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살다]
뭔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이렇게 설레는 일인 줄 한동안 잊고 있었다. 비밀번호가 바뀌었고, 해외 접속이다 보니 2차 인증이니 뭐니 접속하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순간 접속을 포기할 뻔했다. 지난번 글을 쓴 이후로 4개월이 흘렀고 미국 생활은 오늘로 6개월을 꽉꽉 채웠다. 시간이라는 게 언제 흘렀나 싶을 만큼 이렇게 빠르게 흘러간다.
처음 미국에... 그리고 뉴욕에 왔을 때 걱정도 많았지만 사실 기대 혹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이런 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에 생각해보면 음...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보니 그냥 일기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처음 몇 개월은 적응에 정신이 없었고, 그리고 겨울... 준비되지 않은 북부의 차가운 계절은 무거운 옷의 무게만큼이나 금세 체력을 소진하게 했다. 다행히도 지난겨울에 비해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고, 버텨낼 수 있을 만큼의 시련과 고통이 적당한 선상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게 했다.
한동안 말도 못 하게 추운 겨울이더니 또 어떤 하루는 봄날처럼 따뜻하기도 하고 점점 그리고 하루하루 그렇게 나아지고 있다. 이러다 어느새 고개를 들어보면 파릇파릇한 새싹이 세상을 뒤덮고 길가에는 달달한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면서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겠지만 아직은 물속에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듯 천천히 천천히 계절이 흘러간다.
나는 외로움이 많은 사람인데 그 사실을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하나둘 떠나가고 또 다른 사람들이 생기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인생인 줄 알았고, 언제나 현재에 충실하다면 그래 그거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현재를 지난 가까운 미래에서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 현재에는 충실하지 못했고, 앞선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는 그저 다가올 미래의 과거가 되어 다시 현재를 후회하게 만드는 그런 시간을 보냈었다. 멍청이... 밥통... 그런 시간들... 시간은 흘러가고 주변에 남은 사람은 점점 옅어지고...
한동안 우울했는데 그건 햇볕을 못 봐서 그런 것 같다. 주로 낮에 일을 하고... 일주일에 이틀을 쉬는데 쉬는 날은 주로 실내에서 장을 보거나 집에서 쉬거나... 겨울이라 춥고... 무겁고... 그렇다.
우울한 이야기는 우선 휙! 던져 버리고... 4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퀵 리뷰를 해보자면...
우선 눈이 왔다. 세 번쯤 왔는데 기가 막히게 내가 혼자 일을 하는 날이면 눈이 왔다. 다행히 강설량 자체는 많지 않아서 적당히 맘을 졸이며 비행기가 잘 내리길... 그리고 잘 뜨길...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내 차 트렁크엔 삽이 실려 있다. Home Depot에서 처음 산 아이템이 삽... 눈이 오면 삽으로 샵샵~ 눈을 치우려고 샀는데 다행하게도 아직 삽을 쓸 만큼의 눈은 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Brand-New 삽으로 남아주길...
지난 2주일 동안 보스턴에 두 번을 다녀왔다. 한 번은 가족들이 뉴욕에 와서 아이비리그 투어로 직접 운전을 해서 다녀왔고, 그다음 주에는 신규 취항 때문에 조업사 교육으로 한 번 더 다녀왔다. 이번엔 비행기로... 차로 4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비행기로 2시간이 걸린다...? 가까운 거리지만 전 세계 최고로 붐비는 공항인 만큼 출도착은 언제나 지연과 함께... 뉴욕과는 다르게 차분한 도시라는 인상이 컸다. 공부는 모르겠지만 찰스 강변을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도시였다. 살고 싶은 도시를 고르라면 보스턴을 고를 수 있을 것만 같다.
아... 그리고 차를 샀다. 12월에 샀는데 그때까지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고민 고민을 하다 한국 차를 팔고 새 차를 샀는데 아직도 잘한 결정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현재를 즐기자?라는 모토로 사기는 했는데... 엇...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미래를 걱정하는 나라니... 젠장...
요리... 나는 그러니까 요리를 잘하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맥주도 만들고 빵도 만들고 이런저런 요리를 했지만... 미국에 와서 한층 발전했다. 회사에서 주는 맛없는 한 끼가 그토록 소중한 것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사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주는 간절함이... 요리 스킬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줬다. 요리는 레시피가 아니라 스킬이다... 그럭저럭 잘 먹고 잘 마시고 살고 있다.
맥주는 만들고 있지는 못하지만... 4개월 만에 마음에 드는 바틀 샵을 발견했고, 운전해서 3시간 걸리는 기가 막힌 브루어리를 발견했다. 어느 마트 고기가 좋고, 어느 마트 야채가 그리고 어느 마트 과일이 좋은지 파악했다. 더 이상은 먹고사는 게 문제는 아니다.
여유라는 거...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는 것... 그렇게 쉬운 것인 줄만 알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회사에서야 급박한 상황이 닥쳐도 10년이 가뿐히 넘어가는 사회생활력?으로 급하지 않은 척... 여유로운 척... 아무것도 아닌 듯 한박자 쉬고 목소리 가다듬고 일할 수 있다. 뭐 그 정도야... 짬밥이 얼만데... 문제는 혼자 있는 시간... 그 시간이 마음만 먹는다고 쉬이 외로움이 가셔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이렇게 혼자서 해외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사진 속의 어느 날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다. 해 질 녘이 되어서 비가 그쳤고 이렇게 맑아졌다.
나는 그러니까 아직 비를 맞고 있는 중이다.
물론 언제까지 비를 맞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2019년 2월의 첫 글...
뉴욕에 살다... 아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