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부림 2] 몸부림을 쪼개보자

섣불리 도망치기에 앞서, 몸부림의 정체를 파악해야만 했다

by 변호사 G씨

꿈의 회사에 들어온 뒤, 남은 건 동태눈 뿐인 건에 관하여

울분을 쏟아내듯 지난 번 글을 썼다.

그건 멀끔한 기록이나 글이라기보단 누구라도 붙들고 멈춤 없이

와다다 내 답답함을 실 뽑듯 뽑아내고 싶었던 한풀이에 가까웠던 것이지만.


그로부터 몇 주가 흘렀다.

나는 답을 찾고 싶었고,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간절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움을 받았다는 그 책들을 열심히 읽고,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쫓아다니며 레퍼런스를 수집하다보면

내가 원하던 답도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답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내가 잘못된 책을 읽어서도, 그 많은 팁들을 알고서 실천을 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원한 "답"이 뭔지에 대한 정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답을 달라고 떼 쓰기 전에,

우선 내 몸부림을 쪼개어보고, 그걸 구성하는 실체와 정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그래야 방향이 나오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의 변화가 세워지고, 의지가 생길 테니까.






내 몸부림은 ______다.

이 빈칸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답답함: 이 조직, 이 일의 답답함이다.

(1) 뭐 하나를 하려고 해도 상사, 대표, 지역본부, 본부에 모두 보고하고 그들의 리뷰와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끝없는 보고 체계

(2) 일이 되게 하고 싶은데, 행정 절차고 규칙이고 '안 되는 이유'만 많음

(3) 이렇게 한들, 돌아오지 않는 보상 (경제적, 커리어적, 명예적 모두)

(4) 이렇게 한들, 세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는지 모르겠는 의구심

(5) 일은 현장 사람들이 다 하고, 명예와 돈은 윗 사람이 다 가져가는 역 삼각형 조직 구조 (돈 많이 받으면서 가이드라도 주던가, 도와라도 주던가!)


불안함: 이렇게 계속 있다가는 커리어도, 재정적으로도 성장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함이다.

(1) 승진의 길이 막힘

(2) 고위직, 국제직이 아니면 조직 내에서 인정받기 어려움

(3) 전문성을 키우기 어려운 일의 본질

(4)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일을 하기 어려운, 확장성의 침몰

(5) 경력이나 능력에 비해 후려침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

(6) 부품으로서 소모되기만 하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구조


간절함: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간절한 욕구다.

그럼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것"은 뭘 의미하냐?

(1) 외부 변수에 내 직책, 고용관계가 휘둘리는 것 (끝나지 않은 글로벌 구조조정, 다자주의 후퇴 트렌드 등)

(2)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승진의 기회 없이 소모되는 것 (국제기구는 P 직급이 아니면 해외 오피스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고, 승진의 개념도 딱히 없고 아예 새로 지원해야 함)

(3) 100의 진심을 다 쏟지 못하는, 그만큼의 열정이 없는 분야의 일을 질질 끄는 것

(4) 늘 상상만 하던 "하고 싶은 일"들을 무한정 미루는 것

(5) 그러다 금방 아이가 생기고 부모가 되고 나면 책임감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적당한 회사를 다닐 수 밖에 없는 것

(6)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나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일이 뭔지 탐색해보지도 못한 채 이렇게 노동자로 살며 퇴근 후의 고작 몇 시간 취미 생활에 만족하는 것






이렇게 점점 더 쪼개놓고 보니, 내 울분의 실체가 조금은 더 구체화되는 것 같다.

내가 내 몸부림이 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면, 내 몸부림의 기한과 멈출 방법에도 조금 더 가까워질 거라 믿는다. 그래서 요새 나는 뭐든 "쪼개어 보기"를 하려고 한다. 쪼개고, 나누고, 생각나는 모든 걸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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