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일하고 사는 것이 내게 썩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아주 여러번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기분이지만...!
때로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그래도 웬만큼은 잘 해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번 주, 내가 원고를 대리하여 대법원 상고심에 갔던 사건에 관하여
"파기 환송" 판결을 받았다.
민사 소송에서 상고심은,
더 이상 사실관계를 다툴 수 없고
1심과 2심의 "법리 판단"에 잘못된 부분이 있을 때에만 다툴 수 있기 때문에
대법원까지 간 사건이 파기 환송될 확률은 통계적으로 3 에서 5% 내지라고 한다.
많은 변호사들은 평생 파기환송 판결 한 번도 못 받아본다는데,
나는 스물 아홉, 변호사 3년차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봤으니,
아무리 변호사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나라도 뿌듯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 않나.
물론 내가 정말 좋은 변호사라서, 유능한 변호사라서,
이길 수 없는 사건을 이기게 한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어쩌면 이길 만한 사건이었을 수도 있고,
대법원이 유독 우리 사건에 정성을 쏟아 주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좋은 결과인 것은 맞으니, 나도 하루 저녁 정도는 기분 좋게 보내보려 한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의 딜레마, 누구든 한 번쯤 겪어봤으리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하게 되기란 천운 같은 것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내가 꽤 잘해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곤 하는 게
우리네 인생사 아니겠는가.
누구든 그 갈림길에 서봤을 것이라 해도,
누구나 그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싸우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늘상 누군가와 싸워야 하는 이 일이 부담스럽고,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의뢰인들을 대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나에게 신건이 들어오면,
나는 기대되기 보다는 먼저 가슴이 턱 하고 막히곤 한다.
(물론 어떤 송무변호사가 신건을 받고 설레할까. 아, 개업변호사라면 다를까.)
- 또 어떤 싸움에 휘말리게 될까, 또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에 같이 들어가줘야 할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때에 맞게,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고민하고 찾아보고 적어보고 다퉈보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모르겠는데,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통해
누군가 피해를 보고, 속상해한다면 그건 더더욱 나로서 견딜 수 없는 일일 것 같아서 말이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 뜯으며 기록을 읽고,
하급심 판례를 판례 검색 사이트 50페이지까지 넘겨가며 뒤지고,
기사에 논문에 주석에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동원하여
의뢰인의 입장에 도움이 될 만한 주장을 해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오늘처럼 나름 뿌듯한 순간들도 생기게 되다니,
어쩌면 좋아하지 않지만 하게 된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동기 부여와 열심이 요구되기 때문에
조금씩 나아지고, 나아지다 보니 어느 정도 잘하게 되는 게 아닐까.
더군다나 나와 같이 마음이 가지 않으면 행동을 하지 못하는
머리와 가슴이 일치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하게 될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을 잘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것 참 억울하기도 하고 희한하네-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내일 어떤 다툼들이 펼쳐질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