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콜알못'의 푸념
지난달, 영국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첫 내한 공연이 있었다. 총 10만 여개의 좌석은 3분 만에 매진되었고, 2017년 4월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는 '벚꽃 좀비'라 불리는 봄 캐럴과 더불어 공연 예습을 위한 콜드플레이의 노래들로 함께 채워졌다. 공연 당일, SNS의 타임라인은 그들의 멋진 퍼포먼스와 '떼창'에 대한 감격으로 넘쳐흘렀고, 마치 나만 빼고 다 공연장에 간 것 같더라며 놀라워하는 내게 누군가 물었다. "넌 표 못 구했어?"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못 구한 것이 아니라 구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용감하게도' 콜드플레이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이른바 '콜알못'(콜드플레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소에 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다거나 대중문화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업이 대중과는 뗄 수 없는 광고 카피라이터인 탓에 일부러라도 찾아 듣고 챙겨 본다. 다만 특정 가수나 장르에 대한 선호보다는 그때그때 좋은 것을 듣는, '좀 덜 구체적인' 음악 취향을 갖고 있을 뿐이다. 카페에서 종종 흘러나오던 그 노래가 콜드플레이의 'Fix You'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어쨌든 관심을 갖고 듣지 않아서겠지.
하지만, 내가 콜드플레이와 그들의 노래 대부분을 모른다는 것을 '커밍 아웃'하기란 쉽지 않았다. 당연히 "어머, 부럽다!"는 반응을 기대하며 "나, 이번 주에 콜드플레이 공연 보러 가"하고 뿌듯해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아~ 그렇구나~"하고 영혼이 날아간 대답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넌 그것도 몰라?'하는 눈빛에 몇 번 쏘인 후로는, 당연히 나도 그들의 팬이거나 최소한 대표곡 몇 개쯤은 알 거라고 전제한 상대의 말을 굳이 끊지 않았다.
사실 이런 불편한 '아는 체'가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 드디어 서울 모 백화점에 상륙했다는 한 빵집 이름을 몰랐다는 이유로 "너는 무슨 광고를 한다는 애가 그런 것도 모르냐"며 잔뜩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점점 모르는 것이 나와도 책상 밑에서 재빨리 검색을 하거나 그쯤 나도 안다는 듯한 웃음으로 넘기는 것에 익숙해졌다. 회의 시간이면 쏟아지던 온갖 유명 감독들과 헐리웃 셀럽들의 이름에도, 나는 종종 '뭘 모르는 애'가 되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가만 보면 우리는 '모른다는 것'에 참으로 인색하다. 내가 아는 무언가를 남들이 모른다는 사실에 답답함과 묘한 우월감을 함께 느낀다. 반대로 자신이 모두가 아는 무언가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최소한 '남들 만큼은' 알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것이 정말 나의 관심사인가 하는 것보다 그것도 모르냐는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먼저다. 아이 때는 그토록 자주 물었던, "그게 뭐예요?"를 입 밖에 내기 위해서는 때로 상당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거나 즐기는 것을 모르고, 즐기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 것들이 그보다 덜 재밌거나 덜 의미 있는 걸까? 누군가 고성능 헤드폰을 끼고 유명 가수의 음악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헬스장에서 귀를 왕왕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운동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 주말마다 비행기 타고 왔다는 유명 디저트를 음미하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는 침대 위에서 만화책을 읽으며 세상 맛있는 뻥튀기를 즐길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충분히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대로 밀도 높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존중받아야 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비바 라 비다'를 치면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이라는 소개글이 제일 위에 나온다. 나는 이참에 그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죽기 전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그들의 멋진 음악이 궁금해서다.
글|작은바이킹
* 이 글은 5월 24일 자 동아일보 '2030 세상'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