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재직자의 스타트업 적응기
대기업 신입공채로 입사했을 때에는 온보딩 기간이 너무 길어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스타트업에 입사하니 PC수령 후 1시간 남짓의 교육이 전부이고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월 초에 입사한 나는 약 2달간 온보딩 교육을 받았다. 각 그룹사의 신입사원이 모여서 3주 간의 합숙교육을 받으며 그룹의 설립, 핵심가치, 역사, 각 그룹사의 특징 등을 배웠고, 그 이후에는 회사 차원에서 2주 간의 합숙교육을 통해 회사의 역사, 일하는 방식, 회사 내의 각 사업부 소개, 제도 및 복리후생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사업부 배치 이후에는 사업부에서 별도로 진행하는 온보딩 교육을 약 3주에 걸쳐 받게 되었는데, 사업부의 역사, 사업부 내의 조직 구조, 사업부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제도 및 복리후생에 대한 내용이었다. 부서에 배치된 후에도 1주일은 부서에서 만든 OJT 계획에 따라 실제 실무를 진행함에 있어 필요한 내용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동기들 중에는 부서의 상위조직 개념인 '팀'에서 팀 차원의 OJT 교육을 2주간 진행함에 따라 같은 팀에 배치된 동기들과 다시 또 실무를 위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대기업은 체계적인 온보딩 프로세스를 진행하는데 이는 대기업의 채용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다. 대기업은 경력직보다는 공개채용을 통한 신입사원의 대규모 채용 비중이 높은 편*이다.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경력을 가진 구성원이 대규모로 입사하기에 교육팀에서 체계적인 온보딩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해 대학생이 회사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한 번에 교육시키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특성상 신규 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알아야할 프로세스가 많고 복잡하다는 점에서 온보딩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이 많아지고 그로 인해 교육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 물론 현재 공개채용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삼성이 유일하다고는 하지만, 수시채용을 진행하는 롯데그룹과 현대차그룹이 매 3개월마다 채용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정말로 '수시'로 진행한다기 보다는 채용공고의 빈도가 잦아졌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기업은 대체적으로 업력이 긴 편이기에 비전, 전략, 핵심가치, HR제도 및 조직문화 등이 정립되어 있어 비교적 변화가 적다. 따라서 온보딩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강의 내용 작성해둔다면 여러 번에 걸쳐 해당 교육을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대기업에서 사업부 단위의 신입사원 교육 기획 및 운영을 담당했었는데, 약 6회의 신입사원 온보딩을 운영했지만 전반적인 프로그램 내용은 거의 유사했으며 직접 진행하는 강의의 자료 또한 년도 변경에 따른 숫자 수정, 전략 최신화 등이 전부였다. 이처럼 대기업에서는 공들여 온보딩 교육을 기획해둔다면 여러 번에 걸쳐 활용할 수 있기에 효율적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하나 덧붙이자면,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이 수행하게 되는 일의 종류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대기업 구성원들은 잘 갖추어진 프로세스 속 '부품'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기업은 프로세스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연히 대기업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입사 후 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고 박수받는 본인의 모습, 자신이 기획한 광고나 제품이 시장에 릴리즈된 모습 등 최소 과장급 이상에서 진행할 수 있는 업무를 기대한다. 따라서 입사 후 1년이 넘도록 주어지는 복사와 스캔, 엑셀 취합 및 정리, 회의록 작성 등 단순반복적이고 자잘한 업무를 수행하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내가 생각한 회사생활은 이게 아닌데...'라며 후회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의 비전, 목표, 핵심가치, 역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깊게 심어주고, 각종 복리후생 제도를 교육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게 아닐까 싶다.
반면 스타트업의 온보딩은 매우 간결하다. 하루짜리 온보딩 코스가 있으면 체계가 잘 갖춰진 스타트업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입사하던 시점에 회사는 이제 막 설립 8개월차가 된, 20명 이내의 규모로 창립멤버들을 제외한 인원이 이제 막 늘어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당시 온보딩은 출근 후 1시간정도 진행된 강의가 전부였으며 회사의 제품 소개, 조직 소개, 업무 툴 소개 정도가 교육 내용으로 포함*되었다. 그리고 온보딩 강의가 끝날때 즈음, '가을님, 오후에 고객사 미팅에 같이 들어가실까요?'라며 실무에 바로 투입되었다. 노션과 슬랙을 쓰는 방법도 모르고 제품에 대한 이해가 높지도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를 교육을 통해 해소하기 보다는 실무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습득하는 방향이었다. 입사 후 2개월 간 교육만 받던 온보딩을 경험했던 내게, 입사 당일에 바로 실무에 투입되는 스타트업은 무척 낯설었다. 물론 신입과 경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입으로 입사한 경우에도 온보딩에 차이는 없다는 점에서 스타트업은 대체적으로 온보딩 교육은 짧게하되 실무를 통한 교육에 중점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 50명 규모가 된 지금도 여전히 회사 차원의 온보딩은 1시간 남짓 이루어진다. 다만 과거에는 진행되지 않았던 회사의 비전과 전략, 핵심가치에 대한 내용이나 조직 구조, 근무제도, 복리후생에 대한 설명이 추가되었다.
