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호사 G씨 Sep 04. 2024

자의식을 조정하는 시간

비대한 자아를 내 현실의 크기에 맞추는 것

주요 대학 진학률이 높은 특목고,

명문대학교, 

SKY 로스쿨을 졸업하면

적어도 어느 정도의 모습으로는 살아야 한다

- 라는 공식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고, 

어느 집단에서든 줄곧 잘 해왔으니까

적어도 좋은 차를 타고 

서울 중심부에 좁지 않은 집에 살고

연봉이 얼마냐고 묻는 질문에는 웃으며 넘어가고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회사에 다니고 

어디가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커리어를 쌓으며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디폴트 값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내 결혼식 또한 어느 정도로 예쁘고 

내 신혼여행도 예산에 구애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가고

신혼집에는 내가 꿈꿨던 인테리어를 마음껏 해보고

나의 자녀들은 나보다 더 걱정 없이 

예술, 체육, 유학 등 하고 싶은 것을 뭐든지 하게 해주고

그들이 공부를 잘하든 말든 크게 상관 없이

그림 같이 화목한 가정을 꾸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을 꽤나 오해하며 살아왔다.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은 그 어떤 근거도 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어디서부터 만들어졌을지 모를 나의 비대한 자아 

그 비대성이 나를 너무나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나의 지금은, 

내 29년 인생을 통틀어 거진 유일한 자랑이었던

학벌과, 아주 조금의 스펙과, 자격증

그리고 작은 회사에서의 경력 몇 줄이 전부다.




나는 지금 반짝이지 않는다.

나는 지금 꿈을 꾸지도 않는다.




내가 당연히 살 거라고 생각한 인생은 어쩌면 나의 것이 아닐 것이다.

내가 어디서부터 잘 못 됐지? 라는 생각도 어쩌면 교만일지 모른다.

그저 나는 이 업계의 수많은 잘난 사람들 중에서 

대형 로펌에 갈 능력이 안 되었던 것이고,

검사나 판사가 될 능력이 안 되었던 것이고,

빠르게 개업을 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고,

마케팅을 잘 해서 자리 잡을 성격이 못 되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그냥 이게 지금 내 능력에 맞는 삶인 걸지도 모른다.

이 정도의 회사, 이 정도의 커리어, 이 정도의 연봉

-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뭔가를 노력하고 올라가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보기에는 부담스럽고 거짓된)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거짓된) 희망을 자꾸 옆 사람에게도 주입시키려는 걸까?




아직 젊으니까, 학벌이 좋으니까, 스펙이 되니까,

더 해보라고 한다. 

더 큰 회사, 더 이름 있는 회사, 더 높은 연봉,

더 있어보이는 모든 커리어에 도전해보라고 한다.




근데 애초에 내가 그럴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었으면 어떡하지?

나는 어찌저찌 변호사는 되었지만, 

잘 나가는 변호사는 되기 어려운 성격과 능력일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까지 한껏 비대해졌던 나의 자아를 이제는 내 현실과 만나게 해줄 시간이다.





너는 지금 이러 이러한 길을 걸어서 여기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너는 이 연봉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어쩌면 네가 원했던 삶은 너보다 훨씬 치열하고 열심히 산 변호사들을 위한 것일 수 있다





너보다 잘난 사람이 널렸다는 것을 이제 좀 인정을 하는 게 어떻겠니?




매거진의 이전글 변호하기 싫은 변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