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롤모델로 삼아 그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맛을 모르는 사람이 맛을 그리는 것이 가능할까?
사극을 좋아하는 나는 TV에서 대장금을 한다는 이야기를 봤을 때 가슴이 무척이나 뛰었다. 대부분의 사극이 왕, 왕후, 장수의 이야기라면, 대장금은 이영애가 주연이라는 것과 상관없이 그 시절 여자 이야기, 생각시로 들어가 임금의 수라까지 만들게 된 이야기, 의녀가 되어서도 자신만의 방식을 잃지 않았던 굳은 기개가 있어서 좋았다. 자기 뜻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펼칠 수 있는 인물을 좋아했기에, 드라마 대장금은 다른 의미로 와 닿았다. 장금이는 음식 만드는 것을 바로 배운 것이 아니라 재료 고유의 맛과 기초를 먼저 익혔다. 이런 훈련 덕분인지 후에 절대 미각을 잃어버렸을 때도 재료를 잘 조합하여 음식 맛을 그렸다. 그 장면을 보면서 현실에서도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 가지 일에 대하여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 대장금을 보던 시점은, 새댁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나의 음식 맛은 그저 그랬다.
이런 의문점에 답을 준 것은 여러 양념 맛을 탐닉했던 아이였다. 짠맛, 단맛의 세계를 마음껏 드나들며, 뜨거운 물에 다시*를 자신의 농도로 그리거나, 커피와 물의 비율을 그리는 아이를 보며, 음식을 하면서도 양념 맛을 보지 않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림 연습도 없이 수채화를 그릴 수 없듯이, 아이 몰래 조금씩 양념 맛을 보기 시작했다. 같은 제품의 고추장이라도 리뉴얼이 될 때 맛이 달라지므로 맛을 알아두면, 맛의 배합이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양념 맛을 탐닉하는 아이를 혼냈지만, 그 후에는 아이와 같이 간을 맞추었다. 간을 맞추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쉬울 지도, 또 누군가에게는 어려울지 모른다. 아이가 이런 것에 집중하게 된 데에는, 애니메이션 장금이의 영향도 있었다. 드라마 대장금하고는 조금은 다른 내용이며, 음식을 하루하루 배워 나가며, 꿈을 이루는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 애니에 나왔던 꿈을 이루자 OST는 지금도 무척이나 좋아하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블로그 초기 글에는 이런 내용을 글로 써서 포스팅한 적도 있다.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애니의 장금이나, 대장금을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후로 가끔 음식 프로그램을 보며, 재료와 레시피를 보며 머릿속이나 현실에서 가끔은 따라 해보기도 했다.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작가를 찾는 공모전을 보고는 나의 주특기인 음식과 영화에 대해 생각했고, ‘우리의 계절은’이라는 애니를 추천했다. ‘우리의 계절은’인 첫 번째 단편에 나왔던 산시엔 미펀은 주인공의 인생 내내 함께였고, 이 단편에는 3개의 산시엔 미펀이 나온다. 주인공의 성장에 따라 머무르던 도시도 다르고, 그 지역 특색에 따라 미펀도 다른 맛을 띠게 된다. 어린 시절의 면은 직접 만들어서 투명하고 반짝이는 면이지만, 면도 차츰 기계화되고, 미펀에 올리는 야채와 볶은 고기 양도 줄면서, 미펀 맛은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다. 어릴 때 먹던 정성 가득한 미펀은 추억·향수의 음식이 되었으며, 일 하느라 바빴던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와 함께 먹었던 음식이고, 더웠던 여름이나, 추웠던 겨울에도 온기를 주는 음식이다. 힘들고 가끔 지칠 때 생각나는 엄마의 음식, 고향 음식처럼 말이다. 애니에 나왔던 투명한 면발까지는 힘들겠지만, 산시엔 미펀 그림이 너무 강렬해서, 온전히 그 그림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요리를 해 볼 때는 재료와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은 지, 맛 스케치를 먼저 그려보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장보기도, 음식 하느라 우왕좌왕하는 일이 적다.
주인공이 먹었던 산시엔 미펀은 닭고기에 여러 향신료를 넣어 푹 우린 육수에, 면을 넣고 표고버섯과 목이버섯, 계란 프라이, 간 돼지고기를 볶은 것, 잘게 썰은 파를 송송 얹은 것이다. 여기서 미펀이라는 말은 중국말로 쌀국수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면발을 구하면 좋겠지만,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납작 당면, 쌀국수여서 이것으로 준비했어요. 닭고기 육수를 사용했기에, 백숙을 해서 이것을 응용하기로 했어요.
이번에는 시간 단축을 위해서 닭백숙을 일반 압력솥에 했어요. 백숙용 닭을 잘 씻어 압력솥에 넣고, 통마늘 몇 개, 대추 몇 개, 물을 넣었어요. 이때 백숙에는 여러 약재를 더 추가하셔도 돼요. 압력솥에 백숙을 할 때는 처음에는 센 불로 하다가, 압력솥의 소리가 나면, 중간 불로 줄여서 10분 정도 더 끓여주시면 돼요. 1차는 닭백숙으로 해서 드시고, 2차는 산시엔미펀식으로 즐기시면 돼요. 2차에서 닭고기 살을 사용해야 하므로, 1차에서 닭고기 살을 어느 정도 남겨 놓아주세요.
