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진실을 알아버리니까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늘 해오던 일인데도 전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노화의 증상 중 하나인지 아니면 어떤 이유가 있는 무기력인지. 무기력과 싸우면서 열심히 스스로 격려했다. '조금 천천히 해도 괜찮아. 정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그 정도면 큰 일을 해낸 거야. 대단치 않아도 괜찮아.' 그럼에도 나는 불안하고 괴로웠다. 정확히는 자괴감과 옅은 자기혐오를 느꼈다. 주변에서 나를 재촉하거나 쫓는 사람도 없는데 뭐 때문인지 불안 속에 눈을 떴다. 저 말들은 하나하나 다 내가 진심으로 맞다고 생각하는 문장들이고 진심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인데도, 그 말이 나를 향할 때면 나는 그 말을 하는 나와, 그 말을 듣는 내가 모두 탐탁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본능적으로 내가 저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나 의견에 몹시 민감한 편인데, 전에는 그 이유가 내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모든 반응에 대해서 연약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그런데 그렇다고 매번 상처받는 것은 아닌 나의 일관되지 않은 행동패턴을 지켜봤을 때, 사실 내가 정말로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은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였다는 걸 알았다. 내가 찔리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타인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지만 솔직히 나도 맘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내가 지레 짐작하고 펄쩍 뛰면서 숨어버린다. 어떻게 보면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태도 같지만 사실은 나의 자아가 적정선보다 너무 커졌다는 증상이 아닌가 싶다. 나는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흠을 잡혀서는 안된다는 과도하고 건방진 생각이고 너무 나에게 골몰한 사고다.
그래서 한동안은 글이 써지지 않았다. 특히나 에세이의 성격을 띤 모든 글들은 말이 목구멍에 턱 걸리듯이 손가락에 막혀 손끝에 맺히지 조차 못했다. 왜냐하면 글에 내가 너무 많기에. 안 그래도 커져가는 자아에 피로한 와중에 내가 나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막상 내가 나에 대해서 쓰지를 않으니 내가 너무 흐려진다고 느꼈고 하루하루의 의미 또한 옅어졌다. 그날 하루 제대로 돈을 생산했거나 글을 생산하지 않았으면 다 낭비된 것 같았다. 그런 감각이 한 겹 한 겹 쌓여 지금의 무기력과 불편을 만들어냈다.
나는 글을 쓰거나 올릴 때 많은 생각에 가로막힌다. 검열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얼마나 유난을 떨었는지 작가의 서랍에 쌓인 글들이 잔뜩이다. 말과 생각이 많은 성정상 주의하지 않으면 상대를 피곤하게 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인데 좀 지나쳤던 것 같다. 검열과 자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지 못했다. 충분한 습작을 거치고 비로소 내가 정말 작가라는 생각이 든 이후에 신중을 기하면 될 걸, 마치 이미 많은 독자들의 기대를 받는 유명 작가 마냥 미리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나는 그런 검열에 가로막혀 가벼운 글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를 답답해하고 있었다.
나는 나에 대해서 늘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지나고 생각해 보면 본능적으로 진작에 눈치채고 있곤 했다. 이번에도 모두가 나를 가만히 놔두는데도 혼자 조급함을 느끼며 초조해했던 걸 보면 결국 내가 나를 가만히 둘 수 없던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최대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안의 내가 그걸 말리고 있었을 줄이야. 나를 속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나를 설득하고 격려해도 결국 본능적으로 진짜 나의 상태를 깨달아버린다. 그 사실을 외면하는 데도 많은 힘이 쓰인다. 이제는 괜한 데 힘쓰지 말고 직면할 때가 됐다. 회피에 대한 책임과 감당 또한 내 몫이다. 이런 나를 직면하는 용기야 말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