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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없어야하는 조직 vs 질문이 없으면 안되는 조직

대기업 재직자의 스타트업 적응기

by 가을

"궁금하신 사항 있으신가요?"

회의의 마무리를 알리는 대사가 나오면 대기업에서는 서로 눈치를 보며 대충 '아뇨'를 대답하기에 바빴다. 설령 이해하지 못한 사항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물어봤다가는 회의에 참여한 여러 사람에게 눈총을 받을 수 있기에, 궁금한 점은 따로 메신져로 물어보거나 적당히 눈치껏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매너였다. 그러나 스타트업에서는 '질문이 없는 것'을 더욱 위험 요소로 생각한다.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진행한 경우 '왜 질문하지 않았냐'는 질책이 오기도 한다.




대기업 : '아는 척'하는 것이 힘


대기업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규모가 크다. 사람도 많고 이루어지는 업무의 종류도 다양하고, 그렇기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협업해야 하는 부서와 동료의 숫자도 많다. 그렇다보니 '적당히, 알아서, 눈치껏'하는 것이 중요하다. A라는 일을 진행한다고 할 때, A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부서의 종류, 회의에서 주로 등장하는 단어, 나에게 주어진 일 등을 종합해 '대충 이런 내용인가보다'라고 어림짐작해야 한다. 이 일을 왜 하는 것인지, 꼭 해야만 하는 것인지, 이 일을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다보면 '일은 언제 할거니?'와 같은 핀잔을 듣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어림짐작'으로 일을 해도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기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최적화'된 조직 구조가 있다. 사원급이 어떠한 일을 진행하고자 할 때, 본인이 기안한 것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부서에 할당된 프로모션 비용을 활용해 B2C 타겟의 SNS광고를 집행하고자 할 경우, '비용'적 측면에서 부서장님 결재 - 비용을 관리하는 지원 부서의 합의 등 품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SNS 광고 내용이 적합한지에 대해 부서장님이 한 번 검토를 하게 되고 지원팀은 비용이 적합한지에 대해 검토를 하게 되는 등 어림짐작으로 행하는 일이더라도 해당 업무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앞선 글에서 말한 것처럼, A 업무를 주도하는 부서에서도 '탑다운'으로 해당 일을 '건너건너' 받아왔기에 본인들도 해당 일의 정확한 목적이나 기준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내가 업무를 더 잘해내고자 업무의 배경과 목적을 알기 위해 꼬치꼬치 질문하더라도,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나 담당자가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하지 못할 수 있다. 본인이 A 업무 담당자임에도 유관부서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상황을 직면하면 A 업무 담당자도 약간의 현타와 함께 질문자에게 슬슬 짜증이 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가을님은.. 같이 일하기에는 좀 힘들지 않아요?'와 같은 평판으로 흘러갈 수 있다.


따라서 대기업에서는 모든 배경을 이해하고 업무를 진행하기 보다는, 내가 가진 정보들을 적절하게 조합해 스스로 1차적인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일잘러'로 평가된다.





스타트업 : '제대로 아는 것'이 힘


반면 스타트업에서 '아는 척'은 독이다. 대기업과 달리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한 명 한 명이 실무자이자 의사결정권자이다. 스타트업의 마케터가 SNS 광고를 진행하고자 한다면 특정 범위 내에서는 자유롭게 비용을 사용할 수 있다. 오히려 한 개의 광고를 실행할 때마다 경영진에게 의사결정을 받고자 한다면 스타트업의 가장 큰 장점인 '빠른 실행속도'를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30만원 이내에서는 가을님이 판단하시고 진행하시면 돼요'와 같은 교정적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실무자가 실행과 바로 맞닿아있기에 스타트업에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A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CEO와 마케팅팀장, 마케팅 실무자가 회의를 한 경우, CEO가 해당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더라도 마케팅 팀장과 실무자 모두 어떠한 목적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지표를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CEO는 마케팅 업무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기에, A프로젝트를 마케팅팀에 이관하고 아주 한참 뒤에야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마케팅팀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상태로 A를 진행했다면, CEO가 확인하는 시점에서는 기존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을 확률이 높다. 프로젝트 회의 중 5~10분을 투자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싱크(sync)를 맞추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인데, '질문하면 안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이해한 척 업무를 진행하는 바람에 '잘못된' 방향으로 불필요한 시간적/금전적 비용을 사용하는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스타트업에서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메타인지를 통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대기업에 익숙한 사람의 경우, '이런 것까지 싱크를 맞춰야 해?', '이렇게 사전 작업이 길어서 일은 언제 해?'와 같은 불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기업에서는 돌멩이가 구르기 시작했더라도 멈출 수 있는 다양한 안전장치가 있는 반면, 스타트업에서는 한 번 구르기 시작한 돌멩이를 제어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없기에 구르는 속도에 가속이 붙으면 멈추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전 싱크'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인식 차이는 각 조직의 특성에 따라 나타나는 모습이다. 따라서 어떠한 모습이 더 '옳다'거나 '좋다'고 표현할 수는 없으며, 대기업-스타트업으로 나누어 설명했지만 대기업이더라도 조직문화에 따라 질문을 권장할수도, 스타트업이더라도 질문을 줄이고 눈치껏 행동하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을 선택할 때 '나는 어떠한 환경이 더 잘 맞는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면 좋다. 배경과 목적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더라도 해야하는 일이 명확하기만 하다면 충분한 사람인지, 배경과 목적을 자유롭게 질문하고 이에 대해 공감해야지만 업무가 가능한 사람인지, 혹은 '질문을 하세요'라는 환경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인지 등 나 자신의 성향에 대해 고민해본다면 나에게 맞는 기업을 찾는 것에 더욱 유리할 것이다.


더불어 한 가지 팁을 적자면, '제대로 아는 것이 힘'으로 여겨지는 기업에서는 채용 면접에서 '왜'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왜 그 일을 했나요, 왜 그렇게 했나요, 왜 그게 맞다고 생각했나요, 왜 그게 성공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등등 지원자가 그 일의 목적, 배경을 100% 이해하고 진행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본인이 참여했던 채용 면접에서 '왜'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받았다면, 그 때 나의 감정이 어땠는지를 떠올리며 해당 회사에 입사할 것인지를 검토해보면 좋다. 질문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면 업무에 의문을 갖기보다는 주어지는 업무를 잘 해내는 것이 좋은 사람이기에 그 조직이 잘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그 질문이 내가 진행한 업무들의 의도를 파악해주려 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면 해당 기업은 내가 일하기 좋은 환경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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