1) 똥을 딴 멸치, 청경채, 다시마 등을 넣고 끓여주세요. 이때 치킨스톡 2 숟가락이나, 국간장(조선간장) 1~1.5 숟가락같이 넣어서 끓여주세요. 멸치와 다시마는 국물이 끓고 5분 정도 지나면 꺼내 주세요.
2) 육수가 끓으면 표고버섯을 넣어주세요.
멸치 육수 내면서 야채 익히기-치킨스톡 사용
3) 납작 당면을 이용하실 분은 30분 정도 물에 불려 준비하시고, 물의 기포가 올라올 때 불린 납작 당면을 같이 끓여주세요. 그러면 납작 당면에 육수 맛도 베이게 되어 더 맛나게 먹을 수 있어요.
4) 쌀국수를 이용하실 분은 1번, 2번 하시면서, 다른 냄비에 쌀국수 면을 삶으신 후, 면이 다 익으면 찬물에 헹구어 건져 주세요.
5) 삶아진 납작 당면이나 쌀국수 위에 닭 육수와 야채 육수를 반반 비율로 섞으신 후, 표고버섯을 썰어서 얹고, 청경채, 닭고기 살은 잘게 찢어서 얹어주세요. 마지막으로 반숙으로 한 계란 프라이를 해서 얹어주세요. 반숙으로 하면, 노른자가 국물과 면에 섞여 더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어요. 쪽파나 대파를 잘게 썰어서 얹어 드시면 더 맛나게 먹을 수 있어요.
* 야채 육수에 넣지 않고 납작 당면 이용하실 분은
1) 끓는 물에 납작 당면을 넣고, 약 10분간 삶아주세요. 냉수에 2~3 회 깨끗이 헹구신 후 물기를 빼고 사용해 주세요.
2) 찬물 또는 미지근한 물에 30분 이상 불린 후 6분 정도 삶아주시면 돼요.
납작 당면 이용한 산시엔 미펀
* 닭백숙을 하지 않고 산시엔 미펀을 즐기고 싶으신 분은 1번, 2번을 따라 해 주시고, 납작 당면이나, 쌀국수를 삶아서 준비해 주시고, 돼지고기 간 것을 볶아서 준비하시면 돼요. 돼지고기 간 것을 볶으실 때는 맛소금, 후추 약간을 해주는 것이 맛이 더 좋아요.
*애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백숙의 육수만 사용해서 먹었을 때는 약간은 느끼한 맛이 나서, 백숙 육수와 야채 육수를 반반 비율로 섞었을 때가 가장 어울리는 맛으로 탄생했어요. 반반 치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반반 육수도 있어요. 반반 육수가 싱거우면 치킨스톡 약간이나, 국간 장으로 간을 조금 더 맞추세요.
쌀국수 이용한 산시엔 미펀(반숙용 계란 프라이는 꼭 하세요)
*치킨스톡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도 계시겠죠? 치킨스톡은 닭의 고기와 뼈를 여러 가지 야채와 함께 푹 끓여 만든 국물로 네모난 덩어리 또는 가루 형태 따위로 가공된 것을 말해요. 산시엔 미펀에는 액상으로 된 치킨 육수 농축액 47%의 치킨스톡을 사용했어요. 치킨스톡은 닭 육수를 사용하고자 할 때 쓰며, 알리오 올리오, 카레, 해물볶음 등에 사용하기도 해요. 보통 2인 기준 1큰술(10g) 정도 사용하는데, 기호에 따라 가감하시면 돼요.
'우리의 계절은'에서 주인공은 어느 계절이나 산시엔 미펀을 즐겼다. 닭 육수를 어느 계절이나 즐길 수 있듯이,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뜨끈한 닭 육수가 주인공에게 따듯한 위로와 에너지를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에 백숙을 찾는 우리나라처럼 닭 육수를 이용한 미펀을 즐겼으며, 미펀만으로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닭 육수, 여러 야채, 간 돼지고기 볶은 것과, 계란 프라이 등을 추가하여 여러 영양소까지 골고루 잘 챙긴 것 같다. 추억의 맛, 향수의 맛은 언제나 따듯한 난로 같으며, 인상파가 그린 붉은 해의 기운이 감돌기도 한다.
산시엔 미펀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백숙 1차, 2차는 닭죽 또는 산시엔 미펀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 미펀, 치킨스톡으로 또 다른 선택이 생겨서, 그려질 맛의 가짓수도 더 다양해졌다. 잔치국수나 재물 국수는 국간장을 베이스로 한 것이라 수채화 같은 느낌이었다면, 치킨스톡, 납작 당면, 계란 프라이의 반숙은 유화의 느낌이 든다. 수채화, 유화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으면, 음식 맛, 인생 맛도 폼 나게 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독일의 심리학자 자이가르닉의 이름을 딴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것이 있다. 실험에서 한 그룹은 일을 모두 끝나게 하고, 다른 그룹은 중간에 중단하게 했을 때, 두 번째 그룹이 실험에서 진행한 일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을 다 마치지 못하거나, 미완성의 일이 더 잘 기억이 나는 것처럼, 똑같이 그려본 산시엔 미펀은 아니지만, 자이가르닉 효과를 가지게 되어 계속 그려보고 싶은 유화의 맛이 될지도 모른다. 때론 꿈은 꾸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장금이의 시선 따라 흐르다 보면, 애니의 장금이가 꾼 꿈 백화점에 마음껏 드나들 수 있게 되어, 현실에서도 꿈 백화점을 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