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하를 검색해보니
"기기나 장치가 다룰 수 있는 정상치를 넘은 부하. 과부하가 되면, 신호 처리 회로의 신호는 왜곡(歪曲)이 생기며, 전력 처리 회로는 구성 부품의 과열 따위가 생긴다. 대부분의 기기나 장치는 정격 부하 용량을 초과하여도 이상 없이 운전할 수 있도록 약간의 과부하 용량을 가지고 있다."
라고 나온다.
그럼 부하는 뭘까 하고 보니.
"전기를 띠게 하거나 기계의 힘을 내게 하는 장치의 출력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 또는 소비하는 동력의 크기"라고 한다.
다룰 수 있는 정상치를 넘은 에너지 소비.
그럼 과부하가 걸렸을 때 그건 너무 많이 요구되는 에너비 소비가 문제인 걸까
아님 그정도밖에 다루지 못하는 기기의 문제인걸까.
나는 번아웃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게 과부하인가 싶고.
뇌파 검사를 했는데, 뇌 활동은 과부하가 걸린 것으로 나오고
심박수는 이상심박으로 기록조차 되지 않는다.
밤엔 잠을 못잔다.
조그마한 소리나 뒤척임에도 바로 말똥말똥 깨서는
온갖 미뤄뒀던 고민 걱정이 자동 재생된다.
살을 빼겠다는 생각은 없는데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것이 없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뭐라도 먹는데
밤마다 배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된다.
분명 쉬어야 한다는 몸의 명령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런데 쉬겠다! 라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아니 꼭 쉬냐 마냐에 대한 판단 뿐만 아니라
어떠한 판단도 지금 내 머리로 내릴 수가 없다.
오래도록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
회사의 이름을 말할 때에도 자랑스럽고,
내가 일을 하며 참여하는 회의들과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해도 뿌듯하다.
그런데 정작 나는 성장하고 있나? 라고 하면
정말이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의 변호사로서의 능력이 더욱 성장했는지는 둘째치고,
잘했던 것들 마저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싶다.
지금 회사에 들어온지 6개월만에 함께 하던
동료들 3명이 모두 퇴사를 하였다.
물론 회사의 구조조정 문제가 너무 지난하고
피로하였던 나머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다들 좋은 길로 잘 갔다고 생각한다.
떠난 사람을 탓할 이유는 결코 없고
그들이 자신의 길을 잘 찾은 것이
참 존경스럽고 부럽기도 하지만서도
남겨진 나는 너무나도 힘들다.
그들이 떠나고 지난 3개월 동안 정말
정말 열심히 해왔다.
나간 사람의 빈 자리가 티 나지 않도록,
이제는 회사 일에 더 책임감을 가지고
사명감을 가지고 더 성심성의껏
내가 원래 하던 일이 아닌 것까지
배우려는 마음으로 참 열심히 달려왔다.
그렇게 해온 것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내가 난생 처음 해보는 일들,
아무도 도와주거나 알려주지 않는 일들을
정말 최선을 다해 해왔던 내가
기특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동시에 안쓰럽다.
난 여기서 얻는 것 없이 이렇게 갈려만 나가다
버려지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어쩌면 일찍이 발을 빼고 나간 그들이
똑똑한 것이고, 남아서 괜히 힘들다 징징거리며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내가 그 모든 똥물을
뒤집어 쓰는 건 아닐까?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고,
아무도 핑크빛 미래를 약속한 적 없는데..?
내 커리어가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공익적인, 국제적인 일이 하고 싶어서
내가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선택한 길이었고
기대되고 꿈꿔왔던 일이고
때로는 지금도 자랑스럽고 기특하고 감사하기도 하지만
내가 포기하고 선택했다고 해서
이 길이 나에게 무얼 보장하거나 약속하지는 않는다.
아니, 보장이나 약속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곳은 나에게 적절한 '보상'도 하지 않는다.
5명의 일을 2명이 하고 있는 지금, 내가 당연히 해본 적 없고
잘 하리라 기대도 할 수 없는 일들까지도 도맡고 있지만
보상은 없다. 그저 매월 같은 월급을 받을 뿐.
그 보상은 경제적인 것은 물론, 그 외적인 것으로도 없다.
나는 내가 지금 맞게 하고 있는 것인지
잘 가고 있는 것인지 파악할 길이 하나도 없다.
나를 가이드해 줄 시니어는 없다.
이렇게 가다보면 어떤 걸 더 열심히 해서 어떻게 성장해야지 하는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면 되잖아!
라고 말하면,
그건 그거대로 자신이 없다.
올 초에 구조조정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여기저기 지원해보았으나 모두 떨어지고 나서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점점 이 고용 시작에서 매력이 없어진다는 것을.
나는 이제 초년차도 아니고, 그리 어리지도 않다.
게다가 이제는 공익 색채까지 묻어서
기업체 입장에서는 나를 뽑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지금 힘들다고 나가면,
나는 또다시 근속년수 1년을 겨우 채우고
또 이직한 사람밖에 되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버티면, 다른 길들과는 더 멀어지는 거 아닌가.
요즘 너무 숨이 막히고 눈물이 나서
이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이렇게 언제 잘릴지 모르는 조직에서
더 노력하고 안달복달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때면
나도 뭐 잘하는 게 하나쯤 있어서 그걸 잘 살려서
셀프 브랜딩 그런것도 하고 SNS도 해보고
그걸 토대로 사업도 해보고 그러고 싶다 꿈만 꾸는데
그리고 또 깨닫는 건 나는 그것도 못하는구나. 라는거.
지금 정말 피할 곳이 없다.
올라갈 문도 없다.
내가 잘 하는 게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럴 때 그냥 다 관두고 몇달 여행 다니면서
천천히 충전하고 아이디어를 얻어 오고 싶은데
기혼자에게는 영 말도 안 되는 꿈이다.
나는 여러모로 묶여 있고
여러모로 갇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