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한 자아를 내 현실의 크기에 맞추는 것
주요 대학 진학률이 높은 특목고,
명문대학교,
SKY 로스쿨을 졸업하면
적어도 어느 정도의 모습으로는 살아야 한다
- 라는 공식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고,
어느 집단에서든 줄곧 잘 해왔으니까
적어도 좋은 차를 타고
서울 중심부에 좁지 않은 집에 살고
연봉이 얼마냐고 묻는 질문에는 웃으며 넘어가고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회사에 다니고
어디가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커리어를 쌓으며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디폴트 값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내 결혼식 또한 어느 정도로 예쁘고
내 신혼여행도 예산에 구애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가고
신혼집에는 내가 꿈꿨던 인테리어를 마음껏 해보고
나의 자녀들은 나보다 더 걱정 없이
예술, 체육, 유학 등 하고 싶은 것을 뭐든지 하게 해주고
그들이 공부를 잘하든 말든 크게 상관 없이
그림 같이 화목한 가정을 꾸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을 꽤나 오해하며 살아왔다.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은 그 어떤 근거도 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어디서부터 만들어졌을지 모를 나의 비대한 자아
그 비대성이 나를 너무나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나의 지금은,
내 29년 인생을 통틀어 거진 유일한 자랑이었던
학벌과, 아주 조금의 스펙과, 자격증
그리고 작은 회사에서의 경력 몇 줄이 전부다.
나는 지금 반짝이지 않는다.
나는 지금 꿈을 꾸지도 않는다.
내가 당연히 살 거라고 생각한 인생은 어쩌면 나의 것이 아닐 것이다.
내가 어디서부터 잘 못 됐지? 라는 생각도 어쩌면 교만일지 모른다.
그저 나는 이 업계의 수많은 잘난 사람들 중에서
대형 로펌에 갈 능력이 안 되었던 것이고,
검사나 판사가 될 능력이 안 되었던 것이고,
빠르게 개업을 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고,
마케팅을 잘 해서 자리 잡을 성격이 못 되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그냥 이게 지금 내 능력에 맞는 삶인 걸지도 모른다.
이 정도의 회사, 이 정도의 커리어, 이 정도의 연봉
-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뭔가를 노력하고 올라가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보기에는 부담스럽고 거짓된)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거짓된) 희망을 자꾸 옆 사람에게도 주입시키려는 걸까?
아직 젊으니까, 학벌이 좋으니까, 스펙이 되니까,
더 해보라고 한다.
더 큰 회사, 더 이름 있는 회사, 더 높은 연봉,
더 있어보이는 모든 커리어에 도전해보라고 한다.
근데 애초에 내가 그럴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었으면 어떡하지?
나는 어찌저찌 변호사는 되었지만,
잘 나가는 변호사는 되기 어려운 성격과 능력일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까지 한껏 비대해졌던 나의 자아를 이제는 내 현실과 만나게 해줄 시간이다.
너는 지금 이러 이러한 길을 걸어서 여기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너는 이 연봉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어쩌면 네가 원했던 삶은 너보다 훨씬 치열하고 열심히 산 변호사들을 위한 것일 수 있다
너보다 잘난 사람이 널렸다는 것을 이제 좀 인정을 하는 게 어떻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