이처럼 스타트업에서 온보딩이 짧게 이루어지는 것에는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채용 방식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수시' 채용이다. 현업에서 사람이 필요한 자리가 있으면 채용공고를 낸다. 스타트업은 각 현업에서 채용 프로세스 전반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기에 굳이 3개월 등 단위를 정해 인사팀에서 일괄적으로 채용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채용방식은 스타트업의 강점인 '빠른 속도'를 저해하는 요소이기에 필요할 때 현업에서 직접, 빠르게 채용을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로 인해 스타트업에서는 입사 시점, 입사 인원이 일정하지 않다. 매일 1명씩 입사하여 1시간의 온보딩 교육을 5일간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소수의 인원이 다양한 일정에 입사하게 되는 스타트업에서는 긴 온보딩 교육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며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온보딩 교육을 위해 입사일을 특정 일로 배치하는 것은 실제 현업의 업무 수행에 크나큰 비효율을 가져오기에 부적절하므로, 온보딩 교육을 효율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에서는 아직 회사의 업력이 길지 않고 비전과 핵심가치, 조직 구조, 심지어는 제품까지도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어제까지는 A를 팔았지만 다양한 가설-검증을 통해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오늘부터는 B를 팔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기획팀과 개발팀으로 운영되던 조직이 스쿼드 조직으로 3개월의 파일럿 운영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높고 변화가 빠른 스타트업에서는 온보딩을 위한 교육 내용에 공을 들여봤자 해당 내용의 사용 가능 기한이 짧을 수 있다. 굳이 온보딩 교육 기획과 PPT 강의자료 작성에 시간을 들이느니, 노션에 간단하게 내용을 작성하고 자주 수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스타트업이 처음인 나는 짧은 온보딩과 즉각적인 실무 투입이 어색했지만, 같은 날에 입사한 다른 구성원 분은 스타트업이 익숙한 분이셔서 이러한 프로세스를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셨다. 오히려 입사 전에 미리 회사의 노션과 슬랙을 통해 일하는 방식, 현재 진행 중인 내용 등을 파악하신 상태라 온보딩 과정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참여하시는 모습을 보였다.
스타트업 이직 당시, 나는 아직 입사일 전인데도 불구하고 회사 이메일을 만들기 위한 ID 취합이나 각종 툴 초대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대기업에서는 입사일에 ID를 생성하는 시간이 있었고 입사 전까지는 업무와 관련된 전달이 일절 없었다(지금 생각하면 당연하다. 대졸신입에게 무슨 일을 주겠으며, 삼엄한 보안의 그룹웨어로 일을 하는데 네이버 메일로 회사 내부 정보를 보낼 이유도 없다). 그런데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게 되니 입사 2~3일 전임에도 알림들이 띠롱띠롱 날아오길래 '아직 나는 급여를 받는 근로자가 아닌데 왜 벌써 일을 주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일을 시키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그저 빠른 적응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주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미리 노션과 슬랙을 보고 가지 않았다고 해서 내게 주어지는 불이익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게 된다면 먼저 나서서 미리 각종 업무공간에 초대해달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입사 후에는 실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회사의 전반에 대해 파악할 시간은 입사 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타트업에서의 원활한 온보딩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업 분위기마다 다를 수 있으나, 현재 내가 근무하는 스타트업은 질문에 무척 개방적인 조직이다. 오히려 모르는 데 괜히 질문하기 머쓱해서 아는 척하고 넘어가는 것을 경계한다. 1초 전에 이야기했던 내용이더라도 내가 놓쳤다면 '죄송한데 다시 한 번 말씀주시겠어요?'라고 묻거나, 너무나도 당연히 알아야할 용어임에도 내가 잘 모르겠다면 '죄송한데 A가 어떤 의미에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권장된다. 따라서 입사 후에도 모르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물어보도록 격려받았는데, 프로세스가 갖추어진 대기업에서는 '알아서 자료를 찾아보고 이해하는 것'이 미덕이었기에 이러한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스타트업에서는 아직 자료화되지 않은 프로세스가 많고 각자의 머리 속에 암묵지 형태로 존재하는 것들이 많기에 질문할 때 훨씬 효과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조직에도 더욱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실무를 진행하면서 드는 의문은 바로바로 질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모든 스타트업이 그런 것은 아니고 조직의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
첨언.
과연 대기업 방식과 스타트업 방식 중 어떤 온보딩이 더 '좋은' 온보딩일까? 모든 HR이 그렇듯, 정답은 없다. 스타트업이더라도 대기업과 유사한 수준의 길고 체계적으로 짜여진 온보딩이 더욱 효과적인 곳도 있을 것이며, 대기업이더라도 짧고 굵은 온보딩을 고수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온보딩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하고 그에 맞춰 설계가 되었다면 온보딩의 기간과 방식이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