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나는 그냥 능력이 부족한 변호사인지도 모르겠다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
3년째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렇게도 허무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패소 판결은 처음이었다.
소송에서 거의 져본 적이 없을 뿐더러,
간혹 패소한다 하더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이번 사건은 너무도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었다.
판사님이 마지막 변론기일에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실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마지막 변론기일,
판사님은 양쪽 대리인들에게
"논문을 더 찾아봐라"는 식의 말씀을 하셨고,
때문에 나는 어떤 법리적 판단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가보다 생각하고는
내가 놓친 법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몇날며칠을 인맥을 총동원하여
아는 판사님, 로클럭 동기들,
변호사 언니들에게서 자문 의견을 구했다.
하지만 끝내 판사님이 논문을 더 찾아보라고 하신
그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대표 변호사님이 보기에
이 사건은 법리가 상당히 클리어했고,
상대방 변호사님의 주장이 내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거나 비상식적이라고 느껴졌기에
원고가 승소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대표 변호사님 또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의뢰인께 "이 사건은 무조건 이깁니다"라고
설명을 해두신 거겠지.
의뢰인은 그동안 얼마나 안심하고 계셨을까.
그리고 패소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얼마나 망연자실하고 어이없으셨을까.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 한 걸까,
나는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매우 중요했던 걸까.
아님 나의 실수가 없었어도
판사님은 같은 판단을 하셨을까.
나 아닌 다른 멋진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다면
얼마나 더 똑부러지게 사건을 잘 이끌었을까
그 변호사였다면 이 사건을 이길 수 있었을까
항소를 하자고 자신 있게 말씀을 드려야 하나,
항소한다고 해도 더 이상 낼 증거가 없는데
항소심에서는 어떻게 뭘 더 설득해야 하나
아니 설득이 되는 문제기는 하려나.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며칠 밤 잠에 쉬이 들지 못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나의 나쁜 상상은 때론 극단적으로 치닫아서
혹여나 의뢰인이 나의 잘못때문에 패소했다며
나에게 소송을 제기하면 어쩌지 라는 망상에 이르렀다.
'굳이 따지자면 사건 진행 방향을 제대로 지시하지 않은 대표님 책임 아닌가'
'다른 변호사였다고 사건이 이기리라는 보장이 있나'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해서
그게 꼭 사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
그런 망상을 하면서까지 나 자신을 어떻게 방어할지를
자동으로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니
너무도 부끄럽고 우스웠다.
애초에 이겼으면 될 것을.
애초에 더 후회없이 똑부러지게 대리했으면 될 것을.
의뢰인이 맞닥뜨린 막막한 현실에 왜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지.
나도 그냥 남탓 잘하는 변호사가 되어
'결과엔 책임 못집니다' 라는 태도로
일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소송 진행만 해준다고 했지,
반드시 이긴다고 해준 적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제가 수임한 건 아니잖아요'
'따지시려면 대표님께 따지시죠'
라고 그냥 속 편하게 말해버리고
무시하는 변호사면 차라리 좋겠다.
그런데 애매하게 착한 척 하는
나 자신은 마음이 너무 쓰인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내 책임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어쩌면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 걸지도 모르겠다.
내 능력이 이 정도에 불과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건을 잘 이끌 수 없는 변호사인지도 모르겠다.
아 오늘도 하는 생각이지만
변호사.. 소송.. 진짜 다 그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