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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Sep 15. 2017

대한민국 블로거 만세

초보 유학생의 감사 인사



며칠 뒤면 드디어 꽤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유학길에 오른다. 최소 1년이라는 시간을 남의 나라에서 공부하고, 먹고, 살림을 살 걱정에 몇 번을 싸고 풀었는지 모를 짐은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러다간 나보다 내 물건 비행기 태우는 게 더 비싸겠다 싶어, 그동안의 준비 과정에서 벽에 부딪힐 때마다 꺼내보곤 했던 ‘그분들’의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영국 유학 필수품’, ‘이민가방 효율적으로 싸기’, ‘잘 가져온 물건 Best 10’. 역시, 그곳엔 내게 필요한 모든 정보들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쓰여있었다. 개인의 이야기지만 타인도 궁금해할 이야기를, 아무나 볼 수 있도록 ‘전체 관람가’로 살뜰히 쓰고 있는 이 일기의 주인은 바로 ‘블로거’다.


간혹 온라인에 글을 쓰다 보면 ‘일기는 네 일기장에 적으라’는 말을 듣는다. 뭐 이런 쓸데없고 사적인 이야기를 만천하가 보는 공간에 적느냐며, 마치 내가 인터넷이라는 소중한 ‘지면’을 낭비하고 있는 양 핀잔을 준다. 나의 일상 이야기나 단상들이 타인에겐 ‘참 안 궁금한 이야기’ 일 수도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번지수만 제대로 찾는다면, 이 쓸데없어 보이는 일상 블로그들은 때로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잘 모르는 곳에 갔을 때, 또는 많은 정보를 찾는 품을 들여야 할 때 누군가가 ‘먼저 겪은 같은 경험’을 적어 둔 블로그는 굳이 파워블로그가 아니더라도 엄청난 파워를 발휘한다. 세세하고 쓸데없는 정보일수록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된다. 나는 과거의 여러 여행에서, 그리고 이번 유학을 준비하며 수많은 이들의 블로그를 참고했다. ‘이런 꿀팁은 나만 알기 아까운걸?’ 혹은 ‘내가 한 고생을 다른 사람은 하지 않도록 잘 알려 주어야지!’하며 작정하고 쓴 글이 아니더라도, 그저 ‘내가 오늘은 어디를 어떻게 갔고 무엇을 먹었다’ 식의 일기조차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서의 해보지 못한 일을 준비하는 사람에겐 눈물 나게 고마운 정보가 된다.


물론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얻을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본인이 원하는 정보와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루뭉술하게 검색을 하다 보면, 사방에서 쏟아지는 '이건 꼭 하세요’, ‘이건 꼭 사세요’ 틈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맛집(=내가 가본 집)’ 포스팅에 낚여 실망하지 않도록 적절히 ‘거르는’ 센스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여행지든, 맛집이든 그곳에서 다른 이가 느낀 감상까지 예습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도움이 되는 글일지라도, 정보는 얻되 감상은 본인의 몫으로 남겨 두는 것이 현명하게 타인의 일기를 훔쳐보는(?) 요령이다.


1인 1 미디어 시대를 넘어 1인 다(多) 미디어 시대다. 초등학교 1학년도 고사리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SNS를 하는 세상에 일방향 미디어에 가까운 블로그는 어쩌면 점점 ‘파워’라는 별칭이 어색해질지 모른다.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늘어난 탓에 이미 그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별 것 아닐 수도 있었던 오늘을 기록함으로써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유의미한 정보를 만들어내는 재야의 블로거들이 있는 한, 나는 앞으로도 그들이 일기를 꼭 일기장에만 담아두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며칠 뒤 내가 무사히 영국 땅을 밟을 수 있다면, 또한 지금 걱정하는 것들을 모두 별 탈 없이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그건 역시나 ‘그분들’ 덕택일 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부지런히 다니고 꼼꼼하게 기록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대한민국 블로거, 만세다!





글|작은바이킹 (2017.09.08)


* 이 글은 9월 13일 자 동아일보 '2030 세상'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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