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찌뿌둥하게 하는 사람
누군가를 함께 욕하거나, 어떤 것을 함께 탓하며 시작된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대상이 사라지거나 변하면, 관계를 이어줄 근거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죠. 처음 공감이라 느꼈던 감정은 알고 보면 일시적인 쾌감일 수 있고, 그 짜릿함을 유지하기 위해 바깥세상의 재료가 떨어지면 앗 하는 순간 탓함의 화살은 서로를 향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언가를 함께 좋아하고, 타인이 아닌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관계는 천천히 오래갑니다. 만날 때마다 자꾸 좋았던 것을 얘기하고 싶어지는 사람, 내가 옳고 남이 그름에 열 올릴 필요 없이 어떤 주제를 이야기해도 나의 세상을 온전히 이해받는 기분이 드는 사람과의 만남은 박장대소로 채워지지 않더라도 돌아선 얼굴에 미소를 띠게 만듭니다.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재료는 나와 너 자체이기에 변하더라도 바닥날 일이 잘 없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맘에 들지 않는 세상에 대한 평가와 사람에 대한 폄하를 쏟아내는 사람,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나는…” 하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바꾸어 말하는 사람, 번번이 내가 나를 설명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은 사실 그 자리에 내가 아닌 누가 앉아 있더라도 되었을 사람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존중하지는 않는 것이지요. 이런 관계는 조금 섭섭하더라도 점차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스마트폰 속 짧은 영상들처럼, ‘어떻게 나 편한 사람만 만나’, ‘그래도 욕할 땐 재미있어’ 하며 계속 곁에 두었다간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잃도록 만들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나 또한 그런 도파민 같은 사람이 아닌가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누군가에 그런 잘못된 쾌감을 주고 있거나, 반대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관계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요. 그러나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애초에 ‘나도…?’ 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중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요. 가끔씩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어주는 것처럼, 나와 사람, 나와 세상 사이 관계에도 스트레칭을 해준다고 생각합시다. 뭉침이 심해 응어리가 져 버리지 않도록, 불편한 곳이 어딘가를 잘 들여다보고 미리 잘 풀어낸다는 마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