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루걸레 하나에 이렇게 기분이 날아갈 줄이야
36가지.
첫 일주일 간, 내가 사서 방에다 가져다 놓은 물건의 개수다. 아니 유학생이 뭘 그렇게 많이 샀어? 그 손바닥만 한 기숙사 방에 뭘 놓을 데는 있니? 너 그거 또 올 때 다 처리해야 할 텐데 힘들어서 어떡하려고. 카톡 너머 엄마는 엄마 몫의 잔소리를 쏟아냈다. 언니, 바구니는 오바 아니에요? 같은 유학생도 잔소리를 했다.
오 년 전쯤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그냥 '기타 등등'의 의미로 묶어 둔 '생활비' 카테고리가 생각보다 가계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는 거였다. 자취하면 돈 많이 든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그깟 쓰레기봉투 하나, 샴푸 하나 우유 하나가 뭐 얼마나 하겠냐며 우습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교통비와 통신비를 합친 금액을 그야말로 우습게 뛰어넘고 당당하게 한 달 식비에 육박하는 금액을 매 달 꼬박꼬박 차지하고 있었다. 생활이란, 그마만큼 묵직한 거였다.
유학이라는 두 글자엔 바로 그 생활이라는 것이 가득 들어 있다.
말하자면 '해외에서 자취를 하는 것'인 나는 한국에서와 똑같이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밥도 챙겨 먹어야 하고, 때맞춰 장도 봐야 한다.
그러려면 과일과 우유를 파는 가까운 수퍼는 어디인지, 옷걸이와 세제와 울샴푸는 어디서 파는지, 다이소가 없는 이곳에서 전자렌지에 넣어도 괜찮은 그릇과 씻은 접시를 놓을 건조대는 어디서 사야 하는지, 건물 반대편 지하실에 있는 빨래방까지 쌓인 빨랫감을 들고 가려면 핸들이 달린 빨래 바구니를 사는 게 좋을지, 내 좁아터진 방에는 얼만한 크기의 빨래 건조대를 놓을 수 있을지, 한 층에 진공청소기가 달랑 한 개뿐인 기숙사에서 매일 머리카락이라도 치워 줄 자루걸레는 어디서 사야 하는지, 일일이 알아보고, 따져보고, 고르고, 사서, 정리하고,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도착한 첫날로부터 주욱. 하다못해 쓰레기통에 끼울 비닐봉지 하나도 있어야 하고.
짐을 쌀 때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런던 가면 다 있을 거니까 이건 빼자.'였다. 다 있겠지, 거기도 사람 사는 데니까. 와 보니, 역시 그랬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다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를 몰라서 그렇지.
공동 샤워실을 쓰다 보니 물건을 챙겨 방까지 오는 동안 건조한 공기에 얼굴이 찢어질 것 같아, 미스트 하나를 사려고 온 동네를 다 헤집고 다니다가 결국 포기했다(다음 날 중심부에 있는 한 상점을 찾아가 겨우 두 개 남은 것을 샀다). 다이소에서 돌돌이 하나를 사서 넣어 왔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저기에 더 크고 튼튼한 돌돌이를 1파운드에 팔고 있었다. 그래도 다이소 돌돌이가 내 짐에서 차지한 한 자리가 전혀 후회되지 않았다. 그건 말 그대로 '다니다 보니' 보인 거지, 처음에 와서 먹을 것 사는 곳 아무것도 적응이 안됐는데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는 '돌돌이' 하나를 사러 이 도시를 헤매고 다닐 수는 없잖아. 오히려 작은 생필품들은 더 가져올 걸 그랬다.
이렇게 사고 샀는데도 이를테면 사치품이라 느낄 만한 것들이 필요하다. 욕실 매트, 샤워 가운, 신발 정리대, 핸드 타월 같은 것들.
욕실도 없는데 웬 욕실 매트? 방에 세면대가 있는 통에 양치를 하고 나면 온 주변에 석회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바로 옆에 내가 자는 침대가 있는데.
