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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호사 G씨 Nov 30. 2021

꿈이라는 거대한 포장지

내가 꿈을 선택한 것일까, 어쩌다 꿈이 생겨버린 것일까



주렁주렁

매달린


턱 괴고 모로 누워

그저 절로

떨어지기만


농익은 꿈이

짓물러 터지면

허사인 걸


나무에 올라가

가지 흔들어

작대기로 후려쳐


기다리는 꿈은

결코

꿈이 아니야


- 꿈, 공석진





    얼마 전 수능이었다고 한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이 각자의 '꿈'을 향해 반쯤은 설레고 또 반쯤은 두려운 마음으로 시험을 지나왔을 것이다. 2014년, 나의 고3은 '추운 밤'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나는 수시 전형에 더 집중했기에, 사실 수능이라는 시험 자체가 주는 압박이나 의미가 다른 이들보다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의 고3은 수능이라는 한 번의 시험보다는 매번의 학교 시험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 모든 과정으로 더 기억되는 것 같다. 어쩌면 보다 길고 끝없는 싸움처럼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계속해서 성적을 '이전보다 더', '조금만 더' 올려야 한다는 불안감과 '내가 지원하는 학과에 나보다 내신 좋은 아이가 지원하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함을 품고 만성적인 긴장감 속에서 했던 끝없는 '야자'와 학원 수업들이 떠오른다. 



    어느새 고3도 대3도 아닌, 로3이 되었다. 그것도 시험을 2달밖에 앞두지 않은. 나는 평소에 시험을 앞두고 긴장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입시 때도, 대학 입시 때도, 로스쿨 입시 때도,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또 기대하는 마음에 '끝나고 놀아야지'의 설렘이 훨씬 커서 시원한 마음으로 임했던 편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노력한 만큼은 결과를 보상받으며 다음 단계로, 다음 단계로 넘어왔던 것 같다. 물론 그다음 단계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 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래서 아주 교만하게도, 나는 입시가 쉬웠다고 생각했고, 나아가 꿈을 이루는 것은 계획대로 하면 다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입시가 곧 꿈인 줄 알았던 나 자신은 정작 발견하지 못한 채 말이다.



    어여쁜 학생들이 어떤 밤을 보내고,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부모님 몰래 눈물을 흘리고, 속이 상하고 있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나 역시 지금만큼은 그 마음인 것 같다. 내가 고3이던 시절에는 미처 다 이해하지 못했던 친구들의 마음도 이제는 좀 더 잘 알 것 같다. 7년이나 지나고서, 이제는 어른이라 불려야 하는 나이가 되어서야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 조금은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꿈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너무 많은 자리에서 '꿈이 뭐니?'라는 질문을 받는다.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 교수님, 동료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뭐하고 싶니? 꿈이 뭐니?'와 같은 질문들을 한 번쯤은 던지곤 한다. 그때마다 마치 흰 종이에 빨갛고 동그란 사과를 그리고 '사과예요'라고 하는 것과 같이, 명확하고도 모두가 끄덕일만한 대답을 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전자에 가까웠다. 좋아하는 게 많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개성 있는 사람이니까 - 라는 틀 안에서 내가 나에 대한 편견을 만들고 무의식 중에 나를 압박해왔다.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요.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어요." 



    나는 누가 물어봐도 당당하고 확실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대답하며 살아왔다. 운 좋게도 그건 대한민국 입시 제도 하에서는 꽤나 유리했던 것 같다. 목적지향적이게 보이고, 비전이 있어 보이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은 '학생을 뽑는 심사위원들'의 눈에 꽤 뽑음직하게 보였을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징그럽게도 유명한 한국 입시 판에서 살아남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는 것 외에 달리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대체 꿈 그게 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고통스러우면 이건 내 꿈이 아닌 건가? 내가 이곳 말고 다른 어딘가를 희망하면 그게 꿈인가? 어디서 살고 싶은 게 꿈인가? 어떻게 살고 싶은 게 꿈인가? 누구랑 무엇을 하고 싶은 게 꿈인가? 뭘 하지 않고 싶은 건 꿈이 아닌가? 





    

    어쩌면 난, 세상이 너무 두꺼운 꿈이란 허상의 울타리에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것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해본다. 꿈을 꾸라는 것은 곧 '목표를 가져라, 뭔가를 만들어내라, 이뤄내라, 돈이 되는 무언가를 해내라, 바쁘게 움직여서 세상을 굴러가게 해라'를 곱게 싸놓은 포장지인 건 아닐까.  


 

     사실 그거, 별거 아닌지도 모른다. 우연한 기회와 선택 그리고 보고 들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어떤 이미지, 조금 더 격하게 말하자면 허상에 불과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 별거 아니거나 그 모든 것이거나. 나의 경우에는, 초등학교 4학년 처음 가본 미국에서의 경험, 6학년 짧은 어학연수에서 처음 본 하이스쿨 뮤지컬, 잠깐 다녔던 미술 학원, 우연찮게 꼽사리 껴서 들어간 '그 어렵다던 대치동 영어학원', 갑자기 시작한 봉사활동, 중학교에서 받은 상처를 뒤로 하겠다고 바득바득 들어간 외고, 그리고 어느새 17살 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결정되어 버린 나의 목표, 나의 미래.


    ... 이런 것들을 내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창한 사명 같은 거 없이, 조금의 다른 선택으로 내가 가지 못한 다른 길을 갔을 수도 있었다. 거꾸로 생각하면, 조금의 다른 선택을 하면 다른 길도 얼마든지 내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꿈쟁이 했던 나의 꿈도 그저 경험과 선택의 총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허무론자처럼 말하려는 건 아니었다. 허망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이 편해지는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꿈이란 거, 뭐가 되었든 어떻게 생긴 거든, 확실한 건 그거보다 중요한 건 그냥 당신이다. 당신이 살아온, 살아갈, 선택할 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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