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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Jun 05. 2023

무력감은 폭력으로부터 오고,

무력하면 군살이 찌며 맷집을 키우는 것 같아.

19살 때 엄마의 남자친구는 우리 집에 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남자친구를 참 사랑한 나머지 이념까지 닮아갔다. 동생을 대안학교에 보내고 전교조 활동을 하며 저녁마다 학교에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자랑을 하곤 했다. 엄마는 무엇을 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기는 오만함에 찬성을 하는 것은 아니다. 편안한 사랑은 잘 들어주는 것 아닐까 한다. 잘 안되지만.


나는 전교 3등 안에 들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지내왔다. 공부를 잘하면 독립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으며 엄마와 거리를 둘 수 있으면서도 엄마에게 명품백을 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고 어린 생각. 하지만 내가 쌓아 올린 성실함엔 존경을 표한다.


대안학교를 꾸리는 엄마와 엄마남자친구 주변 사람들은 나를 비아냥댔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을 것이 없다. 재미가 중요하다. 동생보다 못생겼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를 한 번도 옹호해 준 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기분이 나쁘고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것이 맞는 감정인지도 몰랐다. 어리둥절하다가 무력해지고 무력에 잠식되며 살이 찌기 시작했다.


대학교에 가서는 동아리 선배와 사귀었는데, 헤어지자마자 나를 제명시켰다. 아무 말도 못 했다.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나를 침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의심을 두거나 반응을 하며 표현해 본 적이 없다. 아픔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엄살이 많은 친구를 이유 없이 불편해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칭얼거리고 불편한 감정을 잘 표현하게 된 계기는 2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대학교 3학년 때 무조건 적인 수용을 주는 남자친구를 오랫동안 만난 것.

두 번째는, 요가원에서 일하면서 정말 유치하다시피 솔직하고 아쌀한 원장님을 둔 것.

둘 다 솔직한 사람 옆에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나는 그들로부터 컵이 넘치도록 사랑을 받고선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태국, 서울 그리고 발리.


그리고 표현하는 연습을 한 장소는 발리였다. 언제나 내 마음이 종착역은 발리. 다음은 파리나 뉴욕처럼 도시적인 곳으로 두고 싶은데 어찌 되려나.


발리에서는 뻗어내고 싶은 만큼 뻗어내며 정렬에서 벗어난 요가도 마음껏 하고, 서핑보드 위에서 스킬보다는 골반을 흔들며 파도를 탔다.

많은 메뉴들의 옵션을 통해 싫어하는 음식,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자주 상기시켰고, ‘no’를 자주 외치는 서양인들과 ‘up to you’라는 말을 자주 하는 발리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다채로워졌다. 많은 포옹들을 하며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어렴풋이 또는 얼렁뚱땅 지워나갔고 매일 눈을 마주하며 사는 삶으로부터 생기를 얻기 시작했다. 잘 먹고 운동하고 잘 자니 근육도 탄력이 있어지며 힘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no’를 웃으며 자주 말하는 얄밉고도 사랑스러운 애가 되었다. 웃으면서 ‘no’ 하니까 못 알아듣는 애한테는 단전으로부터 나오는 ‘no’를 외치는 노련함도 생겼다.


그러곤 다시 한국에 와서는 오묘하고 이상한 제안들에 감정적이지 않게 ‘no’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부끄럽지만 꺼내고 싶은 속마음도 어설프게 표현해 보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꺼내고 싶은 속마음은 주로 돈에 대한 섭섭함, 상대의 무심함, 무심해서 느껴지는 부조리함 같은 건데, 상대가 불편하더라도 일단 좀 하고 본다. 왜냐면 영어로 배운 문장이 있거든 ‘you deserve it.’  


‘no’ 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정에 대해서  잘 표현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침묵하고 싶을 때 침묵하고, 춤추고 싶을 때 춤출 수 있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오랜 무력감의 습은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생활하는 순간 다시 시작된다. 그렇게 후굴이 쉽게 잘 되는 나는 집에 있으면 가슴이 덜 열리며 후굴을 하는 순간 긴장을 하기 시작한다. 다 열어버리면 다칠 것 같을까? 마음을 따르는 일들에 꽂힌 비난이 상기돼서 일까? 참다 참다 가슴이 너무 답답한 날엔 가족 모두 외출 한 순간을 틈타 후굴을 한다. 그러면 그동안 참았던 것들이 더 폭발적으로 열리면서 가슴의 결들이 빼곡히 느껴진다.


오늘은 그렇게 두껍게 쌓인 가슴을 열어내고 명상을 하며 방안을 무심히 바라봤다. 오래 살았던 이 집에 쌓인 나의 무력감과 동생의 무력감과 오늘 나의 성장과 마음열림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무력감으로부터 구하는 법, 몸의 근육을 부정하지 말고 키워보며 마음의 근육을 함께 키우는 법을 말이다. 가끔 회원님들께서 말하신다. “선생님, 근육을 키우면 생기가 돌고 활기차져서 좋은데 바지가 타이트해져요.” 내가 오래 했던 고민이라 대답을 다행히도 할 수 있다. “ 저는 그래도 활기 찬 제가 좋아서 근육을 선택해요. 힘이 너무 넘쳐 릴랙스가 안되고 가만히 있는 게 어려워지면 그때 조절해요”


무력하다면 마음껏 몸을 뻗어내고 힘을 주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이불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질러보시기를, 그럴 힘도 없이 무력하다면 나의 무력함에 물을 흘리며 애도할 수 있기를, 무력하다 무력하다 무력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발견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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