이 맞는 건지 기본부터 확실히 잡아가기를 바라는 나와 없는 시간 내서 온 직장인 여러분을 굳이 푸시하고 싶지 않았던 선생님은 서로의 입장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딱 3개월이 걸렸다. 바로 어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아, 정말 어렵다구요!”라는 볼멘소리에 놀란 쌤은 조용조용 말했다. “저도 사실 더 천천히 하고 싶은데, 직장인 분들께는 진도를 빼드려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요..” 이후 우리는 맘 편히 손목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여러 고비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계속 드럼을 해보려고 애쓴 이유는 으레 생각하듯 ‘아무 생각 없이 마구 때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서’가 아니다. (’마구 때리는’ 단계가 되려면 3개월이 아니라 3년이 필요하다) 퇴근 후의 피곤함과 궂은 날씨를 이기는 힘은 드럼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시간, 노력, 어설픔, 낯선 기분 등이 만들어내는 ‘작은 기특함’에 있다. 느리지만 성장한다. 자주는 못했어도 꾸준했던 연습에 매끈했던 나무 스틱엔 시커먼 심벌 자국이 팼다. 드럼이 아니었다면 듣지 않았을 새로운 밴드와 장르의 노래들을 알게 된다. 관심 없던 헤드셋을 사고, ‘유튜버 픽 플리’만 돌아가던 플레이리스트에 차곡차곡 ‘나만의 연습곡’이 쌓인다. 희미해져 가던 ‘배움’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쓸모없는 시간의 쓸모를 알게 된다.
그래서, 약속한 3개월이 지났다. 잘하지 못할까 봐, 금방 싫증 날까 봐, 어디 써먹을 데가 없을까 봐, 그간 반반의 마음으로 내외하듯 지내온 드럼을 조금 더 알아가 보기로 했다. 4개월 차가 되었으니, 쪼오끔은 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해 본다. 저, 드럼 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