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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Nov 10. 2023

딸의 시가 브런치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 2

그 아이. 글쓰기를 잘한다고 들었다. 왠지 시도 더 잘 썼을 것 같다고 생각한 근거는 국어 시간의 일이다. 친구들에게 책 소개하기 시간에, 비룡소에서 나온 '폴리애나'를 골랐다고 했다.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고. 비룡소 클래식 시리즈를 하나씩 읽어가는 아이란다. 그 글밥 많은 책을 그 정도로 꾸준하게 읽어대는 아이라면 글쓰기가 보통 아니지 싶었다.


나쁜 예감이 다. 섣부르게 그 아이 시를 봤다간, 괜히 아이 앞에서 표정 관리가 안될 것 같아서 안 보려 했다. 그런데 옆에 서서, 빨리 보고 누가 제일 잘 쓴 것 같은지, 어떤지 말해달란다. 작년에 내가 너무 들떠서 네 시가 반 애들 중에 최고라고 말한 호들갑에 대한 업보다.


이거야. 선생님이 이 시 잘 썼다고 한 번 더 읽어주셨어.      


손으로 짚었다. 그 아이 페이지가 나오니 아이가 먼저 말한다. 내 반응을 살피면서. 아이는 정말로 선생님 말처럼 그 아이 시가 잘 쓴 것인지, 내게 확인받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읽기도 전에, 선생님이 칭찬했다는 말이 가슴에 콕 박힌다. 왜. 왜 그 아이만. 벌써 차올랐다. 난 그럴 때마다 얼음이 된다. 애가 초3이면 엄마도 딱 그 수준이라더니, 내 안의 어린아이가 나와 마음을 헤집기 시작해 몸이 뻣뻣해졌. 누가 땡 하고 쳐주면 좋을 만큼. 


바로 알겠다. 왜 잘 썼다고 하는지. 삐딱한 눈초리로 그 시를 읽는데도 흠잡을 데가 없다. 대구법을 잘 썼고 완성도가 높다. 역시다. 이어 반 아이들의 시를 단숨에 다 읽었다. 부당한 칭찬이었길 바라는 내 눈초리는 단서를 찾아내느라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러나 이미 칭찬받은 시라는 아우라가 씌워져 객관적인 평가가 안된다. 주관적으로 미워죽겠다는 내 질투가 자꾸 눈을 가리고 행간을 읽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집요하게 그 아이 시와 우리 아이 시를 대조하면서, 왜 그 아이 것을 칭찬했는지 이유를 찾았다. 이럴 땐 머리가 참 기민하게 돌아간다. 내가 봐도 우리 아이 것은 완성도가 좀 떨어졌다. '응, 이것도 칭찬받을 만큼 잘했네. 근데 엄마는 네 시가 훨씬 마음에 들어. 우리 딸 시니까. 근데 지금 담임선생님 입장으로 다시 보니, 마무리를 조금 더 신경 썼으면 좋았겠다. 마지막 한 연에서 뭔가 팍 하고 와닿게 말하는 게 있었으면 진짜 진짜 더 좋았을 거야. 잘했어.' 이렇게 말하고 끝냈다. 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지만 내 마음의 불은 가라앉지 않았다.


어쨌든 탐난다. 칭찬을 받았다는 그 아이의 시가 질투나 죽을 맛이다. 사실 시기심의 뿌리는 시가 아니라 엄마다. 담임선생님이 글 잘 쓴다고 인정해 준 것 같은데, 얼마나 좋을까. 내가 차지해야 할 것을 뺏긴 기분까지 들면서 억울한 마음도 생기는 이유는, 내 아이에 대한 글쓰기 집착이 없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 아이가 칭찬받았더라면 지금 내 기분이 어땠을까. 머릿속에 재빠른 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비눗방울을 후하고 불어 생긴 큰 막 안에, 선생님께 칭찬받는 내 아이와 그걸 고 흐뭇해하는 내가 있다. 야무진 상상의 순간을 꿈 꿀수록 더 처참해진다. 씁쓸하고 속이 쓰리다. 허탈한 속을 달래려 질한 방법이 동원됐다. 어떻게든 그 아이의 안 좋은 면을 찾으면 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은 본능이 발동된 것이다. 그 아이의 좋은 면들이지만 안 좋게 깎아내리며 부정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나이에 안 맞게 그렇게 두꺼운 책을 읽어서 되겠어. 한참 놀아야지. 나도 그렇게 두꺼운 책은 안 읽는데 쪼끄만 게.


참 못난 어른이다. 이런 내 모습도 꼴 뵈기 싫어, 속 시끄럽고 짜증을 더할 뿐이라,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애 앞에서 내 감정간파당하기 전에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션을 취하면서. 원래 이 일이 계획되어 있었다는 듯이. 청소하고 '간식 줄게' 애써 콧노래를 부르는 행동이 어색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어서 빨리 이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다. 마음의 저울질을 단칼에 끊어 내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다. 세상 쿨한 척 그런 일이 있었냐며 넘기는 '길채' 급의 연기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터득한 방법이다. 그럴 때 집안일로 좀 바쁜 척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면 효과가 좋았다.


잠시 뒤, 다시 평정심을 찾은 엄마 모드로 돌아와서 저녁을 보내고, 아이가 잠든 뒤, 작가 모드로 액션 가면을 썼다. 그러면 헬리콥터를 탄 것처럼  위에서 내려다봐진다.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느낌이 들어 좋은 각도다. 오늘의 일을 마냥 덮어버리기엔 감정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 억울하다. 게다가 작가인 내게 글감으로 잡아두기 딱 좋은 에피소드 아닌가. 버리지 못하고 곱씹으면서 꾹꾹 써 내려간다. 내 글쓰기 선생님인 브런치에서나 인정받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구시렁거려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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