오우, 이름부터 사치스러운 샤워 가운? 공간이 바뀌면 생활 습관도 바뀐다. 함께 화장실과 부엌과 샤워실을 공유하는 플랏 생활에서는, 샤워장에서 그냥 빨개벗고 뛰쳐나와 내방까지 가는 것이 '예의상' 불가능하다. 샤워를 마치고 잔뜩 물에 젖은 발과 몸을 좁아터진 츄리닝 바지와 냄새나는 티셔츠 목구멍에 낑겨 넣는 경험은 일주일 여행지에서라면 모를까 1년을 하기에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갈아입을 속옷, 입고 나올 츄리닝, 내 샤워 도구, 안경, 수건, 방 열쇠, 휴지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그 잠깐의 몇 미터를 오가기 위해선 마른 옷을 담을 비닐봉지와 그 모든 것들을 담아 갈 목욕가방도 필요하다. 그러니 최소 샤워 타월이라도 사서 후루룩 몸을 감고 나오는 것이 낫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신발 정리대 하나 사서 조립해 두었더니 오히려 공간이 더 넓어졌다. 좁은 방바닥에 늘어놓은 신발들이 묻혀 온 바깥 먼지를 덜 날아다니게 할 수도 있고.
유학생이라고 핸드 타월(그러니까 천 원짜리 행주) 하나 못 살게 뭔데? 매 번 설거지 후 공중에 물을 털어대느니 그까짓 거 하나 사서 편하게 쓰고 버리면 되잖아.
보통 단촐한 삶을 말할 때 예로 드는 '그릇 한 벌과 젓가락 한 쌍'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며칠간 그릇이 없어 씨리얼을 못 먹었으니까. 미니멀 라이프- 좋은데, 짐 싸면서 이사 하면서 다 갖다 버리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그래도 나는 사는 것처럼 해놓고 살아야겠다. 내가 가장 잘 사 왔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뭐 저런 걸 사가냐며 욕했지만 결국 사온) 그물 수세미, 벽에 붙이는 손톱만 한 헹거, 첫 1주일 간 나의 생존을 보장해 준 미숫가루 쉐이커다. 3존에 있는 이케아까지 가서 사 온 5파운드짜리 조그만 빨래건조대는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함께 간 친구한테 핀잔을 들어가며 굳이 스무 개 넘게 사온 옷걸이들은 한 개도 빠짐없이 옷을 걸고 빨래를 널며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무슨 정리용 바구니씩이나 필요할까 싶겠지만 머리끈, 안경집, 화장솜, 돌돌이, 청소포 리필 등 30가지의 자잘한 물건을 아무렇게나 널어 두는 것보다는 담아둘 바구니 세 개를 사는 것이 앞으로를 훨씬 대충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어차피 공부하러 간 건데 뭐 대충 하고 살아, 하는 이들에게 나는 내가 산 것들 중 제발 대충 살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게 있으면 좀 가르쳐 달라고 하고 싶다. 아무리 내가 선택해서 만든 설레는 삶이라 해도, 아무리 그것이 1년짜리 시한부라 해도, 그 안의 나에게는 내가 살아내야 할 하루하루의 생활이다. 말이 통하지 않고, 외롭고, 낯설고, 고단한 하루를 지내고 들어온 내 방이 마치 임시 숙소처럼 어지럽거나 여행자의 방처럼 단촐하다면 그것은 위안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또 하나의 고단함이 될 터다. 나도 참 대충 살고 싶다. 그것이 얼마나 하기 어려운가를, 한 번이라도 노력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생활은 대충이 아니다.
아, 드디어 자루걸레가 왔다. 이제 방을 닦을 수 있다! 뭔데 자루걸레 하나에 이렇게 행복한데?
| 직장인을 일시 정지하고 날아온 1년짜리 유학생. 이따금의 토요일에 쓰는 빡세고 다정한 런던 이야기.
더 많은 사진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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