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링고, 스픽, 말해보카 유행에 동참 후 깨달은 것

유행과 나와의 오래된 관계

by 이보라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뾰롱뾰롱하며 단계 상승을 축하하는 문구. 저항할 수 없이 빠진다는 게 이런 것이려나?


멈추고 싶지만 멈추고 싶지 않은 이 느낌?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처럼 무언가가 쌓이는 느낌을 주면서 부자가 된 느낌이고 능력자가 된 느낌?


그러나 내가 나를 몰랐다. 자기 이해가 그토록 부족했다.


게으른 건 알았는데 이렇게 게으른 줄은 몰랐지.


회화책을 듣고 따라 할 때는 그저 음원을 틀어 놓고 책장을 팔락거리며 문장을 듣고 따라 하기만 하면 됐었다. 미국 드라마를 볼 때는 그저 화면을 틀어 놓고 경건하게 치킨을 놓고 앉아 와구와구 닭 다리를 뜯으며 보기만 하면 됐었다.


그러나 듀오링고는 달랐다.


내 손바닥 안에 있는 조그마한 것이 자꾸 뭘 시킨다.


이거 누르고 저거 누르고, 따라 하라 마라. 이거 보고 저거 보고, 맞춰 보라 마라.


자꾸만 손가락을 귀찮게 구는 듀오링고는 몇 단계를 하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스픽과 말해보카는 초반부터 들이미는 게 많아서 시작조차 못 했다.


앱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문제였다(언제나 문제는 나지 나야).


어학 앱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 유행에 동참한 것이 큰 깨달음을 주었다.


어학에서의, 혹은 인생 전반에서의 저관여 자세. 손가락을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다니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게으른 태도. 그리고 항상 왠지 모르게 살짝 데면데면한 유행과의 어색한 관계.


사람마다 통하는 방식이 있었는데 그걸 또 간과했다. 듀오링고도, 스픽도, 말해보카도 매일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매일 했다. 100일이고, 1,000일이고, 3,000일이고, 하는 사람들은 다 했다. 그런 사람들은 실력도 쑥쑥 늘었다. 세상에는 참 꾸준히 열심히 하는, 부지런쟁이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나는 그저 침대에 드러누워 입만 나불거리고 싶었다.

그랬다. 그랬었다.





[삽질 복기]

- 이제 세상이 바뀐 만큼 손가락을 좀 놀려봐도 되지 않을까?

- 안 될까? 힘들까?

- 오키, 인정.

- 유행의 흐름을 거스르고 실력 안 늘면 어차피 다 네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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